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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正論)을 죽이는 정론(政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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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正論)을 죽이는 정론(政論)

이효성의 언론마당 <12>

신문의 역사를 보면, 신문은 의견 중심의 언론에서 사실 중심의 언론으로 발전해왔다.

과거의 엘리트 신문들은 특정 정당의 기관지였거나 기관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특정 정치세력과 연계되어 그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그들의 정파적 주장을 대변했다. 그리고 그런 정파적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실을 이용했다. 말하자면, 그런 정파적 신문들에게 사실은 주장을 위해 필요한 부차적인 것이었다. 정파적 주장을 위해 사실은 무시되거나 과장되고, 왜곡되거나 조작되는 등 편의적으로 이용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대중지의 시대가 열리면서 특정 정파와 관계가 없는 신문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들 대중지는 그 수입을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의 지원이 아니라 구독료와 광고료에 의존했다. 따라서 되도록 독자를 많이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특정 정치세력과의 연계나 정파성은 불리했다. 그래서 대중지는 정파성을 띠게 마련인 의견보다는 적어도 겉으로는 정파성과 관계가 없는 사실을 중시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신문은 정치세력으로부터 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에도 왜곡된 사실에 의거해서 특정 정파의 특수한 이익을 위한 의견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에 의거해서 시민의 보편적 이익을 위한 의견을 제시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특정 정치세력의 사익을 대변하는 정론지(政論紙)에서 시민의 공익을 대변하는 정론지(正論紙)로 발전한 것이다.

오늘날의 신문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정파적인 주장을 하는 정론지(政論紙)가 아니라 정확하고 진실한 사실에 입각한 공정하고 바른 주장을 하는 정론지(正論紙)를 표방한다. 그런 신문들이 모두 엄격하게 정론(正論)만을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런 주장을 내세우는 근거는 입증된 정확하고 진실한 사실에 근거한다.

저널리즘이 사실을 중시하면 할수록 그 정확성과 진실성의 검증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오늘날 저널리즘의 제일의 수칙은 보도하는 사실의 정확성과 진실성의 검증이다. 일반적으로 사실이라고 말해지는 것은 사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사실에 관한 주장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 주장은 그 내용의 정확성과 진실성을 검증해야 사실이 될 수 있다. 저널리즘은 바로 그 검증작업을 수행하여 정확하고 진실한 것으로 입증된 사실만을 보도하는 작업이다. 그 정확성과 진실성을 검증하지 않은 사실적 주장의 제시는 저널리즘이 아니라 홍보나 선전에 불과하다. 보도가 홍보나 선전과 다른 것은 그 내용이 검증을 거쳤다는 점이다.

미국의 권위지들은 보도하는 사실의 정확성과 진실성을 검증하기 위해 두 개 이상의 상이한 정보원으로부터 그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다. 그렇게 해서 두 개 이상의 정보원으로부터 똑같은 내용으로 확인된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워싱턴포스트>는 심지어 네 개 이상의 정보원으로부터 확인된 사실만을 게재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권위지들이 신뢰와 존경을 받는 언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신문들은 어떤가.

한마디로 우리 신문들에게 특히 우리 신문시장을 지배하는 대신문들에게 제대로 된, 현대적 의미의 저널리즘은 없다. 시대착오적인 낡은 저널리즘이 있을 뿐이다. 이들 신문들은 제시하는 사실의 정확성과 진실성을 검증하는 작업을 거치지 않은 채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사실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들 신문들은 의혹이나 주장을 확인작업 없이 단지 따옴표만을 붙여 그대로 중계한다. 따라서 이들 신문들은 보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혹을 제기하거나 주장을 하는 사람이나 세력의 선전이나 홍보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행태는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특히 대선이 다가올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최근 김대업씨의 행적과 테이프에 관한 주장, 현대상선의 4억 달러 북한 지원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로비설 등에서 보듯이, 이들 신문은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이 정치공세 차원에서 행하는 주장을, 그나마 국회의 면책특권을 이용해서 무책임하게 내뱉는 주장을 아무런 검증작업 없이 따옴표를 붙여서 일면에 대서특필한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또는 초록은 동색이라는 듯이, 거의 같은 논조로, 의혹을 부풀리기만 하는 이들 신문은 입증된 사실을 보도하는 저널리즘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입증되지 않은 주장을 하는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의 나팔수로 봉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욱 한심한 것은 그런 입증되지 않은 사실적 주장을 마치 사실인 듯이 가정하고 이런저런 파생적 주장을 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ㆍㆍㆍ라면 사설"로 비하되는 정파적 주장이다. 정론(正論)아닌 정론(政論)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쏟아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론(正論)'을 표방하고 '후보검증'을 외친다. 이게 '일등신문'이나 최고를 자처하는 신문들의 행태다. 정말 낯뜨거운 일이다. 이들 신문들은 검증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후보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따옴표 보도와 "ㆍㆍㆍ라면 사설"을 통해 의혹과 기만을 조장하고 하고 특정 후보 살리기나 죽이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 신문들은 정확하고 진실한 사실에 입각한 공정하고 바른 주장을 하는 정론지(正論紙)가 아니라 입증되지 않은 무책임한 주장에 기초한 정파적 주장을 하는 정론지(政論紙)에 머물러 있다. 경우에 따라선 그런 정파적 주장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기까지 한다.

이들 신문들은 저널리즘을 방기하고 대중기만에 기초한 선전과 홍보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들 신문들은 의혹으로 진실을 가리고, 정론(政論)으로 정론(正論)을 죽이고, 사익으로 공익을 바꿔치기하고 있다. 이들 신문들로 인해 한국에서 공명선거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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