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목표가 틀렸소. 이라크가 아니라 알 카에다요."
2백명 가까운 희생자를 낸 발리 테러참사가 발생한 직후 부시 미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계획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9.11 테러의 주범인 알 카에다 소탕은 제쳐둔 채, 석유자원에 눈이 멀어 애꿎은 이라크 정벌에 힘을 쏟느라 또다른 대형 테러참사를 자초했다는 비판이다.
미 민주당의 밥 그래험 상원의원은 워싱턴포스트 13일자 기고문을 통해 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계획은 "우리의 국가적 최우선 과제를 위험한 방식으로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 기고문에서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 계획을 천명하고 의회가 이를 승인한 지금의 미국 상황을 1938년에 비유한다면 연합국이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아닌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에게 선전포고를 한 꼴"이라고 비꼬았다. 국제테러의 주요 근원인 알 카에다는 외면한 채 엉뚱한 이라크 침공에 골몰해 있는 부시 행정부를 정면 공격한 것이다.
그는 이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번 발리테러보다 더 큰 테러 참사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보다 큰 위험을 외면하고 있으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전세계의 테러리스트들을 깨워 일으키는 기상 나팔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 중앙정보국(CIA)는 지난 주 이라크는 미국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아니며', 오히려 미국이 바그다드를 공격할 경우 이라크는 국제 테러리스트들에게 생화학무기를 공급해 주는 방식으로 보복할 것이라는 요지의 '공식 정보평가 보고서'를 공개, 한바탕 소동을 빚은 적이 있다.
상원 정보위 소속인 그래험 의원의 이날 WP 기고문은 발리테러에 대한 CIA 및 연방수사국(FBI)의 브리핑을 받은 후 씌어진 것이다. 이는 발리테러가 알 카에다와 관련이 있음을 미 정보기관도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험 의원과 함께 정보위 소속인 공화당의 리차드 쉘비 상원의원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이같은 일이 더 많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더 많은 테러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알 카에다 조직을 소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 카에다의 활동을 방해하고 그들을 뒤쫓고는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전세계에서 암약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 13일자 기사(Officials See Signs of a Revived Al Qaeda)는 미 고위관리들의 말을 빌어 이번 발리테러를 비롯, 최근 발생한 일련의 테러와 오사마 빈 라덴 등 알 카에다 지도자들의 비디오 메시지 방영 등은 알 카에다가 새롭게 대규모 테러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로 보여진다고 보도했다.
10월 들어 필리핀에서는 알 카에다와 연계된 아부 사야프 게릴라들이 폭탄테러로 미 특전사 요원 1명을 포함해 3명이 사망했으며, 예멘 연안의 프랑스 유조선이 테러리스트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발로 큰 손상을 입었고, 쿠웨이트에서는 알 카에다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저격수가 미 해병 1명을 살해하고 다른 1명에게는 부상을 입혔다.
미 정보관리들은 이같은 일련의 테러행위가 빈 라덴 등 알 카에다 지도자들의 녹음 메시지에 의해 촉발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빈 라덴의 최측근이며 이집트에 본거지를 둔 아이만 알 자와히리와 빈 라덴은 이달 초 알 자지라 등을 통해 방송된 녹음 메시지를 통해 알 카에다 등 이슬람 과격파들에게 대미 항전을 촉구했다.
이 가운데 빈 라덴의 메시지는 제작 시점이 불분명해 그의 생존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러나 자와히리의 메시지는 최근 제작된 것이 분명한 것으로 미 정보기관은 보고 있다. 자와히리는 한때 빈 라덴과 함께 미군의 공습때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었으나 이번 녹음 메시지로 생존이 확인된 셈이다.
자와히리는 이 메시지에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단순히 이라크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아랍과 이슬람세계 전체를 겨냥한 것"이라면서 회교도들의 궐기를 촉구했다. 그는 또 중동지역에 대한 미 정책의 핵심은 이스라엘을 이 지역의 맹주로 만들고, 사우디아라비아를 4개 지역으로 분할해 사우디의 유전을 미국이 직접적 관리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멘 유조선 폭발 등 최근의 잇단 테러사건들에 대해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쿠웨이트 미 해병 저격 등은 더 큰 테러의 전조일 수 있으며 우리는 이를 매우 심각한 사태발전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미 정보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14명이 사망한 지난 6월 파키스탄 카라치 주재 미 영사관에 대한 폭탄테러 이후 최소 5건의 테러가 알 카에다와 연관된 것이라고 한다. 특히 미국을 직접 겨냥한 대규모 테러가 대략 1년 주기로 발생해 왔다는 점에서 미국정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 해 9.11테러 발생 한 해전인 2000년 10월에는 예멘항에 정박해 있던 미 구축함 콜호에 대한 폭탄테러가 발생한 바 있다.
부시 행정부가 대테러전쟁의 최우선과제인 알 카에다 소탕을 제쳐둔 채 이라크정벌에만 골몰해 있는 데 대한 비판은 진작부터 민주당을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예컨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달초 이라크에 대한 일방적 선제공격은 위험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미국의 안보에 대한 가장 중요한 도전"은 여전히 알 카에다라고 지적했다. 또 앨 고어 전 부통령도 지난 달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통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대테러전쟁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고, 아프간 안정 노력을 저해하며, 미국의 동맹국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발리테러 등 최근 국제테러가 다시 늘어나면서 공화당 내부에서도 부시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비판세력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대테러전쟁에 투입돼야 할 특수전 요원들이 이라크 공격에 동원되고, 알 카에다의 활동을 추적ㆍ분석해야 할 CIA 분석가들은 '이라크-알 카에다 연계'라는 근거도 희박한 부시 행정부의 주장을 입증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마당에 대테러전쟁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대테러전쟁을 빌미로 이라크 석유자원을 독점하려는 미 부시행정부의 무모한 이라크 정벌 계획이 오히려 더 많은 테러를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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