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마르겔로프 러시아 상원 외교위원장이 9.11 1주년을 맞아 러시아 신문 '네자비시마야 가제타' 9일자에 기고한 글이다.
글의 제목은 "국제정치가 강대국들의 이권이 장이 돼서는 안 된다'이지만 실제 글의 내용은 강대국들의 이권 다툼을 다투고 있다. 특히 서두에 중동 석유자원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 러시아간의 갈등을 지적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9.11 이후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었던 유럽이 유럽-이슬람 석유동맹의 유지를 위해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는 자국산 석유의 탈출로를 찾기 위해 반미전선에 나서기는커녕 미국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9.11 이후 변화되고 있는 국제정치에 대한 러시아의 현실인식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이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중동 석유자원을 둘러싼 미ㆍ러ㆍ유럽의 이합집산**
9.11은 ‘뉴스’라기보다는 ‘사건’이며 ‘이유’라기보다는 국제역학의 새로운 균형을 찾기 위한 ‘자극제’라고 할 수 있다. 9.11 이후 국제정치의 향방에 영향을 미친 두 요인은 사실상 이슬람세계에 대한 ‘십자군 원정’ 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부시 대통령의 ‘알 카에다’ 비난과 9.11 직후 부시와 푸틴의 전격적 접근으로 러시아와 미국이 ‘적대국’에서 ‘동맹국’으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비록 대다수 국가들이 반테러 동맹을 지지했지만 동시에 세계곳곳에서 반미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회교권 식민지 역사를 간직한 유럽의 경우 ‘오일달러’ 대신 ‘오일유로’라는 신화를 만들려 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이 단합해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난하고 있는 것도 유럽-이슬람 석유동맹에 대한 잠재적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러시아내 인권문제를 둘러싼 유럽의 강경 입장 고수도 같은 맥락이다.
‘사탄 제1호’ 미국에 대한 투쟁에서 ‘구 소련의 후계자’인 러시아의 지지를 얻고자 했던 회교권을 포함한 반미국가들의 실망도 이 때문이다. 9.11 이후 미국의 기본적 국익이 상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미 오래 전부터 체첸에서 국제테러리즘과의 전쟁을 벌여온 러시아에 대한 비난은 미국의 아프간 공습 후 다소 수그러들었다.
미국에 대한 좀 더 강력한 대응은 희망사항으로 남고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러시아를 향한 것만은 아니다. 러시아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대국 비난에서 벗어나 협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러ㆍ미관계가 ‘안보와 군축’에 국한되었었다. 이제 시대는 변했고 경제, 특히 에너지협력이 최우선시 되고 있다.
작년 러ㆍ나토 관계에서도 모종의 진전이 있었다. 로마협정은 유럽안보정책의 근간이 되는 나토에 완전한 회원으로 참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으며 이것은 상호 군사기술협력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유럽통합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으며 러시아는 표트르 1세가 뚫어놓은 ‘유럽으로의 창’이 EU확대로 인해 축소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유럽통합과 함께 유럽의 운송망 지도도 변화하고 있으며 칼리닌그라드가 이에 포함돼야 한다고 러시아는 확신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얼마 전 주창한 칼리닌그라드 무비자 통과안은 유럽인권헌장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중동정책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구소련 붕괴 후 그 영향력은 현저히 감소되었다. 중동평화과정의 ‘국제중재 4인방’에 러시아가 참여하는 것은 중재 실패 시 미국과 EU의 책임을 상당히 중화시켜줄 수 있는 요인이다. 러시아는 대외정책에 있어 구소련의 후계자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이를 위한 힘이나 이데올로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새로운 국익에 대해 거론하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이제 ‘국익’이 무엇인지 인식되고 있으며 국가의 전략적 발전방향은 이제 겨우 성립단계에 있다. 이 때문에 ‘권력-국민-영토’라는 3요소 중 이제 전면에 나서는 것은 ‘강대국 유산’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풍요한 조국의 영토 수호가 되고 있다. 이러한 과제는 현세대에서 달성하기는 힘들겠지만 다음 세대에서는 ‘국가의 혼란과 취약점’을 극복하면서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9.11의 최대교훈은 세계정치가 일 개 혹은 몇 개 강대국의 배타적 이권의 장이 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세계는 점점 더 개방되고 더 상호 연관되고 상호 의존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독자적인 장기전략 없이 이러한 세계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 되고 있다. 백년을 바라보는 전략과 계획만이 공연한 논쟁 없이 WTO 가입 여부 및 차관공여 대상 선정, 외교정책과 같은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국제관계는 결코 맹인을 위한 점자책을 읽듯이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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