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방북으로 대북포용정책을 둘러싼 미국과 한ㆍ중ㆍ러ㆍ일 등 아시아 국가들간의 이견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미국의 북한전문가에 의해 제기됐다.
미 조지타운대의 한국계 미국학자인 빅터 차 교수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 6일자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고이즈미의 이번 방북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동북아에서 외교적 주도권을 발휘해 보려는 일본의 의도에 비롯된 것이라고 관측하면서 그러나 이번 방북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일반적 관측은 틀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북한의 어떠한 개방 움직임도 한반도 긴장완화의 긍정적 사태전개로 보고 있는 반면 미 부시행정부로서는 북한 노동미사일이 제기하는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지 않는 한 실질적 진전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빅터 차 교수에 따르면 수백기의 노동 미사일은 일본을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며 이는 남북군사 대결이 발생할 경우 주일 미군을 비롯한 미국과 일본의 개입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고이즈미의 이번 방북에서 노동 미사일 문제에 관한 실질적 진전을 이룰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고이즈미는 북한의 사소하고 상징적인 양보(피랍 일본인 문제 등) 대신 현금지원을 비롯한 경제협력을 약속할 공산이 크다면서 이는 결국 김정일의 술수에 놀아나는 꼴이라고 경고했다.
빅터 차 교수는 고이즈미의 방북이 이런 식으로 끝날 경우 부시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이 아닌 강경정책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는 유용한 방안이라는 기존의 확신을 다시 한번 다지게 할 뿐이며 이에 따라 대북 포용을 둘러싼 미국과, 한국 등 아시아 동맹국들간의 인식 및 정책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음은 '고이즈미의 북한 모험(Koizumi's North Korea Risk)' 제하의 칼럼의 주요 내용.
***고이즈미의 북한 모험(Koizumi's North Korea Risk)/LA타임스 6일자**
이달 후반으로 예정된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북한 방문은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긍정적인 진전으로 보인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오판의 우려가 있다.
고이즈미의 깜짝 선언은 동북아지역에서 일본이 리더쉽을 발휘하려는 것을 반영한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운명이 불확실하게 된 시점에 북한이라고 하는 어려운 문제를 떠맡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대북포용정책을 택할지 말 것인지에 대한 미국의 모호함이 너무도 분명한 현 시점에서 신뢰할 만한 동맹국(일본)에 의한 이같은 종류의 시도는 워싱턴이 진정한 대북포용정책을 취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판단기준(transparency)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아닐 수도 있다.
일본은 그러한 과업을 떠맡을 만한 자격이 있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김정일이 쳐놓은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김정일과 악수나 하고 사진이나 찍은 다음 아무런 실질적 합의도 없이 돌아와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고이즈미의 평양 방문이 이런 식으로 끝난다면 부시 강경파들(Bush hawks)의 북한에 대한 시각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김정일은 포용정책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는 확신 말이다.
북한과 관련해서 미국과 일본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노동 미사일이다. 장거리 대포동 미사일과는 달리 노동 미사일은 이미 수백기가 북한에 배치돼 있다. 화학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이 미사일은 북한의 전략목표에 비추어 일본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남북한간의 군사대결이 발생할 경우 미국과 일본이 한국을 돕는 것을 저지자하기 위해).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해 북한이 양보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 말기 미국과의 미사일협상에서도 노동 미사일의 배치 문제에 관한 논의는 거부했었다.
따라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 방문 후 뭔가 실질적인 결과를 가지고 돌아와야 한다. 특히 북한은 지난 2000년말 일본과의 수교협상에서 일본측을 아주 무례할 정도로 무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측 협상팀은 합의의 기본틀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미사일문제에 대해 의미있는 합의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고이즈미는 뭔가 성과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력 때문에 (북한의) 함정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사소하고 별 의미도 없는 북한의 상징적 양보를 받아내는 대신 현금 지원과 같은 당근을 제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이 이런 식으로 끝난다 해도 아마 서울은 만족해 할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이나 도쿄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부시 강경파들에게 이는 대북포용은 아무 성과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외교무대의 이면에서는 이보다 훨씬 근원적이고 보다 당혹스러운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지난 8월 김정일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 그리고 서울과 베이징의 지속적인 간청에 힘입은 일본 총리의 방북은 부시 대통령에게대북 포용정책을 취하라고 촉구하는 이 지역의 합창에 또 하나의 목소리를 보태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들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북정책과 관련한 워싱턴과 아시아 동맹국들간에 간극을 더욱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고이즈미의 방북은 대북포용 및 햇볕정책의 장점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대북포용이 마침내 북한으로 하여금 대외개방에 나서게 했다고 믿고 있다.
반면 부시 행정부에게 고이즈미의 방북은 대북강경정책의 효용성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될 뿐이다. 이들에 따르면 햇볕정책 대신 북한정권을 '악'으로 지칭하고 강경대응을 해야 북한을 타협적 태도로 몰아부칠 수 있다.
북한이 개방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아시아 동맹국들과 미국간의 대북 인식 및 정책에서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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