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미 달러화의 가치 하락이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일반의 우려와는 달리 '세계경제에의 축복'이라는 색다른 주장이 제기됐다.
프레드 버그스텐 미 국제경제연구소(IIE) 소장은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넷판에 실린 칼럼을 통해 미국의 천문학적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 달러화 가치 하락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미국 등 세계 각국 정부들은 달러화의 조정(평가절하) 과정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카터행정부 당시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보를 역임한 버그스텐 소장은 '달러 하락을 방치하라(Let the Dollar Fall)' 제하의 이 칼럼에서 올 초 이후 계속되고 있는 달러화 가치 하락은 그동안 과대평가됐던 달러화 가치의 자연스런 조정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지난 6개월처럼 달러화의 가치 하락이 서서히 완만하게 이루어진다면 미국경제 및 세계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경제의 수출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외국인 투자가들의 대미 투자를 증대시켜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버그스텐 소장은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가 세계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현재의 연간 경상수지 적자(약 5천억 달러)를 약 2천5백억 달러 수준으로까지 감소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를 위해서는 달러화 가치가 지난해 말 수준보다 25% 가량 하락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수년간의 점진적인 조정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버그스텐 소장은 특히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자국 통화의 평가절상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세계 모든 나라들은 미 달러화의 가치 하락을 저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버그스텐으로서는 달러화 가치 하락의 연착륙을 겨냥, 최대한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세계경제의 핵심인 미국경제를 살리려면 모든 국가들이 달러화의 가치 하락을 저지하지 말라는 오만한 주문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버그스텐의 예상과 주문대로 달러화의 가치 하락이 지난 6개월처럼 서서히 완만하게 수년간 계속될 수 있을지, 일본ㆍ유럽 등 다른 국가들이 달러화의 가치 하락, 즉 자국 통화의 평가절상을 수수방관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음은 버그스텐이 기고한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달러 하락을 방치하라'(파이낸셜타임스, 17일자)**
지난 6개월간 미 달러화의 가치는 서서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하락해 왔다. 달러화 가치는 교역가중치로는 약 10%, 유로화에 대해서는 약 20%가 하락했다. 95년 이후 약 25%가 절상됐던 달러화의 상승 추세가 올해 초 이후 역전됐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과대평가됐던 미국 주식시장이 상당한 정도의 조정을 겪음에 따라 과대평가된 달러화의 상당한 조정도 불가피해졌다. 현재 미국의 연간 경상수지 적자는 5천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GDP의 5%에 해당된다. 또한 이는 달러화 가치가 급속하게 하락했던 70년대초, 70년대말, 80년대 중반, 90년대 중반에 비해서도 대단히 높은 수치이다.
사실 현 상황에서 유일한 이슈는 달러화 가치의 조정이 언제, 어느 정도 폭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미국은 GDP의 2-2.5% 정도의 경상수지 적자는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 수준의 절반 정도이다.
달러화 가치가 1% 하락할 경우, 약 2년 후 1백억 달러의 경상수지 개선 효과가 나타나므로 궁극적으로 달러화의 가치 하락은 25%까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까지의 달러화 가치 하락은 이의 약 3분의 1 정도다.
달러화의 가치 조정은 아주 이상적인 시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달러화 가치 하락이 너무도 점진적이고 완만해서 물가나 금리에 눈에 띌 만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미국경제는 현재 회복의 초기 국면에 들어섰으며 이에 따라 상당한 정도의 유휴 시설과 유휴 인력이 활용되기 시작하고 있다. 인플레 압력은 사실상 없으며 금리도 지난 40년래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달러화 가치 하락이 물가나 금융시장에 미칠 압력은 비교적 쉽사리 흡수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경제는 아직도 일본은 물론 유럽경제보다도 훨씬 튼튼한 것으로 보여진다. 침체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계속된 생산성 향상 덕택으로 미국경제는 중기적으로 3% 이상의 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들의 분식회계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자본이탈이나 달러화 가치의 급속한 추락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일부 분석가들은 달러화 가치의 지속적인 하락이 미국의 주식시장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물론 투자자들의 떼거리 심리는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다.
그러나 달러화 가치하락은 다음 3가지 이유에서 주식시장을 약화시키기보다는 강화시킬 것이다.
첫째, 약한 달러는 미국 다국적기업들의 이윤 규모를 향상시킬 것이다. 외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달러로 바꿀 경우 지금보다 액수가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약한 달러는 전체적으로 미국경제의 가격경쟁력을 향상시켜 준다.
셋째, 외국 투자가들의 대미 투자를 증대시킬 것이다. 보다 싼 값에 달러를 살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달러화 표시 유가증권에의 투자가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달러화의 가치하락은 주식가격의 하락을 가속화하기보다는 저지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정부의 정책은 질서정연한 달러화의 조정을 지원하는 효과를 냈다. 부시 행정부는 약 1년전부터 전임 행정부때부터 외쳐온 '강한 달러'라는 수사를 슬그머니 포기했다. 또한 조정을 저지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할 의향이 없음을 분명히 밝혀 왔다. 이러한 (정책)변화는 사실상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의 상황에서 유일한 문제는 다른 나라들의 반응이다. 일본은 엔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하락을 막기 위해 강력한 시장개입을 계속하고 있다. 대만 또한 일본보다는 강도가 약하지만 시장개입을 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 및 몇몇 국가들은 시장 상황에 따라 자국 통화가 절상되는 것을 지켜보기보다는 (계속 달러를 사들여) 달러 보유고를 계속 늘여가고 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으며 이같은 불평은 유로화 가치가 지난 99년 유로화 출범 초기 수준으로 올라갈 때까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달러화 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비(非) 달러 국가들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유지 불가능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감소시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대가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의 통화들이 달러화에 대해 가치가 절상되고 있기 때문에 교역가중치에 의한 환율 변동폭은 그다지 크지 않다. 특히 유로 지역과 일본의 대미 수출은 전체의 3%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환율의 급격한 변동이 수출 전체에 미칠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다. 게다가 통화가치의 절상은 인플레 억제 효과를 수반한다. 특히 유로 지역의 경우 이에 따라 (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의 운용 폭이 넓어져 통화절상에 의한 부작용을 상쇄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수년간 달러화는 소정의 목표치에 이를 때까지 가치가 하락되도록 방치되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지난 6개월간처럼 질서정연한 궤적을 그리면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의 시장불개입정책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미국 등 G7 국가들은 다른 나라들에 대해 달러화의 조정을 가로막을 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도록 촉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세계경제는 보다 튼튼해질 것이며 유지가능한 성장의 주요 장애물중 하나(달러화의 과대평가)를 제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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