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7월 1일자)에 실린 '거인들의 무덤(The Grave Of the Giants)'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기사를 작성한 브룩 라머 기자는 전통주의자들은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전통 축구강호들의 탈락을 이유로 이번 월드컵이 저질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은 그 반대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터키, 세네갈, 미국 등의 활약이 돋보인 이번 대회는 "역전, 이변, 세련되지 않은 아웃사이더의 감동적인 등장으로 스포츠 사상 가장 멋진 장관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이름에 걸맞는 최초의 월드컵"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기사의 주요 내용. 편집자
***'거인들의 무덤'(뉴스위크, 7월1일자)**
축구 결벽주의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이번 월드컵은 엉터리란 생각이 들 것이다. 이들은 '아름다운 게임'이 어디 갔냐고 투덜거린다. 훌륭한 축구 명문팀들이 불명예스럽게 대회에서 쫓겨나 팬들과 광고주들은 축구 간판 이름을 박탈당했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모두 사라졌다. 전통주의자들은 '축구 저질화'에 희생됐다고 주장한다.
이들 팀은 부상에 시달렸고 지나치게 열심인 심판들에게 강탈당했다. 최악의 모욕은 '볼썽 사납게 이겨' 올라온 터키, 세네갈, 한국, 미국 등 벼락 출세한 나라들에게 전통적인 축구 강국들이 인기를 뺏긴 것이다. 이 풋내기들은 속도, 스태미너, 동물적 체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고전적 스타일은?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필자의 충고는 결벽주의자들 말에 귀 기울이지 말라는 것이다.
금년 월드컵은 역전, 이변, 세련되지 않은 아웃사이더의 감동적인 등장으로 인해 스포츠 사상 가장 멋진 장관을 보여 주고 있다. 사실은 이번 월드컵이 진정으로 이름에 걸맞는 최초의 월드컵이다. 축구 거물들이 월드컵을 아시아로 가져올 때 그들은 축구의 세계화를 틀림없이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그들은 신출내기들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축구 4대 강국들이 초반에 탈락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은 축구 강국 독일과 브라질이 여전히 우승 트로피를 차지할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풋내기들이 이룬 업적이나 이들이 월드컵과 자신의 조국에 끼친 엄청난 정신적 위로는 줄지 않는다. 한국 팬들이 지난 주 대전 경기장 관람석에 걸어 놓은 '지옥문, 거인들의 무덤' 등의 대형 적색 현수막은 매우 낙관적인 모습이었다. 월드컵 전에 세계 랭킹 40위였던 한국은 3회 우승의 명문 이탈리아를 물리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더벅머리 안정환이 경기 117분에 골든골을 넣어 2-1 역전승을 이끌어 내자 현수막의 말이 돌연 예언적으로 맞았다. 나흘 후 한국은 승부차기로로 스페인을 꺾어 또 다시 해냈다. 스페인도 이탈리아처럼 지옥을 얼핏 보았다. 붉은 악마라는 적절한 이름이 붙은 수백만명의 열광적인 한국 팬들은 자국 팀이 월드컵 사상 아시아 국가로는 최상위권에 진입하자 거리에서 춤을 추었다.
왜 이렇게 많은 축구 강국들이 무너졌을까? 팬들이 주목하는 곳은 지친 스타들(너무 많은 경기), 보수적인 감독(너무 많은 압박), 팀의 분열(심한 자기 도취)이다. 그러나 축구의 세계화로 전통 강국과 다른 나라의 격차가 줄어든 것이 더 큰 이유이다. 유럽 리그에서 기술을 연마하고 있는 개도국 선수들이 점점 늘고 있다. 브루스 아레나 미국 감독은 “축구계가 좁혀지고 있다”면서 미국 선수 절반 이상이 유럽 클럽에서 뛰고 있음을 지적한다.
프랑스를 1-0으로 격파한 세네갈 선발 선수 전원이 프랑스 프로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국의 영웅 안정환 선수는 이탈리아 A 리그의 페루자에서 뛰고 있으나 그의 골이 이탈리아를 집으로 보낸 다음 날 페루자 구단주는 안 선수를 '반역자'라 부르며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물론 월드컵은 언제나 축구 실력 뿐 아니라 민족적 긍지에 관한 일이 되어 왔다. 축구가 글로벌화 되고 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여전히 민족적이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배신감을 느끼고 아르헨티나는 공황에 빠지는가 하면 프랑스도 매우 상심해 있다. 신흥 축구 강국들은 애국 열기를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분이 얼마나 지속될까? 터키는 대표팀의 활약으로 팬들이 잠시 기분좋은 도피를 했지만 한 차례 정경 혼란이 닥칠 게 확실해 보인다. 오랫동안 일본과 중국의 그늘에 가려있던 한국으로서는 놀라운 월드컵 성공이 사람들에게 '해방감'을 주었다고 정몽준 한국축구협회 회장은 말하면서 사실상 야구를 더 좋아하는 한국에 도취감이 엄청나게 분출되고 있는 점을 설명했다.
월드컵이 단번에 이들 나라를 구해준다거나 황홀감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비록 세련되지는 않았다 해도 이들 아웃사이더들은 플레이를 통해 이번 월드컵을 스포츠 사상 가장 들뜨게 하고 예측 불가능한 순간으로 우리 기억에 남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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