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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축구’ 정도로 수도 한복판에 1백만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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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축구’ 정도로 수도 한복판에 1백만이 모인다?

<월드컵 정치학> 구로다 특파원의 삐딱한 對韓 시각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언제나 기묘한 이중성과 모순이 존재한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란히 조 1위로 16강에 진출, 겉으로는 '한일 양국이 아시아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주었다'며 함께 기뻐하면서도 내심 한구석에는 상대국보다 나은 성적을 올려야겠다는 경쟁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는 일본 언론 내부에도 이같은 모순이 엿보인다. 우선 일본 우익 신문 산케이의 서울 특파원인 구로다 가쓰히로. 한국에 대한 냉소적 시선으로 때때로 비판을 받고 있는 그는 16일자 1면 기사에서도 여전히 한국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드러냈다.

그의 기사는 '한국이 다행스럽게도 포루투갈전을 이겼다'로 시작된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의 본심은 일본과의 공동개최가 아니라 '경쟁 개최'이며, '한국만이 승리해 16강에 진출하는 것이 최선'으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한국만이 탈락해서 일본에 대한 시기심을 불태우는 '최악의 케이스는 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기껏 축구 정도로 수도 한복판에 50만 1백만의 군중이 나와 밤새워 열광하고 흥분하는 장면은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며 한국민들의 응원 열기에 대해서도 냉소적 시각을 드러냈다. 이번 월드컵으로 양국간의 상호이해가 증진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기사를 마무리짓긴 했지만 그의 기사 속에는 한국을 한 수 아래로 내려다 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반면 일본을 대표하는 신문인 아사히는 재일동포 출신의 자사 기자의 글을 통해 이번 월드컵이 재일 한국인들의 정체성 확보에 도움이 되기를 기원했다. 아사히신문 나고야 지사에 근무하는 황철(黃澈)이라는 이름의 이 기자는 지난 83년 일본에서 열린 한일 정기전 때 한국이 동점 골을 넣자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부친을 껴안았다고 한다. 순간이 자신이 한국인임이 드러난 것이 겸연쩍어 "죄송합니다"라며 머리를 숙이자 주위의 일본인들은 웃으며 이해해 주었다는 것이다.

황철 기자는 '재일 한국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솔직하게 드러내었을 때 나의 소년시대는 끝났다'면서 이번 월드컵이 수많은 재일 한국인 젊은이들의 정체성 확인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그의 기사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한국과 일본이 도약을 계속하고 있는 이번 대회. 많은 재일 한국인 젊은이들도 또한 자신을 재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과거의 나처럼."

구로다 특파원의 기사와 황철 기자의 기사는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양 극단의 시각을 보여준다. 일본 내의 두 시각을 보여주는 두 기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혁명적 풍경인 한국의 '이질적인 모습'(산케이, 16일자)**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포르투갈전에 이겼다. 한일관계 최악의 케이스는 피하게 되었다. 일본과는 공동개최보다 '경쟁개최'가 본심인 한국인에게 있어서 한국만이 승리해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었으나 승리의 흥분 속에서 일단 한일이 나란히 결승토너먼트에 진출한 것을 기뻐하고 있다.

한국인의 흥에 취함, 자신감, 여유, 그리고 전향적인 민족감정의 고양(高揚)이 향후 일본과의 관계 또는 대일감정에도 확대되기를 일본인으로서는 바라지 않을 수 없으나, 분명 한국현대사에 있어서 한국민이 '독재타도' '일본규탄'이라는 타인 비난이 아닌 긍정적인 감정의 폭발로 수십만의 군중이 서울의 거리에 나와 하나가 되어 환성을 올려 열광한 예는 없다.

붉은 티셔츠로 스탠드는 물론 서울 중심가가 붉게 물든 것을 보고 "반공시대의 낡은 한국의 종언을 상징하는 '붉은 혁명'이다"고 말하는 진보파 지식인도 있다.

그러나 우선 한국인이 처음으로 '질서 있는 비정치적 군중'이 되어 등장했다는 의미에서 월드컵은 틀림없이 한국에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기껏 축구'정도로 수도 한복판에 50만 1백만의 군중이 나와 밤새워 열광하고 흥분하는 장면은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이러한 풍경은 일본인에게 지극히 이국적이다.

"한국사람들은 대단하다"고도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들을 비교해 생각해본다. 역시 우리도 앞으로 그들처럼 분발할 것인가? 일본은 그러한 이웃나라와 월드컵을 공동개최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이웃나라 이웃사람인 우리들과의 '이질(異質)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 상호이해를 지향하는 월드컵 공동개최의 최대효과일지도 모르겠다.

***쌍안경 : 확인한 '의지'(아사히, 17일자)**

한국과 일본이 1차리그 돌파가 결정된 날. 자랑스러운 기분 가운데 83년 3월에 관전한 시합이 생각났다.

국립경기장에서의 한일 정기전. 한국이 종료 직전에 동점으로 따라잡은 스릴 있는 시합이었다. 득점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일어나 부친과 껴안았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죄송합니다"라며 머리를 숙이자 주위의 일본인들은 웃으며 이해해 주었다.

부친으로부터 세어 2세가 된다. 오랫동안 스스로의 국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장래의 전망도 세우기 어려웠다.

의식이 바뀐 것은 82년이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정에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반발의 목소리가 고조되는 가운데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를 몇 번이고 자문했다. 국립경기장에서의 한일전이 최후에 등을 떠밀어 준 것이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솔직하게 드러내었을 때 나의 소년시대는 끝났다.

한국과 일본이 도약을 계속하고 있는 이번 대회. 많은 재일한국인 젊은이들도 또한 자신을 재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과거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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