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신영복 교수의 '고전강독' 제2부를 시작합니다.
신 교수는 프레시안 창간에 맞추어 지난 해 9월부터 중국고전강독 제1부 시경·서경·초사·주역·논어·맹자 강의를 80회로 마치고 다시 제2부 노자·장자·순자·한비자·묵자·중국불교·송대 신유학의 강의 문을 열었습니다. 신 교수의 고전강독은 성공회대학교에서 10여년째 계속되고 있는 명강의 중의 하나며 프레시안은 이 강의 내용을 신 교수의 감수를 거쳐 게재하고 있습니다.
신영복 교수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해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68년 통혁당 사건으로 20년간 복역했으며 그 기간동안 쓴 서간문을 모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그 깊고도 아름다운 산문으로 우리 사회에 깊은 감동을 준 바 있습니다. 다시 시작한 신 교수의 고전강독에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 편집자
제8강 노자(老子)-1
1) 노자와 '노자'
(1) 중국사상은 지배계층의 사상인 유가(儒家)사상과 민초(民草)들의 사상인 노장(老莊)사상이 2개의 축(軸)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사회든 지배담론과 비판담론이 일정하게 대치하는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가(儒家)와 노장(老莊)의 대치는 중국 사상사의 유구한 심층구조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노자(老子)'는 그 2개의 축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사상입니다. 앞으로 예제를 통하여 확인되리라고 생각됩니다만 동양사상의 정체성은 '논어'보다는 오히려 '노자'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논어'는 서구사상과 마찬가지로 '진(進)'의 사상입니다. 인문세계의 창조와 지속적 성장이 진(進)의 내용이 됩니다. 인문주의(人文主義), 인간주의(人間主義), 인간중심주의(人間中心主義)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하여 노자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進)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歸)입니다. '노자'는 귀(歸)의 사상입니다. 자연(自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연이란 천지인(天地人)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합니다.
바로 이러한 성격 때문에 제자백가의 사상은 '노자'를 한 편으로 하고 여타의 모든 학파를 다른 한 편으로 하는 2개의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제자백가들의 사상은 물론 여러 층위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정책적 대응을 본령으로 합니다.
이에 비하여 '노자'는 다른 학파들의 주장과는 달리 일체의 인위적 규제를 반대합니다. 인위적 제도나 규제는 당시의 혼란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책이 되지 못하며 도리어 혼란과 불의를 가중시킬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제도(制度)와 문화(文化)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생성(生成)과 변화발전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부터 언어(言語)와 인식(認識)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노자는 철저하리만큼 근본주의적 관점을 견지합니다.
근본주의적이라는 의미는 인간과 문화와 자연(自然)에 대한 종래의 통념(通念)을 깨트리고 전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25장)"의 논리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법(法)은 본받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 그리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체계입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노자의 체계에 있어서 자연의 생성변화가 곧 도(道)입니다. 인위적 규제는 이러한 질서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말을 불로 지지고, 말굽을 깎고, 낙인을 찍고, 고삐로 조이고 나란히 세워 달리게 하고 마굿간에 묶어 두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지요.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도덕적 가치는 인위적 재앙(災殃)으로 보는 것이지요. 자연을 카오스(chaos)로 인식하는 여타 제자백가들과는 반대로 자연을 최고의 질서 즉 코스모스(cosmos)로 인식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노자'의 세계는 반문화적(反文化的) 세계입니다. 건축의지(建築意志)에 대한 거부입니다. 계몽주의든, 합리주의든, 기존의 인위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일체의 건축적 의지를 해체(解體)하여야 한다는 해체론(解體論)입니다.
바로 이 점이 '노자'의 현대적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는 결국 법가(法家)사상에 의하여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바와 같이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하였습니다. 진(秦)이 천하를 통일한 이후에 사상계의 통일도 당연히 뒤따르게 됩니다.
분서갱유(焚書坑儒)도 그러한 사상통일의 일환입니다. 유묵논쟁(儒墨論爭)이나, 유법논쟁(儒法論爭)은 일단락됩니다.
그러나 통일의 주역인 법가(法家)사상은 난세(亂世)를 평정하는 과정에서는 대단한 역동성을 발휘하였지만 치세(治世)의 통치 이데올로기로서는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적합하지 못하게 됩니다.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은 단기전에 있어서는 그 역량을 결집하고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가동하는 데에는 법가적 정책이 탁월한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진정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적합하지 못하게 됩니다. 진정한 부국강병이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부문의 자생력(自生力)을 길러내고 꽃피워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장기적인 재생산성을 법가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었지요.
그리고 또 한 편으로 당시의 현학(顯學)이었던 묵가(墨家) 역시 진한(秦漢)의 중앙집권적 통일국가가 성립되고 그 체제가 정비되면서 묵자사상의 핵심인 평등(平等)이념이 그 사회적 지반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자연히 사상계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한(漢) 이후 유교가 관학(官學)으로 자리잡음에 따라 제자백가의 사상은 이제 유가(儒家)사상에 흡수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리하여 유가사상이 지배층의 통치이념으로서 자리잡게 됩니다.
유가(儒家)사상은 법가(法家)에 비하여 비폭력적 지배방식을 취하고 피지배층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매우 유화적(宥和的)인 정치과정을 정착시켜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권력은 본질에 있어서 폭력적 지배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진한(秦漢) 이후의 제도폭력(制度暴力)이 지배하는 역사적 조건에서 피지배계층을 중심으로 하여 저항적 지반이 광범하게 형성된다는 것은 역사의 필연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체의 인위적 규제를 재앙으로 규정하고 자연이라는 근본적 질서를 회복하고, 진정한 인간의 자유를 주창하는 노자의 반문화(反文化)사상이 지배사상에 대한 비판담론으로서 자리잡게 되는 것이지요.
비판담론뿐만 아니라 나아가 저항담론과 대안담론으로서 그 지반을 넓혀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중국사상은 지배계층의 관학으로서의 유가(儒家)와 피지배계층인 민초의 도가(道家)사상이 서로 길항력(拮抗力)으로 대치하는 구조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사회의 전체구조를 생동(生動)하게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는 다음에 설명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무엇보다 우리는 '노자'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우리가 '노자'를 읽는 독법(讀法), 다시 말하자면 노자를 재조명하는 이유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를테면 노자의 현대적 의미를 조명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그 축적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모순이 누적되는 체제입니다. 현대자본주의는 누적된 모순이 하부구조(下部構造) 자체의 존립을 부정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은 패권국가들의 집단적 개입과 폭력적 억압에 의하여 그것이 억제된 상태입니다. 억제된 상태는 해소된 상태와는 다른 것이지요. 내면적으로 그 불안정성을 더욱 첨예화하고 있는 것이지요.
세계화라는 개방압력과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수탈적 공세가 사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곧 그것의 현실적 표현형태입니다. 이러한 하부구조에 있어서의 누적된 모순의 필연적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상부구조에 있어서 극단적인 인위(人爲)와 허구(虛構)의 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부구조의 자본축적논리와 상부구조의 상품시장논리가 공동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낭비와 허구의 체계는 현대자본주의 단계에 이르러 그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도의 기호조작(記號操作)체계를 내장하고 있는 상품미학은 이제 이성(理性)의 포섭이 아니라 감성(感性)의 포섭기제(包攝機制)를 완성해 놓고 있습니다. 대중매체의 가공할 위력을 장악하고 이러한 기제를 능숙하게 구사함으로써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공략하는 단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현대자본주의는 인위적(人爲的) 규제(規制)와 허구(虛構)의 어떤 절정(絶頂)을 보여주고 있는 동시에 그것의 재생산구조를 완성해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과 관련하여 '노자'의 현대적 의미가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화석화된 사상이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 현실성을 띠고 생환되어야 할 당대사상으로서의 '노자'가 있다고 생각하지요.
'노자'가 이러한 모순구조를 조명해 내고 나아가서 '노자'의 언어들이 물질과 욕망의 총체적 낭비(浪費)체제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노자'가 생환될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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