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과 놀다 <86>

이거이-조박, 2라운드를 벌이다

이거이 부자와 조박의 악연에는 평양백 조준까지 휘말렸습니다.
앞서 경상도 감사 조박이 합주(陜州) 지사 권진에게 말했습니다.

"계림부윤 이거이가 내게 '조준의 말을 믿은 것을 후회한다'고 하기에 '무슨 까닭이냐'고 물으니, 이거이는 '조준이 사병(私兵)을 혁파할 때 왕실을 호위하려면 군사가 강해야 한다고 내게 말해, 내가 그 말을 믿고 명부를 즉시 삼군부에 바치지 않았다가 죄를 얻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했다."

권진이 간의대부가 되자 조박의 말을 부풀려 좌중(坐中)에 고했습니다. 이에 대간의 권근과 박은 등이 함께 글을 올려 조준ㆍ이거이 등의 죄를 말하니, 임금이 말했습니다.

"조준이 어찌 그런 말을 했겠는가?"

글을 보류하자, 권근 등이 다시 글을 올리고 대궐에 나와 굳이 청했습니다. 이에 조준을 옥에 가두고 문하부 참찬 이서, 순군부 만호 이직ㆍ윤저ㆍ김승주 등에게 지시해 신문하게 했습니다.

조준은 강개(慷慨)한 성품이므로 분이 나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말만 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 뿐이었습니다.

합주 지사 전시는 조준과 이거이가 믿는 사람이었는데, 조준 등의 죄를 입증하려고 관원을 보내 잡아왔습니다.

임금은 조준ㆍ이거이ㆍ조박을 한 곳에서 심문하려 했으나, 권근 등은 따로따로 두고 국문하자고 청했습니다. 임금이 의심스러워 화를 냈습니다.

"어찌 죄상이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대뜸 형벌을 가할 수 있겠는가?"

대간에게 다시 말하지 못하도록 하고, 곧 순군부 관리에게 지시해 이거이ㆍ조박을 잡아오게 했습니다. 세자가 윤저를 불러 말했습니다.

"경은 주상께서 경을 순군부 만호로 삼은 뜻을 알고 있는가?"
"신은 본디 어둡고 어리석어 관리의 일을 익히지 못했는데, 지금 신에게 형관의 임무를 명하시니 조처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해 밤낮으로 황공하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경은 본디 세족(世族)이다. 작은 절조에 구애되지 않고 세태에 아첨하지 않으며 오직 너그럽고 공평하기를 힘쓰기 때문에 형관의 임무를 명한 것이다."

세자가 대간의 글을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태상왕께서 개국하신 것과 주상께서 왕위를 이으신 것과 불초한 내가 세자가 되어 지금처럼 잘된 것이 모두 조준의 공이다. 지금 전날의 공을 잊고 허실을 가리지 않은 채 담당 부서의 솟장만 믿고 국문한다면 하늘이 매우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조준이 그런 말을 했다면 죄가 매우 크다. 경은 가서 잘 처리하라."

윤저가 두 번 절하고 나오는데, 우정승 민제가 몰래 윤저에게 말했습니다.

"조준 등이 나와 하윤을 해치고, 이를 빌미로 세자에게 미치려고 한다. 지금 그가 갇혔으니, 끝까지 추궁해야 한다."

대간이 모두 대궐 뜰에 나와, 위관(委官)을 이거이와 조박이 있는 곳에 보내 조준이 말한 것을 질문하도록 다시 청했습니다. 임금이 말했습니다.

"질문하는 일은 한곳에 모아 심문해야지, 어찌 사람을 보내 묻는단 말인가?"

대간이 극력 간쟁(諫諍)하니, 임금이 업무를 보지 말도록 지시하고 각기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조박을 순군부 옥에 가두고 물으니 조박의 말이 대간에서 올린 글의 내용과 같지 않았으며, 또 권진을 가두고 물으니 권진의 말도 글의 내용과 달랐습니다. 임금이 권근 등을 무척 미워했습니다.

이거이를 순군부 옥에 가두고 조박과 대질하니, 이거이가 말했습니다.
"나는 조준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조박이 맞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대가 계림 동헌(東軒)에서 말하지 않았소?"

이거이가 말했습니다.
"아니다. 그대가 내게 술을 두세 잔 먹였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았고 취하지도 않았다. 그대가 1399년에 이천(利川)으로 쫓겨났다가 경상도 감사로 나간 것은 우리 부자 때문이었다. 내가 조준과 정사(定社)의 맹세를 바꾸지 않았으니, 조준이 비록 그런 말을 했더라도 내가 어찌 그대에게 얘기하겠는가?"

조박이 말했습니다.
"내 자식 조신언(趙愼言)이 회안공의 딸에게 장가들 때 조준이 안장 갖춘 말을 주었고, 내가 감사로 나갈 때 금띠를 주었소. 그러나 그 마음은 내게 불만이 있었소."

이거이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조박의 말은 모두 개인 감정입니다. 제공(諸公)들은 들어보시오."

조박이 크게 부끄러워했습니다.
조준과 이거이를 석방해 각기 집으로 돌려보내고, 조박은 이천으로 쫓아냈으며, 권진은 축산도로 귀양보냈습니다.

이 사건으로 좌산기상시 박은이 충주목사로 나가는 등 대간ㆍ형조가 모두 좌천당했습니다. 최이(崔迤)가 새로 대사헌을 겸임하게 됐고, 서유(徐愈)ㆍ맹사성(孟思誠)이 산기상시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