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8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81>

조준의 다섯가지 죄목

이방간의 거사를 진압한 직후 임금과 세자는 도독중외제군사(都督中外諸軍事)라는 군사 기구를 만들어 문하부 참찬 조영무(趙英茂)를 도진무(都鎭撫), 중추원 상의 윤방경(尹方慶)과 전 완산부(完山府) 윤 최원(崔遠)을 상진무(上鎭撫)로 삼았습니다.

며칠 뒤에는 임금과 세자의 매부인 이저를 삼군부 판사로 삼으면서 이저(李佇)ㆍ이숙번(李叔蕃)에게 좌군, 이거이(李居易)ㆍ조온(趙溫)에게 중군, 조영무(趙英茂)ㆍ이천우(李天祐)에게 우군을 맡겼습니다. 이원(李原)은 우부승지에 임명했습니다.

사헌부에서는 문하부 판사 조준을 탄핵했습니다. 조준은 수상(首相)으로서, 나라에 급하고 어려운 일이 있는데도 아우인 삼사 우복야 조견과 사위인 전 중추원 부사 정진(鄭鎭)과 더불어 모두 두문불출(杜門不出)했다는 것입니다.

3성에서 함께 의논하고 탄핵하려 했는데, 우산기 윤사수가 조준의 추천으로 발탁된 자여서 그 의논을 누설했습니다. 3성에서 윤사수를 탄핵해 파직하고는 합동으로 조준의 죄를 논했습니다.

조준이 문하부 판사에 임명되자 지위는 높으나 실권이 없어 기분 나빠하며 밤낮으로 다시 정승이 될 궁리만 하고 있다며 다섯 가지 죄목을 꼽았습니다.

첫째는 수상으로 앉아 이방석을 세자로 세우는 것을 막지 못했고 1398년 변란 때 관망하다가 마지못해 참여한 일, 둘째는 개국 초에 귀양 보낸 자들을 임금 몰래 곤장쳐 죽인 일, 셋째는 주제 넘게도 왕실의 길흉을 점치고 기생첩 국화가 그 말을 누설하자 그를 죽여 입을 막은 일, 넷째는 웅장한 자신의 집을 보고 탄식한 사람을 극형에 처한 일, 다섯째는 이번 이방간의 거사 때 문을 닫은 채 변란을 관망하고 사위를 보내 반란군을 도우려고까지 한 일 등이었습니다.

3성에서는 관원을 보내 세 사람의 집을 둘러싸고 지키게 해서 나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임금이 글을 보고 말했습니다.

"말한 죄목이 모두 과인이 아는 것과 다르니, 다시 말하지 말라."

사헌부에서 다시 글을 올려 조준 등의 처벌을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이 이거이에게 일렀습니다.

"조준의 성품으로 틀림없이 이것을 통한(痛恨)할 것이다."

임금이 조준ㆍ조견ㆍ정진 등을 용서하니, 세 부서에서 굳이 간쟁했습니다. 조준이 글을 올려 사직했으나 윤허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조준의 죄가 아니다. 어찌 이런 식으로 충성스럽고 선량한 사람을 잘못 해치려고 하는가? 경들이 만일 굳이 간쟁한다면 충성스럽고 선량한 사람을 잘못 해치는 죄에 걸겠다."

임금이 조준을 용서한 것은 이거이ㆍ이무가 주장해 구원한 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다시 조준을 문하부 판사로 삼고, 단양백 우현보에게 추충보조공신(推忠輔祚功臣)의 칭호를 내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조준과 함께 거론됐던 조준의 아우인 삼사 우복야 조견과 조준의 사위 정진의 아버지인 중추원 판사 정홍(鄭洪)은 파면했습니다.

한 달 뒤 좌정승 심덕부가 늙었다며 사직해 이루어진 인사 때도 조준은 사직을 청했으나, 임금은 조준을 다시 문하부 판사에 임명했습니다.

이때 성석린이 좌정승으로 올라가고 세자의 장인인 민제가 새로 우정승에 발탁됐으며, 상중이라 중추원 상의로 옮긴 전백영의 대사헌 자리는 정당문학 권근이 겸하게 됐습니다.

조준은 결국 4월에 그 자리를 물러났습니다. 이때 관제를 개편해 의정부를 새로 만들었는데, 성석린ㆍ민제 두 정승은 의정부 판사로 이름을 바꿨고, 삼사 영사 이화와 새로 문하부 판사가 된 이거이도 의정부 판사를 겸했습니다. 이거이에게는 상서사 판사도 겸하게 했습니다.

성석린의 공신호를 동덕찬화공신(同德贊化功臣)으로 고치고 민제를 동덕좌명공신(同德佐命功臣)으로 고쳤으며, 모두 군국(軍國)의 중요한 일에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때 노한이 사헌부 시사가 되었는데, 정승 민제의 사위 노한을 사헌부 관리로 삼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며 임금에게 말하자 공조 의랑 전이와 자리를 맞바꾸었습니다.

이거이는 문하부 시랑에서 문하부 판사로 뛰어 승진했는데도 정승이 되지 못한 것을 불만으로 여겨 다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아직 늙지 않았다. 문하부 판사로 승진은 했지만 솥을 이고 깊은 연못에 들어가는 것 같다."

그 형 이거인이 듣고 탄식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거이가 제 재주와 덕을 헤아리지 않고 공신이라는 것과 그 아들이 임금에게 총애를 받는다는 것만으로 일찍이 정승이 되려 했는데, 그래서 그런 말을 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