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이 미국 언론을 망치고 있다’
지난 해 부시 대통령이 9.11테러 가능성에 관한 사전 정보를 보고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미국 정계가 심각한 논쟁에 빠져 있는 가운데 미국 최고의 언론인중 한 사람이 9.11 이후 미국 언론이 애국심에 함몰돼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양심고백을 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년간 CBS 방송의 간판 앵커를 맡아오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인중 한명으로 대접받고 있는 댄 래더(70)는 지난 16일 밤(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9.11사태 이후 미국 사회내에 팽배한 맹목적 애국심이 미 언론인들의 언론자유를 목조르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 또한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전쟁과 관련, 물어야 할 질문을 묻지 못하는 등 스스로 위축돼 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래더는 BBC2 TV ‘뉴스나이트’와의 인터뷰에서 “한때 남아공에서는 사회 대다수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에 불타는 타이어를 씌운 적이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9.11 이후) 이곳에서는 ‘애국심 결여’라는 불타는 타이어를 사람들 목에 씌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렵고도 어려운 질문을 해야 할 언론인들에게 이같은 의문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은 바로 이(불타는 타이어)에 대한 공포”라고 밝혔다.
래더는 그 자신도 이같은 공포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인정하면서 현재 미국 언론의 문제는 자기검열이라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나 자신의 애국심에서 시작된다. 나아가 나라 전체가, 모든 사람들이-정당한 이유에 의해-애국심의 물결에 잠겨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서는 다음과 같이 뇌까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제대로 된 질문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저들은 알고 있을까? 지금은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아니야’”
그의 인터뷰를 전한 영국 신문 가디언은 미국 대통령만큼이나 유명한 래더로부터 이같은 고백을 듣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래더는 직업수명이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대통령보다 장수하고 있으며 아마도 대통령보다 미국 국민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사람일 것이라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래더는 전설적인 뉴스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의 뒤를 이어 20년째 CBS 메인 뉴스를 담당하고 있다.
한편 래더는 이 인터뷰에서 미국 언론이 대테러전쟁에 관한 적절한 정보를 미 국민들에게 전달하지 못한 데에는 백악관의 책임 크다고 밝혔다. 그는 “크든 작든 미국이 치른 전쟁중 이번 전쟁만큼 언론통제가 심했던 전쟁은 없었다”고 말했다.
“전쟁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면에 대한 접근의 제한, 정보의 제한은 매우 위험하며 결코 용인돼서는 안 된다. 유감스럽게도 이 인터뷰를 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처럼 용납돼서는 안 될 일들이 미 국민들의 압도적 다수에 의해 용인되고 있다. 현 정부는 이같은 상황을 즐기고 있으며 이 상황 속에 안주하고 있다.”
그는 그러나 미국 언론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면서 전쟁을 병정놀이 다루듯 즐기는 요즘 미국 언론의 풍조 때문에 ‘millitainment(military+entermainment)'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라고 개탄했다.
래더는 자신이 생각하는 애국심은 부시 행정부의 그것과는 다르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당하게 일어서서 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들이 원치 않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애국적인 것이다. 우리의 아들과 딸, 남편과 아내를 전장으로 내몰아 죽음에 직면케 하는 그들이야말로 책임, 궁극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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