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제학계의 석학 폴 크루그만 교수(프린스턴대)가 최근 베네수엘라 쿠데타 사태를 환영한 부시 행정부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크루그만 교수는 '(미국은) 라틴아메리카를 잃고 있다' 제하의 16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이번 사태중 최악의 사건은 미국이 스스로의 민주원칙을 배신한 것"이라며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이라는 원칙 뒤에 '미국의 국익에 맞는 한'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실정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부시 행정부가 이번 쿠데타에 대해 호의적 태도를 보인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이웃인 중남미 지역에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 교역ㆍ안보ㆍ마약 등 모든 문제에서 미국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부시 행정부가 간과했다는 것이다. 크루그만 교수는 90년대 이후 중남미의 민주화가 진전됨으로써 조잡한 포풀리즘과 군사독재의 전통적인 악순환을 벗어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이번 쿠데타에 대해 중남미 국가들이 민주원칙을 결연히 지킨 반면 미국은 그렇지 못했다며 부시행정부의 무원칙한 편의주의를 꼬집었다.
"나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우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에 필요한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자유롭고 공정하며 합헌적인 절차에 따라 선출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다. 이 때문에 서반구(미주)의 모든 민주국가들은, 차베스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 그에 대한 쿠데타를 비난했다. 모든 민주국가중 유일하게 한 나라(미국)만이 이 대열에 동참하지 않았다."
크루그만 교수는 냉전이 끝난 90년대 이후 중남미에서 시도된 경제 개혁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불안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며 이는 정치부문의 개혁, 민주화가 착실히 진행된 덕택이라고 지적했다. 즉 1995년 멕시코 경제위기, 99년 브라질, 지난 해말 이후의 아르헨티나 등 잇단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중남미 지역이 안정을 유지한 것은 이 지역에 민주주의가 단단히 뿌리를 내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때 중남미에는 미국의 후원을 기다리는 우익독재자들이 활개쳤던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면서 미국은 이번에도 "(베네수엘라의) 거대기업과 부호 등" "기묘할 정도로 무능력한 음모꾼들과 동맹을 맺었다"고 비판했다.
크루그만 교수는 이번 쿠데타가 성공했다 하더라도 미국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사 이번 쿠데타가 성공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행동이 매우 어리석은 것이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민주적 가치의 공유에 기반을 둔, 신뢰에 가득찬 새로운 서반구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런 좋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걷어찰 수 있단 말인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