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9일자에 실린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원자력 체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기사를 읽었다. 지난 27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있었던 김종철 발행인의 강연을 요약한 이 기사는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대재앙 사건 발생 6개월이 흐르면서 우리 국민의 뇌리에서 그 참상이 점차 잊혀져가고 있고, 언론마저 관련 보도를 거의 하지 않는 시점에서 나온 것이라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런데 그의 강연 내용 중에는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이 있는 반면, 충분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채 제기된 주장이나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되는 제안들도 있어 자칫 좋은 주제와 내용을 이야기하고서도 국민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반핵·탈핵 진영에 가까운 사람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글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쓰고 있다. 따라서 필자의 칼럼은 앞으로 환경 운동을 하는 사람, 특히 반핵·탈핵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반핵·탈핵의 대의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해둔다.
그는 강연 앞머리에서 "아시아에 지옥문이 열린다. 지금도 계속 엄중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은 선거 문제에만 몰입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다. 선거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며 핵발전소(나는 원자력 발전소보다는 핵발전소가 사실에 더 부합하다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최무영 교수의 지적에 따라 이 용어를 사용) 문제를 언론이 주요 의제로 다루지 않음을 통탄했다.
그의 지적대로 핵발전소 문제가 우리 언론에 눈에 별로 띄지 않는 까닭은 선거 문제 몰입(최근 안철수 현상과 서울 시장 보궐 선거 후보 문제가 언론의 주 보도 대상이 되었음)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쉽게 달아올랐다 쉽게 식어버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태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을 터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언론뿐만 아니라 환경 운동 진영이나 정치인 등 관계자들이 모두 반성해야 할 부분이 분명 있다고 본다.
그의 글을 찬찬히 몇 번이나 읽었다. 세계 최악의 핵발전소 참사가 일본에서 벌어진 뒤 반핵·탈핵 운동의 전도사가 되어 6개월가량 전국을 다니면서 강연을 한 그의 열정이 느껴졌다. 반핵·탈핵 운동의 열기와 관심은 날이 갈수록 사그라지고 있고 이 점을 안타까워하는 심정도 강연에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여러 부분에서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주장이 눈에 띄었다.
먼저 김종철 발행인이 반핵·탈핵 주장을 펴면서 최근 언론의 보도가 쏠리고 있는 서울 시장 선거와 연계시킨 부분을 보자. 그는 박원순 변호사는 "수십 년 동안 시민 운동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현재 후보로 나온 이들 중에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한 뒤 이렇게 말했다.
"시골 사람들은 방사능을 평생 맞으며 돈 몇 푼 받으며 산다. 박원순 변호사가 이런 문제에 투철한 의식이 있다면 이런 공약을 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는 서울에서 짓겠다'고. 그게 양심적인 사람이다. 아니면 집집마다 재생 에너지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하라. 하지만 그런 건 말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박원순 변호사는 그렇게 아이디어가 많다던데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까."
이 부분만 떼어내 보면 박원순 변호사는 핵문제에 대해 투철한 의식이 없는 사람, 양심적이지 않은 사람이 된다. 또한 아이디어도 신통치 않은 사람이 된다. 재생 에너지 시설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생각은 필자나 박 변호사나 김종철 발행인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서울에 핵발전소를 짓겠다는 공약이나 집집마다 재생 에너지 시설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박 변호사가 내놓지 않았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폄훼하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다. 모든 서울 시민의 집에 재생 에너지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미래의 꿈이나 희망일지는 모르겠으나 서울 시장이 지금 당장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공약은 결코 아닐 것이다.
또 핵발전소가 정말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면, 지방의 전기를 끌어다 쓰지 말고 서울에(또는 여의도나 청와대 옆에) 핵발전소를 지으라는 주장은 김종철 발행인이 처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상지대학교 홍성태 교수를 비롯해 다른 몇몇 지식인들도 핵발전소 또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과 관련해 이와 비슷한 발언을 하거나 글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결코 대다수 사람들, 특히 지식인층이나 여론 주도층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핵발전소는 아무 곳에나 건설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을 무시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반핵·탈핵 진영 쪽의 사람들이 이와 유사한 주장을 더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또, 사실이라면 매우 중대한 국면이 초래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원자력 발전소는 평소에도 방사능이 나온다. 원자력 발전소 주변에 오래 살면 아기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정부, 산업계는 절대 이를 부인한다. 그런 말 하면 '정크 사이언스(Junk science)'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역학 조사로도 나온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식물과 동물은 거짓말을 안 한다. 원자력 발전소 인근에는 갈매기가 없다."
방사선은 많이 쬐면 여러 장애가 나타나고 그 가운데 불임도 있을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는 평소에도 방사능이 나오고 원전 주변에 오래 살면 아기를 갖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는 그 출처나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역학 조사 결과 밝혀졌다고만 말한다.(내가 그의 강연을 직접 들은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가 실제 강연에서 관련 근거를 제시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핵발전소에서는 매우 심각한 정도의 방사성 물질이 오래 전부터 외부로 계속 누출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핵발전소는 지금 당장 가동을 멈추어야 한다. 김 발행인의 주장대로 이런 놀라운 역학 조사 결과가 있다면 왜 이런 사실이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강연에서 한번 이야기하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중차대한 사안이다. 그는 이것이 사실인데도 정부와 산업계가 엉터리 연구 결과(쓰레기 과학)라고 주장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사회적 논쟁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는 또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동물과 식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원자력 발전소 주변에는 갈매기가 없다"고 밝혔다. 아마 핵발전소 주변 바다는 물고기가 살지 못해 갈매기도 살지 못하는 곳이어서 사람도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런 주장에 대해 고리 원자력 발전소에 근무하고 있다는 한 누리꾼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발전소 주변에 갈매기며 오리떼며 바글바글 합니다만. 발전소 주변에 오래 살면 아기를 못 갖는다는 말은 이 기사에서 처음 보네요. 사무실 사람들 보여주니 박장대소를 합니다." 핵발전소 인근에 갈매기가 살고 있느냐 살지 못하느냐의 문제는 논쟁의 성격을 띠고 있지 않으며 단박에 알 수 있는 문제이다.
그의 강연 내용 가운데 누리꾼들한테서 가장 많이 비판받는 부분은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밝힌 '전기 없는 날'을 만들자는 대목이다.
"또한, 원자력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걸 시민이 느끼게 하려고 1주일에 하루는 '전기 없는 날'을 만들었으면 싶다. 종로구는 월요일, 서대문구는 화요일 등으로 1주일에 한 번 정전의 날을 돌아가면서 정한 뒤, 그날만 되면 전기를 쓸 수 없도록 하는 거다. 그러면 전력 소비는 줄어들고, 국민이 전력에 자의식을 가질 것이다. 원자력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걸 스스로 깨우치는 계기가 될 거로 생각한다. 또 전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알아보고 고민하게 될 거다. 그러면 전력을 지금처럼 함부로 쓰지 못할 거다. 어떤가."
그가 '전기 없는 날' 제정까지 거론하는 것을 보니 평소에도 탈핵의 실천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아이디어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으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이다. 물론 전기를 함부로 쓰지 않고 아껴 쓰자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구별로 요일을 정해 그 날은 아예 전기 없이 지내자는 그의 말에 대해 한 누리꾼은 이렇게 비판한다.
"1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전기 없는 날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한 소리다. 한겨울에 보일러 얼어터지는 소리나 다를 바 없다. 모든 산업시설이 올 스톱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러지 말고 아주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젤 속 편하잖아."
어떤 누리꾼은 껌껌한 밤에 어떤 범죄가 어디서 생길지 모른다고 목청을 높인다. 가정집에서 한두 시간 정전을 하는 정도는 그래도 감내할 수 있을지 모르나 하루 종일 전기를 끊고 살아보자는 주장은, 적어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최근 일어난 정전 대란 사태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지하에서 장사를 하는 서민 자영업자는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전기 끊긴 세상에서 피해를 확실히 보는 쪽은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다.
김 발행인은 원자력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한 번 해보자고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국민 절대 다수가 오히려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을 떠안고라도 전기 없는 날을 없애자고 할 것 같다.
효과적인 반핵·탈핵 운동을 위해서는 합리적이고도 논리적이며 과학적인 방식으로 청중과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채 주장만 앞서는 접근 방식은 오히려 반핵·탈핵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마저 멀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반핵·탈핵이든 환경 운동이든 이미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끼리의 단합을 위한 자극적 주장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즉 외연을 넓혀가는 쪽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어떻게 글을 쓰고 어떤 말을 해서 그들을 설득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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