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체니 미 부통령이 파산한 미 기업 엔론의 해외 부채를 받아내기 위해 지난 해 인도 정부측에 압력을 가한 사실이 밝혀졌다.
블룸버그 통신 등 미 언론은 18일(현지시간) 정보공개법에 의해 이날 공개된 미 정부문서를 인용, 이같이 폭로했다. 또 미 국가안보회의(NSC)의 주도 아래 진행된 이같은 노력에는 체니 부통령뿐만 아니라 로렌스 린지 대통령 경제보좌관과 국무부. 재무부, 무역대표부 등도 가담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뉴욕 데일리 뉴스는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은 부시행정부가 엔론의 사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들에 관해 접촉해 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공개된 NSC 문서에 따르면 체니 부통령은 인도를 방문중이던 지난 해 6월 27일 야당 지도자인 소니아 간디를 만나 엔론 문제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엔론이 인도에 건설한 다브홀댐과 관련해 인도 국영기업이 엔론측에 빚진 부채 6천4백만 달러의 상환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다음 날인 6월 28일 미 NSC 요원은 “좋은 뉴스는 부통령께서 어제 소니아 간디와의 회담에서 엔론 문제를 언급했다는 사실입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본부에 보냈다. 또다른 이메일들은 엔론의 부채 회수를 위한 노력에 미 국무부와 재무부도 깊숙이 개입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당시 엔론의 케네스 레이 회장이 워싱턴을 방문한 예정임을 시사하는 이메일도 있으나 실제로 레이 회장이 체니 부통령측과 접촉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또 체니 부통령은 지난 해 9월 인도 외무장관과의 회담을 앞두고 다브홀 문제에 관한 ‘발언 요지’를 전달받았으나 실제 회담이 이루어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미 정부 문서들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난 해 11월 부시 대통령의 인도 방문 때 바지파이 인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할 예정이었으나 마지막 순간에 포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 해외투자공사(OPIC)의 피터 왓슨 회장은 양국 정상회담 사흘전인 11월 6일 바지파이 총리의 고위 측근인 브라제시 미쉬라에게 편지를 보내 “이 문제의 해결이 늦어짐에 따라 다브홀 건은 미 행정부의 최고위선까지 올라가게 되었다”면서 만약 엔론 부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11월 9일로 예정된 양국 정상회담에 앞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인도 정부측에 촉구했다. OPIC는 미 정부기관으로 엔론의 대(對) 인도투자에 3억6천만 달러 규모의 지급보증을 서주었다.
미 정부측의 엔론 부채 회수 노력은 미.인 정상회담 하루전인 11월 8일 갑자기 중단됐다. 이 날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파산 직전에 몰린 엔론의 회계감사를 위해 소환장을 발부한 날이다.
11월 8일 작성된 NSC 문서에는 “부시 대통령께서 다브홀 문제를 거론해서는 안 됨”이라고 돼 있다. 또 부시의 경제보좌관인 로렌스 린지에 대해서도 “다브홀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함”이라고 권고했다.
이에 앞서 11월 1일 OPIC는 백악관측에 “바지파이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다브홀 문제와 관련한 부시 대통령의 발언 요지”를 이메일로 보내는 등 치밀한 준비를 했었다.
이에 대해 아리 플레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 기업의 해외투자와 관련한 미 정부의 개입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라면서 이는 “미국 납세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 정부기관인 OPIC가 엔론의 투자에 3억 달러 이상의 지급보증을 선 것을 지칭한 것이다.
또 체니 부통령의 대변인 매리 매틀린은 “우리는 그 문제에 관심없다”면서 “부통령은 브리핑 서류에 있는 대로 질문했을 뿐이며 엔론 문제를 거론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그녀는 또 체니 부통령과 레이 엔론 회장은 엔론의 인도 부채 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7백40 메가와트 규모의 발전용 댐인 다브홀댐은 지난 1992년부터 건설을 시작, 약 30억 달러를 들여 완공됐으나 현재 가동되지 않고 있다. 전력 요금이 이 지역 경제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다브홀댐은 엔론의 해외투자 중 최대 규모로 엔론이 6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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