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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깅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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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깅리치

보수혁명 지도자에서 아이디어맨으로 변신

9.11사태 직후 미 국무부가 발표한 세계 테러 조직 명단에는 당초 하마스와 히즈볼라가 빠져 있었다. 이들을 보호하는 이란과 시리아 정부의 심기를 건드려 국제 반테러 공조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며칠 후, 이 명단에는 하마스와 히즈볼라가 추가됐다.

이들이 추가된 이유는 무엇일까? 콜린 파월 국무장관 앞으로 우송된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공화당 출신 전 하원의장 뉴트 깅리치가 파월 장관에게 보낸 항의편지 이후 국무부가 군말없이 이 두 조직을 테러 명단에 포함시킨 것이다.

뉴트 깅리치. 조지아주 한 대학의 역사학 교수 출신으로 지난 1994년 중간선거에서 42년만의 공화당 하원 탈환이라는 보수혁명을 이루어내면서 클린턴 대통령을 능가하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 그러나 지나친 독선과 오만으로 당내 반발을 초래, 지난 98년 쓸쓸히 정치무대를 떠났던 그가 부시 행정부 이후 워싱턴 정가에서 은밀히, 그러나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깅리치는 98년 정계를 은퇴한 후에도 워싱턴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보수파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에 적을 두고 강연 등 한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깅리치가 올들어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의 친구들을 비롯, 공화당 최상층부와 빈번히 만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깅리치는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과는 오랜 친구사이,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과는 스탠포드대 후버연구소에서 함께 일한 동료관계다. 또 대통령 고위보좌관 칼 로브, 백악관 자문관 카렌 휴즈 등과는 무시로 전화를 하는 막역한 사이다. 럼스펠드는 깅리치를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다.

깅리치의 정치적 영향력은 이처럼 두터운 공화당 인맥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9.11 이후 미국사회의 최대 화두인 테러리즘은 사실 그의 전문 분야다. 그는 이미 지난 1984년 ‘기회의 창문’이란 저서를 통해 국제테러에의 대응을 촉구한 바 있다. 1997년에는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미국에 대한 장단기 안보 위협을 평가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98년 정계를 은퇴한 후에도 깅리치는 이 위원회 활동만은 계속했다. 올해 1월 발표된 이 위원회 최종 보고서의 결론은 ‘미 본토가 파국적 재앙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9.11사태는 깅리치가 주도한 이 위원회의 결론을 사실로 입증한 셈이다.

따라서 깅리치는 9.11사태에 대해 슬픔과 분노를 느끼기는 했지만 전혀 놀라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9.11보다 더한 테러가 뒤따를 것으로 믿고 있다.

깅리치는 현 부시행정부의 테러전쟁에 대해 불만이 많다.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운동가들과는 정반대의 이유에서다. 그는 테러전쟁을 보다 화끈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 행정부 내의 매파 관리들이 주장하고 있는 이라크로의 확전으로도 부족하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아프간전쟁을 계속하고 이라크로 확전하는 동시에 소말리아와 수단의 테러기지들도 작살을 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매파 중의 매파인 셈이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부시 행정부 각료들에 평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해 깅리치는 “엄청나게 존경하고 있다”며 “그녀는 자기 직책을 잘 수행해 낼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다. 럼스펠드에 대해서는 “현 정부 내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 중의 하나이며 매우 단호하고 진지하다”고 평가한다.

비둘기파의 대표격인 파월 국무장관에 대해서는 “콜린은 매우 훌륭한 외교관이자 훌륭한 대변인”이라고 겉치레 칭찬을 하면서 국무부 관료들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한다. 국무부 관료들은 ‘그 망할 놈의 안정에 눈이 뒤집혀 상황을 현실적이고 솔직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매일 한건씩 국무부 각 부서들이 진짜 엿같은 아이디어를 백악관에 올리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 아이디어들이 국가안보회의 사무실 부근에서 차단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 행정부의 강점”이라며 라이스를 안보보좌관을 또다시 치켜 세운다.

직업관료들뿐만 아니라 군인들도 깅리치의 표적이다. 그는 현재 부시 행정부가 일을 잘 해내고 있지만 문제는 클린턴 행정부에 의해 군과 행정부 요직에 임명된 이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 있어 일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깅리치는 진주만 피습 이전, 당시 조지 마샬 합참의장이 무능한 대령급 장교 수백명을 강제 퇴역시켰던 전례를 상기시키면서 부시 대통령이 보다 단호하게 군과 관료를 숙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9.11테러를 미 정보기관이 사전 탐지 못한 데 대해 책임논쟁이 일면서 일부에서는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을 문제삼았다. 인권관련 기록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정보기관 요원으로 채용하지 못하도록 한 클린턴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미 정보기관의 정보력을 약화시켰다는 주장이다.

이 문제에 관한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CIA 소속의 한 고문변호사는 현 정책이 옳다는 요지의 증언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깅리치는 대노했다고 한다. ‘그런 놈은 의회를 나와 자기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에 모가지를 잘랐어야 했다’는 것이다.

희한한 아이디어가 많기로 소문난 깅리치는 부시 행정부에 대해 직접, 또는 간접으로, 테러뿐만 아니라 경제 문제 등에도 끊임없이 조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경제회생을 위해 관광 목적의 여객기 탑승에는 최고 1천달러까지 면세 혜택을 줄 것’ ‘아프간 난민 구호는 월마트에 맡길 것’ 등이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라고 한다.

깅리치가 소속된 국방정책위원회의 의장인 리차드 펄-그 또한 깅리치 뺨치는 강경보수파이다-은 “뉴트의 의견은 현 정부에 의해 거의 다 받아들여진다. 왜냐하면 그는 대단히 설득력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깅리치 자신은 “누구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좋아하기 마련”이라며 “특히 중요한 것은 내 말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역 정치인 시절보다 지금 자신의 아이디어가 많이 수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깅리치는 한때 미국을 지구의 운명을 책임질 지도자로 묘사했었다. 이처럼 미국제일주의자인 데다 대외정책에 관한 한 매파 중의 매파인 깅리치가 욱일승천하고 있는 게 요즘 워싱턴 정가의 기류이다. 실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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