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요 언론사들이 지난 해 미 대선에서 말썽많았던 플로리다주의 투표지를 재검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분명한 승리를 확인하고도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의 5대 권위지중 하나인 텔레그라프는 지난 21일 ‘결국 앨 고어의 승리인가? 미국 신문들은 말하려 하지 않는다’ 제하의 기사에서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기사에 따르면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시카고트리뷴, CNN 등 미국의 8개 주요 언론사들은 지난 해 플로리다주 대선 개표에서 ‘판독 불가’로 무효 처리된 17만5천표의 정밀 재검표를 시카고대학 산하 전국여론조사센터(NORC)에 의뢰했다.
2백만달러의 예산을 들여 올해 초 시작된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8월말경 대략 윤곽이 드러났으며 늦어도 9월 상반기에는 최종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9.11테러가 발생하면서 돌연 발표가 연기됐다는 것이다.
언론사 컨소시엄측은 자금 등 자원 부족, 9.11테러 및 뒤이은 테러전쟁 등 엄청난 사건으로 인한 상대적 관심의 결여 등을 연기 이유로 꼽으면서 적절한 시점에 결과를 밝힐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텔레그라프는 “진보적 성향의 미 언론들은 당초 고어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 아래 재검표를 추진했으나 9.11테러가 발생하면서 강력한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애국심 앞에 이같은 희망을 희생시킨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의 소유기업인 다우존스사의 고위 간부 스티븐 골드스타인은 “국가의 우선순위가 바뀌었고 따라서 우리의 우선순위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편 뉴욕타임스의 대변인 캐서린 마티스는 “자원 부족과 전쟁 때문에 우리는 재검표 조사를 연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언젠가 재개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의혹을 처음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프리랜서 기자 데이비드 포드빈은 언론사측이 고의로 검표 결과를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전직 언론사 사장이며 ‘이번 조사에 정통한’ 한 소식통의 말을 빌어 “고어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승자로 드러났기 때문에 언론들이 이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포드빈은 makethemaccountable.com이라는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포드빈에 따르면 당초 조사에 참가한 언론사들은 3가지 시나리오를 갖고 이번 조사를 시작했다. 부시의 승리, 양자의 무승부, 고어의 간발의 승리 중 어느 것도 대선 결과를 뒤집지는 못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조사에 임했다는 것.
그러나 예상외로 고어의 압도적 승리라는 결과가 나타나자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드빈은 이번 검표작업에 참여한 뉴욕타임스의 한 기자가 친구에게 고어와 부시의 표차는 “부시에게 중대한 문제가 될” 정도로 컸다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 검표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 것은 언론사측의 주장처럼 테러 때문이 아니라 이들 언론사의 소유주인 금융자본의 압력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 금융자본은 부시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인터넷상에는 이같은 의혹들이 무성하게 퍼져가고 있지만 뉴욕타임스 등 해당 언론사들은 기사로는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단지 워싱턴포스트의 미디어비평 전문기자 하워드 커츠가 지난 15일 전쟁보도 관련 기사에서 이 문제를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갔다.
커츠는 “전쟁기간 동안 부시 대통령의 지도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는 배려 때문에 언론사들이 검표 결과의 발표를 억제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인터넷 상에 퍼져가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올 연말경 그 결과가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호주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22일 텔레그라프의 기사를 전재하고 그 이전 프랑스와 캐나다 언론들이 이 문제를 보도하는 등 의혹은 미국 외 언론에서도 점차 퍼져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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