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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석유.이스라엘 보호 위해 억압정권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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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석유.이스라엘 보호 위해 억압정권 지원

민주화가 테러근절 관건

2주전 얘기다.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교를 단절했다. 9.11사건 이전까지 아프간 탈레반 정권과 국교를 맺은 나라는 사우디 아라비아, 파키스탄 등 단 세 나라에 불과했다. 이 참사를 계기로 사우디가 먼저 단교 조치를 취한 데 이어 UAE가 그 뒤를 따른 것이다.

단교 소식이 전해지던 날, UAE 수도 두바이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손님들의 휴대폰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하면서 문자 메시지가 반짝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랍어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짧고도 간결했다. “아프간 형제들과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이 레스토랑에 있었던 압둘라 다스말(34)이라는 남성은 휴대폰 메시지를 가리키며 “자, 보시오. 심지어 부자들조차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있소. 청바지를 입었거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도 성전에 참여하려 하고 있소. 정부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을 거요”라고 말했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타임스 9일자가 전하는 이 일화는 미국의 아프간 공습에 대한 아랍 민중의 분노가 어떠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랍과 동남아의 회교국 정부들이 대부분 침묵으로 미국의 공습을 용인하거나, 나아가 적극 협력하고 있는 데 반해 일반 시민들은 분명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공식 입장과 일반 시민과의 이같은 분명한 입장 차이는 거의 모든 회교권 국가들이 세계에게 가장 억압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회교권 국가에서는 대부분 언론과 집회결사의 자유가 없다. 고문이 일상화돼 있고 반대파는 무자비하게 탄압당한다.

그 결과 정부와 국민은 따로 놀게 돼 정부가 미국에의 협력을 약속하는 반면 국민들은 미국에 대해 적대감을 갖게 된다. 사실 이같은 억압적 정치체제가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과격 테러리스트들을 양산하는 토양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중남미와 아시아, 그리고 동구권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민주화가 진전됐다. 반면 북아프리카에서 중근동에 이르는 아랍권에서는 2차대전후 민주화가 거의 진전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민주적이라는 튀니지, 모로코, 요르단, 예멘 중 모로코와 요르단은 왕정이며 튀니지는 언론자유 탄압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예멘은 미국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낙인 찍혀 있는 형편이다.

이집트의 경우, 454석의 국회 의석중 야당 의석은 20석 남짓에 불과하다. 정치적 집회는 철저하게 봉쇄당한다. 한 시민은 “이집트에서는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반대 데모도 허용이 안 된다”고 개탄할 정도다.

이처럼 오래도록 아랍권이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후원 덕택이다. 미국은 핵심자원인 석유의 안정적 공급과 이스라엘 보호를 위해 중동 지역의 기존 정치체제를 유지 강화시켜 왔다. 미국의 후원 덕택으로 정권의 안정을 유지하고 석유 등 거대한 개인적 부를 누려 온 아랍권의 권위주의 정권은 그 댓가로 미국의 중동정책을 떠받쳐 왔다.

하지만 빈부 격차의 심화 등 국내적 모순에 직면한 아랍 정권들은 내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갈등과 같은 국외의 모순을 부각시켰고 이는 미국에 대한 반발을 더욱 격화시키는 악순환을 이어갔다.

이집트 반정부단체의 한 지도자는 “그것은 기만적 안정”이라면서 “우리는 이를 재 속의 불씨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힘에 의한 억압으로 겉으로는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절망과 적개심, 분노 등이 자라나면서 폭력의 악순환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중잣대도 아랍 민중의 적대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은 겉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지만 실제 대외정책에서는 이를 유린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번 아프간 공습을 시작하면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전국에 방영된 TV연설을 통해 “미국의 자유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군사행동에 나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공습에 협력을 약속한 40개 국가중 서방 국가를 제외하고 제 나라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타지스탄의 카리모프 대통령은 모두 KGB 출신으로 체첸 반군이나 자국민에 무자비한 테러를 감행한 전력이 있다.

미국의 양대 회교권 동맹국인 파키스탄이나 사우디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은 2년전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좌에 오른 인물이다. 사우디 역시 건국 이래 억압적 봉건 왕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테러의 주범으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이 사우디 출신으로 부패한 사우디 왕조의 타도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이 아프간 탈레반 정권의 대체세력으로 점찍고 있는 북부동맹도 민주주의나 인권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다. 아프간 사정에 정통한 한 언론인은 “북부동맹을 이루고 있는 15개 군벌들은 강도, 강간을 일삼아온 깡패 집단”이라며 빈 라덴이 ‘이슬람의 테러리스트’라면 북부동맹은 ‘미국을 위한 테러리스트’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북부동맹의 최대 군벌중 하나인 압둘 라시드 더스툼의 경우, 90년대 내전 기간 동안 강간 살인을 일삼은 것은 물론 뇌물을 받고 탈레반과 반 탈레반을 넘나든 기회주의적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민주적 통치는커녕 효율적 지배마저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냉전 시절, 미국의 반공의 이름 아래 모든 우익 독재를 지원해 왔다. 그 결과 중남미 등지에서 벌어진 학살과 인권 유린 등은 이루 다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다. 외교정책전문가들은 9.11참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과거 냉전시대의 ‘반공’과 맞먹을 만큼 미국의 주요한 외교원칙으로 떠올랐다고 지적한다.

반(反)테러를 선언한 국가라면 민주화나 인권 존중과는 관계없이 무조건 손을 잡을 정도가 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맹목적 ‘반테러 지상주의’가 또 어떤 부작용을 초래할지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나선 지금,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과거의 실수를 또다시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반테러의 이름 아래 권위주의적 정권을 지원함으로써 수없이 많은 테러리스트들을 양산, 중동과 세계를 폭력의 악순환으로 몰아넣을지는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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