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60년대 이후 최대 정치운동"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60년대 이후 최대 정치운동"

FT, 반세계화 시민운동 평가

지난 9월 11일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반세계화 시민운동에 관한 특집기사를 실었다. 2달간의 집중적인 취재 끝에 작성됐다는 이 기사에서 파이낸셜 타임스는 반세계화 시민운동에 대해 “이 운동은 굉장한(formidable) 운동임이 드러났다”고 결론 내렸다.

“무정부주의자들의 순회 서커스”라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비아냥은 이 운동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이 신문은 반세계화 시민운동이 다양하고 일관성이 없으며 통일된 정책목표나 전통적 의미의 지도부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매우 잘 조직돼 있고 현 상황에 대해 매우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또 엄밀한 의미에서 이 운동은 ‘반(anti)세계화’라기보다는 ‘반(counter)자본주의’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지나치게 심화됐다는 단순한 생각을 중심으로 거대한 정치 행동의 새 물결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르 몽드가 지난 여름 프랑스인들을 상대로 여론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계화의 덕을 본 집단은 다국적기업’이라고 말한 비율은 응답자의 56%나 된 반면, ‘소비자나 일반 시민도 세계화의 혜택을 입었다’는 비율은 1%에 불과했다고 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모기들이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다’는 제목의 이 기사를 통해 최근 수년간 반세계화 시민운동의 급속한 성장을 보여주는 몇가지 사례를 들었다. 우선 5년전만 해도 6개에 불과했던 반세계화 운동단체가 이제는 200개 이상으로 불어났다. 1999년 워싱턴 세계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는 고작 25명의 시위 군중이 있었을 뿐이지만 2000년에 그 숫자는 3만명으로 불어났다.

지난 해 반세계화 시민단체들은 최빈국 부채 탕감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여 2천4백만명의 서명을 받았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이다. 99년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시작, 지난 7월 제노아 G8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각종 국제회의에서 반세계화 시위를 막기 위해 투입된 예산은 자그마치 2억5천만달러나 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국의 정치 경제 지도자들이 반세계화 운동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라이오넬 조스팽 총리나 독일의 게르하르트 쉬뢰더 총리가 토빈세 도입에 대해 긍정적 발언을 하고, 지난해까지 코카콜라의 유럽판매 담당자였던 고위 기업인이 반세계화 운동가로 전향한 사례들이 이같은 사정을 잘 말해준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럽과 미국의 투표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반세계화를 둘러싼 정치적 행동주의는 지난 60년대 베트남 반전운동 이후 찾아볼 수 없었던 뜨거운 열기를 새롭게 뿜어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신문은 이어 반세계화 운동을 수천만명이 참가하는 ‘전지구적 정치 운동’으로 규정했다.

실제로 프랑스의 한 시민운동가는 최근 반세계화 시위에 대해 “68년 5월의 파리를 생각나게 한다”고 말했으며 60년대 미 뉴레프트운동의 지도자였던 톰 헤이든은 “60년대 이후 찾아볼 수 없었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수십년의 무기력에서 떨쳐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경제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이같은 진단은 분명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지난 20년간 세계경제에 어떤 일이 벌어졌길래 반세계화 운동이 이토록 거대한 힘을 갖게 됐을까.

우선 급속한 금융의 세계화를 꼽을 수 있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연간 1천억 달러 규모에 불과했던 민간자본의 해외 투자는 99년에는 9천억 달러 가까운 규모로까지 급격하게 늘어났다. 단기 차익만을 노리는 이들 금융자본들이 발빠르게 국경을 넘나드는 동안 동아시아와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들은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지난 93년부터 97년까지 동아시아에 몰려 들었던 약 1천억 달러의 금융자본이 그해 여름 일거에 썰물처럼 빠져 나가면서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겪었던 경제, 사회적 고통은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초국적기업 주도의 세계화에 대한 정치 경제 엘리트 내부의 반발과 이견이 노출되었고 시민들의 각성이 시작됐다. 특히 시민들은 미국과 초국적기업이 주도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 주기는커녕 빈부 격차만 더욱 심화시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전세계 124개국의 소득 분포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유층 20%의 소득 비중은 지난 65년부터 90년 사이에 69%에서 83%로 늘어났다. 반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빈층 인구는 85년 11억명에서 2000년에는 13억명으로 늘어났다.

기업 주도 세계화에 대한 민초들의 반란은 99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WTO) 각료회의에서 처음 구체화됐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노동 농민 환경 시민단체 연대의 반세계화 시위로 추가적인 무역자유화를 논의하려던 이 회의는 아무런 성과없이 무산되고 만 것이다.

반세계화 시민연대의 구성은 매우 다양하지만 몇가지 공통된 주장을 갖고 있다. 첫째, 현재의 세계화는 자본의 무제한적인 이동은 최대한 보장하면서 노동력의 국가간 이동은 철저하게 막고 있다. 다시 말해 현재의 세계화는 자본의 이익은 보장해 주지만 사회적 복지는 철저히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WTO나 IMF 등 세계화를 관리하는 국제기구들이 미국 등 강대국 중심의 폐쇄적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 유럽 등의 시민단체들은 이들 국제기구들이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기술관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으며 따라서 사회적 필요를 고려한 각국 정부의 결정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시애틀 회의 당시 샬린 바셰프스키 미 무역대표는 WTO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다소 배타적이었다”고 인정했다. 그녀는 “모든 회의가 29-30개국의 주요 국가들사이에서만 이루어졌으며 100개 이상의 다른 국가들은 회의장에조차 들어가지 못했다.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채 30개 내외의 특권적 국가들이 결정한 사항들을 일방적으로 통고받는 이들 국가들은 매우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됐다”고 털어 놓았다.

또 스티븐 바이어스 영국 무역장관은 시애틀 회의 이후 “현재의 형태로 WTO를 계속 이끌어 갈 수는 없다. 134개 회원국의 필요와 열망에 부응하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애틀 회의 이후 반세계화 시민운동의 위력은 갈수록 커져 왔다. IMF, WTO 등 국제기구에서도 이들 시민단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일부 지배 엘리트들은 이들 국제기구들을 보다 민주화되고 투명한 조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한편 시민운동 진영의 일부에서는 주류측의 이같은 움직임은 진정한 변화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시민운동을 체제내로 끌어들여 무력화시키려는 음모라고 비난하면서 현재의 세계화 흐름을 완전히 저지시킬 때까지 운동을 멈춰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세계화 운동이 현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되기 시작할 즈음, 지난 10년간 번영을 구가하던 미국경제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경제의 침체가 세계경제, 나아가 반세계화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관심이 모아지는 시점에서 9.11테러가 발생했다.

9.11테러,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은 세계경제는 물론 세계시스템의 장래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9.11사건 직후 반세계화 운동 단체들이 반전운동으로의 방향 전환을 모색하는 것도 이러한 상황 변화를 잘 말해 준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