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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부에노스아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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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의 명암

10년 전에 국제금융권으로부터 경제개혁을 잘 한다고 찬사를 받던 아르헨티나가 이제는 악몽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미국과 국제금융기구도 아르헨티나 때문에 잠을 못이루기는 마찬가지이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구제금융을 하고 있지만 그 효과가 제대로 날지 확신을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채무 잔고는 무려 2010억 달러. 중앙정부의 채무가 1330억 달러, 지방정부 지분이 210억 달러, 그리고 민간부문의 채무가 470억 달러라고 한다. 그러니 외채이자 10%를 지불한다고 치면 매년 200억 달러가 감쪽같이 사라지게 된다.

거리에는 나날이 전투 장면이 재현된다. 17%에 달하는 실업자들, 나날이 생활비가 줄어드는 연금생활자들, 임금을 삭감당한 공무원들, 벌써 수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한 지방 공무원들과 교사들, 끊임없이 문을 닫는 기업들로부터 해고되는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빵과 정의를 요구한다. 심지어 우유급식조차 위협받은 어린이들의 전국 행진까지 있기도 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정책처방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여 급진개혁을 추진했던 아르헨티나의 메넴 정부는 도대체 무얼 했길래 이런 결과가 되었을까?

메넴의 개혁정책

전임자 알폰신 대통령 정부(1983-89)가 5천%가 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무너지자, 6개월 일찍 권력을 넘겨받은 메넴 대통령은 자신을 뽑아준 페론당의 지지기반과 관계없이 일찌감치 대외 금융권과 국내 민간자본들이 요구하는 경제개혁을 과감히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예 국내 굴지의 다국적 자본인 붕헤이 보른 그룹 인사를 경제부 장관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혼란스런 경제와 인플레이션 기조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뒤에 들어선 에르만 곤살레스 장관은 국내 저축자들의 예금을 동결하여 정부채권으로 바꿔주는 이른바 ‘보넥스 계획’을 실시해야 할 정도로 인플레이션 압력은 거세었다. 이윽고 도밍고 카발로가 경제부 장관으로 기용되면서 내외 금융권의 불안을 잠재우는 기상천외의 조치를 실시하였다.

페소와 달러를 일대일로 묶고 태환을 법률로 보장하는 태환법을 통과시켰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대외개방과 민영화도 급진전하게 되었다. 1991년부터 1994년 사이에 아르헨티나는 국제금융권과 민간부문의 축복 아래 중남미에서 가장 충실한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에 매진하게 되었다.

태환법 체제

우선 대외개방이 급진전되었다. 1989년 10월 기준으로 26.5%였던 수입관세는 1990년 9.7%로 떨어졌다. 수입에 대한 양적 통제도 폐지되었고, 다양한 관세 제도도 일원화되었다. 다음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기 위해 페소를 달러와 일대일로 묶는 태환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중앙은행은 태환창구로서만 기능하고, 최종대부자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정부는 재정적자가 나더라도 통화증발로 대응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울러 자본의 자유화도 완성되어 국제수지의 자본계정에 대한 통제도 없어졌다.

1990년부터 본격화된 민영화 사업도 1994년에 이르면 거의 완결된다. 전화회사, 항공사, 석유회사, 전력회사가 민영화되었으며, 철강과 석유화학 그리고 가스업종도 민간인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석유시추, 철도, 항만, 도로, 상수도, TV, 라디오 등 분야는 정부가 민간인들에게 운영권을 넘겨주었다.

정치권과의 거래를 통해 졸속으로 진행된 민영화 사업에는 당연히 부정과 부패 스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아르헨티나 경제는 “영원한 약탈“의 경제라는 오명을 덮어썼다. 내외 자본들은 독점적 서비스 업종을 낮은 낙찰가로 넘겨받아서 독과점적 렌트를 누리는 혜택을 입게 되었다. 독립적인 규제기관이 미비한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민영화한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다.

초기의 효과

대외개방, 태환법, 민영화로 경제는 잘 굴러가는 듯 보였다. 성장률도 8% 선을 웃돌았고, 통화가치도 크게 안정화되었던 것이다. 국제금융권은 이전보다 낮은 금리로 신용을 제공했고, 민영화로 인한 수입도 짭짤하게 들어왔다. 끝없는 경제적 실패를 겪어온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제 살 만한 세상이 도래한 것 같다고 느꼈고, 메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태환법을 적용한 이후 실질임금의 평균치(1994-98)도 1990년에 비해 10%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멕시코의 페소 위기로 인한 테킬라 효과가 드러나기 전에 대중들은 이 개혁 모델에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의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대한 악몽이 아직도 이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카발로 장관의 태환법 레짐은 여러 개의 뇌관을 장착하고 있었다.

태환법 체제의 아킬레스 건

태환법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잠재우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 3년이 경과하면서 인플레이션 수준은 국제적 수준으로 수렴했다. 카발로는 태환법을 일시적인 입법 조치로 보지 않았고, 신자유주의 모델의 기본적인 틀로 수용하였다. 정부의 재정적자를 방지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이를 금과옥조시 하였던 것이다. 태환법으로 인해 큰 혜택을 입은 내외 금융자본, 수입업자들, 달러 예금자들(인구의 10%)은 소득의 달러화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나머지는 장기적으로 이 게임에서 돈을 잃어야만 했다. 또 수출업자들은 페소화의 고평가로 인해 비교역재로 눈길을 돌려야 했다. 수출보다는 수입을 유발하는 이 태환법이 장기적으로 버틸 수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무역수지 적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 9.8%였던 1986-90년의 GDP 대비 수출계수는 1997년에 14.5%로 증가했다. 하지만 수입계수는 6.3%에서 21.6%로 수출계수보다 훨씬 크게 증가했다. 무역적자는 급격한 대외개방 조치 아래 경제의 만성적인 체질로 자리 잡았다.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외국돈이 필요했다. 다행히 국제금리가 낮았던 1993년까지는 외국자본이 쉽게 흘러 들어와서 국내 경기를 부추겼다. 민영화에 뛰어든 외국기업들 때문에 메넴 정부 초기에는 외국자본이 대량으로 유입되었다.

그러나 1994년 멕시코 페소위기로 인해 신흥시장에 대한 위기감이 확산되자, 경제의 선순환은 끊어지게 되었다. 1995년 상반기에 자본 유출이 일어나고, 중앙은행 지준보유고가 급감하자, IMF 구제금융을 통한 자금조달로 메워야만 했다. 1997년 아시아 위기가 발생한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국제금리와 외자 유입과 같은 외생적인 변수에 지나친 의존을 체질화한 태환법은 아르헨티나 경제를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한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세계최고의 전화료

비효율성과 만성적인 적자로 시달리던 공공 서비스 부문의 민영화 역시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민영화 과정에서 내외 자본들은 거의 독과점적인 지위를 누리는 서비스 부문을 장악했다. 부정과 부패 스캔들은 메넴 정부 내내 잠들 날이 없었다. 결국 민영화의 혜택은 소수의 독과점업체들에게 돌아갔고, 시민들은 이들의 포로가 되어 과거보다 크게 오른 서비스 대금을 지불해야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전화국은 프랑스의 스텟과 스페인의 텔레포니카가 샀다. 두 외국회사는 지역 독점의 아르헨티나 전화 요금을 비트당 세계 최고로 만들었다. 덕분에 IBM사의 직원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장 중에는 가급적이면 국제전화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꼭 이용할 경우에는 전화카드를 이용하도록 한다.

개인 청부업자가 관리하는 도로를 지날 때마다 상당한 수준의 도로 이용료를 내야만 하고, 전화나 전력 요금을 제 때 지불하지 않으면 당장 서비스 공급이 중단된다. 이렇기에 소비자들의 원성은 높아만 간다. 정부의 졸속 민영화로 민영화 이후 서비스 공급업체를 적절히 규제할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거의 무정부 상태에 빠진 재정 부문은 초기의 민영화로 인한 특별 재원으로 균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안정적인 틀을 지닌 재정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세 구조는 여전히 부가가치세와 같은 역진세에 크게 의존했고, 이윤세의 비중은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이윤세는 대부분 법인세 형식이었고, 가진 자들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거의 거둘 수 없었다. 외채에 대한 지불 약속 그리고 경상수지 적자에 대한 보전이 이러한 균형을 깨Em리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부가가치세도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적자

1994년의 페소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약 8%의 성장률을 유지하던 시절에도 아르헨티나의 실업률은 떨어지지 않았다. 태환법 체제의 1995년에는 테킬라 효과로 실업률은 17%로 상승했고, 이후 줄곧 15-17% 선을 맴돌고 있다. 고용된 자 가운데에서도 비공식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고, 공식 부문의 비중은 날로 축소되고 있다. 이는 제조업 고용자는 줄고, 서비스 및 상업 종사자들이 늘어가는 추세와도 관련이 있다.

지난 10년간 아르헨티나 경제는 “일자리 창출 없는 성장”(jobless growth)과 "실업 증가를 동반한 정체"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체질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지난 3년간 경제가 계속 정체를 지속하자 대중의 생활은 크게 나빠졌다. 급기야 이 나라 최대의 신문 ‘라 나시온’(2001. 6. 27)은 인구의 56%가 빈곤층이며, 17%는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 정도라고 보고한다.


태환법, 무엇이 문제인가?

태환법 레짐은 고정환율제의 극단적인 형태이다. 비록 그것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해체하는 데에는 효력이 있겠지만, 결국 무역적자나 재정적자를 외부저축으로 메우게 하여 대외 금융 종속을 체질화하는 매개고리이기도 하다. 하이퍼인플레이션 시대의 아르헨티나가 화폐증발로 재정적자를 메우던 것을, 이제 외채로 메우게 만든 것에 불과하다. 최종대부자가 없는 국민경제는 이미 테킬라 효과로, 아시아 금융위기의 전염으로 두 차례나 큰 혼란을 겪었다.

이제 이 나라의 기득권층과 이들에 동조하는 경제학자들은 차라리 페소화를 버리고 달러화를 통화로 사용하자고 말한다. 그러면 평가절하에 대한 두려움은 완전히 제거될 것이고, 컨츄리 리스크도 줄어져서 실질금리도 떨어질 것이다. 당연히 장기 금융도 증가할 것이고 경제의 불확실성도 줄어들어, 외국으로 도피한 자금들도 쉬이 들어오지 않겠냐고 이들은 강변한다.

비판자들의 논리도 만만찮다. 경제활동이 외국자본에 과도하게 의존되면, 금융기관이나 실물경제에 신용공급이 불안정하게 되어, 오히려 불량채권이 증가하게 되고, 이에 따라 은행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증가한다. 태환법 시행에서 보았듯이 국제수지가 불균형을 이룰 때에 상대가격을 정정할 가능성은 떨어져서 국민경제의 파행생은 더욱 커진다. 지난 10년간의 역사는 비판자들의 논리가 옳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지 않았는가?

한 비판적인 경제학자는 이렇게 비꼰다. “과도한 섹스를 피하기 위해, 그것을 잘라버릴 수는 없지 않아요?”


필자 이성형은 남미 연구의 권위자로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서울대 국제지역원 초빙 교수, 멕시코 과달라하라대학, 클레히오 데 메히코 초빙 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세종연구소 객원 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서울대, 이화여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자유주의의 빛과 그림자' '콜레라시대의 멕시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사상' 등이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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