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여천에 화학공장을 증설해서는 안 된다.”
여수환경운동연합 등 여수지역 25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바스프 독가스 공장 유치반대 범시민위원회’(이하 범시민위)는 지난 8개월간 서울, 여수, 광주 지역에서 항의시위, 천막 농성, 토론회 등을 벌여왔다. 또 지난 9월17일부터 23일까지 일주일간 독일 바스프 본사에 항의 방문단을 파견, 조이퍼트 사장 등을 만나 반대의사를 전달했다.
전남 여수지역이 독일 다국적 기업인 바스프(BASF)사의 화학공장 증설 둘러싸고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여수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와 여수시의회는 여천공단의 환경파괴를 이유로 반대의사를, 대한전문건설협회, 여수상공인협의회 등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야기하며 찬성의사를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바스프 공장 증설 반대운동은 그동안 국가가 일방적으로 운영해왔던 국가산업단지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반대운동으로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
독일 바스프사를 방문했던 범시민위 조환익 총무국장(33)은 “바스프사는 포스겐이라는 맹독성 가스를 사용해 합성피혁제품의 기초소재인 톨루엔 디이소시아테이트(TDI) 등을 생산하는 공장을 증설하려한다”며 반대 이유를 밝혔다.
한편 한국 바스프사는 “여수공장의 안전환경관리는 2000년 바스프 독일 본사의 안전환경 감사결과 최우수 공장을 선정될 만큼 수준 높다”며 “지난 92년부터 디페닐메탄 디이소시아테이트(MDI) 생산을 위해 포스겐을 취급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안전사고는 단 한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바스프사는 3천837억을 들여 여수지역 16만평에 연간 14만톤의 TDI를 생산하는 공장을 2003년 초까지 신설하고 ,현 MDI 공장을 약 400억원을 들여 증설할 예정이다. 바스프사는 여수공장이 외국인투자촉진법상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앞으로 10년간 1천여억원의 세금감면 혜택을 보게 된다.
여천공단 환경.안전 문제 심각
범시민위에서 바스프 공장 증설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미 여천공단의 환경오염과 안전문제가 그 위험수위를 넘어섰기 때문. 범시민위 강용주 집행위원장(40)은 “지난 96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여천공단의 환경오염정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라며 “여기에 새로운 화학 공장을 증설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또 “석유화학산업은 배관장치산업으로 그 수명이 20,30년”이라며“조성된 지 30년이 넘은 여천공단 내에서 폭발, 오염물질 유출사고가 급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90년대 공단 내에서 일어난 폭발 및 오염물질유출사고는 103건으로 공단조성 초기인 70년대에 비해 15배나 증가했다. 지난 24일 여천공단의 H석유화학공장에서 배관교체 작업 중 보관통에 있던 황산이 폭발해 1명의 노동자가 숨지고 다른 1명은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시의회도 반대, “지역주민의사 무시했다.”
한편 여수시의회도 바스프 공장 증설을 반대하고 있다. 전부기 여수국가산업공단 및 해양환경 실태파악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49)은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지역 지정 계획 수립 시 주민들의 의견을 물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며 공장 증설 반대의사를 밝혔다. 전 의원은 “주민의견 수렴을 시의회에서 받았다고 하지만 공식적으로 시의회에 의안이 제출된 적이 없다”며 “전남도지사와 여수시장이 일방적으로 승인해 버렸다”고 말했다.
지난 98년 제정된 외국인투자촉진법 시행령 25조에 따르면 시.도시자는 외국인 투자지역 지정계획 수립 시 해당 시장, 군수, 구청장과 주민 및 관계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전 의원은 이와 함께 “외국인 투자지역으로 결정됨에 따라 바스프사는 지방세를 향후 5년간 100%, 그 후 3년간 50% 면제 받는다”며 “이런 혜택이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된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가산단, 지역주민 삶 피폐화
이번 바스프사 공장 증설 반대는 단순히 바스프사 개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그동안 국가가 일방적으로 운영해왔던 국가산업단지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조환익 총무국장은 “여천산단은 국가산업단지라는 이유만으로 지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지역을 피폐화시켰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산단 관련법을 개정하기 위한 ‘국가산단개혁을 위한 전국연대(가칭)’를 결성하겠다”고 말했다.
조 국장은 “여천산단 입주업체의 지난 99년 총 매출액은 약 19조원이었는데 여수시에 지방세는 278여억원이 들어왔다”며 “여천산단 입주업체들은 지역경제에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조국장은 또한 산단에 공장 입주로 얻어지는 고용효과도 크지 않다고 한다. 현재 120여개 공장이 입주해 있는 여천공단의 직접 고용인력은 1만2천명, 간접 고용인력은 8천명이다.
한편 주승용 여수시장(49)은 지난 25일 성명서를 발표해 “바스프 공장 증설은 김대중 대통령이 외자 유치를 통해 결정된 국가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시의회와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범대위는 “전문가, 시민단체 대표, 관련기관, 바스프사 등이 참여해 환경영향평가와 주민의견조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바스프사는 “공장 건설 문제는 해당 관청의 결정 사항”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범대위는 “바스프사에서 공장건설을 강행할 경우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를 저지하겠다”고 밝혀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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