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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반대를 극복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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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세계화 반대를 극복하는 길

투명성과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다음 글은 미국의 외교전문 잡지 포린 어페어즈 7/8월호에 실린 조셉 나이 교수(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원장)의 ‘민주주의가 결여된 세계화: 어떻게 국제기구들을 책임성 있게 만들 것인가’를 완역한 것이다. 나이 교수는 이 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등 최근 반(反)세계화 운동의 표적이 되고 있는 국제기구들의 투명성과 민주적 절차 등을 강화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반세계화 운동에 나선 국제 시민단체들이 이 국제기구들의 폐쇄성과 비민주성을 집중 공격하고 있는 데 대해, 기본적으로 세계화를 옹호하는 주류측이 최초로 진지하게 대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나이 교수는 클린턴 행정부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 온 이론가라는 점에서, 이 글이 지난 3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삼각위원회(Trilateral Commission)에서의 연설을 바탕으로 작성됐다는 점에서 이 글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삼각위원회는 미국경제의 압도적 우위가 사라진 지난 1970년대, 효율적인 세계경영을 위해 미국, 유럽 및 일본의 정계 관계 경제계 학계 실력자들을 규합해 만든 단체로 카터, 클린턴 등 전 대통령과 브레진스키 등이 회원으로 있다.

민주주의가 결여된 세계화: 어떻게 국제기구들을 책임성 있게 만들 것인가

시애틀에서 워싱턴, 프라하, 그리고 퀘벡에 이르기까지. 국제경제기구들이 세계화를 비난하는 시위 군중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회의를 여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대부분 부자 나라에서 온 이들 시위 군중의 성분은 다양하며 이들의 연합체가 언제나 내부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중에는 실직을 걱정하는 노조원이 있는가 하면 후진국을 도우려는 학생들이 있고 생태계 악화를 우려하는 환경주의자, 일체의 국제적 규제에 반대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한 나라를 대표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부자 나라의 농업보호주의를 옹호한다. 어떤 사람은 기업자본주의를 거부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국제시장의 혜택을 받아들이면서 다만 세계화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한다.

‘민주주의의 결여’, 이들의 모든 우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로리 왈라치(Lori Wallach)같은 시위의 지도자들은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가 성공한 이유 중 절반은 “세계경제에서 민주주의의 결여는 필요하지도 않으며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세계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민주주의의 결여에 대처하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을 최우선적인 과제의 하나가 삼아야 한다.

조그만 세계

전지구적 규모에서의 상호의존망(網)으로 규정되는 세계화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또한 경제부문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시장이 펼쳐나가 사람들을 한데 묶는 것은 사실이지만 환경, 군사, 사회, 정치에서의 상호의존도 점차 증대되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현재의 정치적 반대가 무책임한 보호주의적 정책으로 귀결된다면 세계의 경제적 통합을 늦추거나 심지어 역전시킬 수도 있다. 반면 지구온난화나 에이즈는 계속 세계적으로 번져 나갈 것이다. 현재의 반세계화 시위가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은 놔둔 채 긍정적 측면만을 약화시킨다면 이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시장의 결과는 불평등하다. 그리고 그 불평등은 엄청난 정치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은 언제나 부익부 빈익빈만을 만들어낼 뿐이라는 상투적 주장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세계화는 전세계적으로 수억명의 인구를 가난으로부터 구해냈다. 불평등이 심화되면서도 가난은 구제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일례로 세계시장은 남한과 선진국과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데에 일정하게 기여했다. 반면 가난한 나라가 스스로를 세계시장으로부터 고립시켜 부자가 된 사례는 없다. 북한이나 미얀마가 그렇지 않은가. 한마디로 세계화는 가난을 이기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은 된다.

세계화의 복잡함 때문에 지구적 차원의 제도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어 왔다. 위계적 명령계통을 갖춘 세계정부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겠지만 여러 형태의 세계경영(global governance), 공통의 관심사를 관리하는 여러 방법들은 이미 존재하며 이를 더욱 확대할 수도 있다. 현재 지구적 차원에서 교역, 통신, 항공, 보건, 환경, 기후, 그리고 기타 사항들을 규제하는 국제기구들이 수 백개나 있다.

반세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들 국제기구들이 비민주적이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존하는 국제기구들은 대단히 약하며 위협적 존재라고 할 수 없다. 가장 큰 원성을 듣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조차 예산이나 소속 인원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스스로 역할을 자임한 비정부기구(NGO)들과는 달리 국제기구들은 각국 정부에 대해 매우 책임있는 태도를 취하며 따라서, 비록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민주적 정통성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 나아가 국제경제기구들은 회원국들이 협력하는 한에서만 작동할 수 있으며 효율성을 통해 일정한 권위를 확보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민주주의가 정통성의 초석이 되는 오늘날의 초국가적 정치의 세계에서, 이러한 주장만으로 국제기구들을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다. 아마도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국제기구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국제기구 자체는 약하지만 그들이 제정한 규칙과 그들이 갖고 있는 자원들은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욱이 시위대들의 주장에는 분명 타당한 측면들이 있다. 국제기구의 모든 회원국들이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대표들, 그리고 투명성의 결여가 때때로 책임성(accountability)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국제기구가 국가들의 대행인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국가의 일정 부분만을 대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WTO 회의에는 통상장관이, 국제통화기금(IMF) 회의에는 재무장관이, 그리고 국제결제은행(BIS) 모임에는 중앙은행 총재가 참석하는 식으로 말이다. 같은 정부 내의 관리라 할지라도 해당 분야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이들 국제기구들이 폐쇄적이며 비밀을 고집하는 집단으로 비칠 수 있다. 따라서 세계경영의 정통성을 증대하는 것은 중대한 목표가 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다음 3가지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보다 명확한 규정, 책임성에 대한 보다 풍부한 이해, 그리고 이를 실험할 의지를 갖는 것이다.

우리, 민중들(We, The People)

민주주의가 성립하려면 개인 및 소수파에 대한 권리 보호와 함께 민의에 의해 교체될 수 있는 관리들로 구성된 정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세계적 차원에서의 정치적 정체성(political identity)이 매우 약한 오늘의 현실에서 누가 ‘우리, 민중들’이 될 것인가. 1국1표제는 민주적이지 않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몰디브 사람은 중국 사람보다 몇천배의 투표권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세계를 단일한 투표구로 가정해 1인1표제를 시행한다면 인구 20억이 넘는 중국과 인도가 세계의 관심사를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다.(역설적이게도 이같은 세계는 국제적인 환경, 노동기준 제정을 주장하는 반세계화 세력들에게는 악몽이 될 것이다. 중국과 인도는 환경과 노동 기준 따위에는 거의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적 사회에서 소수파들은 자신이 보다 큰 공동체에 전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만 있다면 다수의 결정에 승복한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촌사회에서 이처럼 강력한 공동체에의 소속감이 있다는 증거는 거의 없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이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 이러한 소속감이 없는 상황에서 국내의 투표 절차를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것은 실용적으로나 규범적으로나 별 의미가 없다. 비교적 동질적 국가들로 이루어진 유럽연합의 경우, 유럽의회를 강화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결여’를 일정 정도 극복할 수 있겠지만 세계적 차원에서 그같은 기구가 의미를 가질지는 의심스럽다. 게다가 오늘날 민주주의는 잘 질서 잡혀진 민족국가 내에만 존재할 뿐이며 이같은 상황의 변화는 매우 느리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들이 세계적 차원의 민주주의의 결핍에 대한 우려에 대응해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이 있다. 첫째, 국제기구 내에 국내정치적 과정이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WTO의 국가간 분쟁 조정 과정에서 특정 국가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해당 국가가 자신의 행위로 교역 상대국에 입힌 손해를 일정하게 배상하는 조건으로 WTO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또 어떤 나라가 WTO 교역협정에서 탈퇴한다 하더라도 분쟁해결 절차를 통해 과거 1930년대 세계경제에 치명적 악영향을 미쳤던 것과 같은 무차별 보복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집안의 전기시스템에 퓨즈를 설치하는 것과 같다. 집 전체가 불에 타버리는 것보다는 퓨즈 하나가 없어지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WTO의 문제는 회원국들이 국내 정치적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회원국들이 정치적 타협이라는 보다 유연한 통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너무나 많은 분쟁들을 곧바로 소송으로 몰아가려 하는 데 있다.

보다 명확한 연관들

책임성의 제고는 국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WTO가 환경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부에 대해 환경부 장관이나 관련 관리들을 WTO 대표단에 포함시키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의회는 WTO 회의 전후에 청문회를 열 수도 있고 의원 자신이 국제기구의 대표로 나설 수도 있다.

또한 각국 정부는 민주적 책임이란 간접적일 수도 있음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매우 잘 기능하는 민주사회에서도 책임성은 종종 투표 이외의 방법에 의해 보장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법원이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매우 긴 위임의 연쇄를 통해 간접적으로 선거에 반응하며 판사나 중앙은행 관리들은 (투표가 아니라) 전문적 규범이나 기준에 따라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진다. 간접적 책임이 민주주의의 원칙과 어긋난다고 볼 이유도 없으며 IMF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들에는 국내 기구보다 높은 책임성의 기준이 적용되어야 할 근거도 없다.

투명성의 강화 또한 중요하다. 민주사회에서 사람들은 투표 외에 편지나 여론조사, 또는 시위 등 여러 방법들을 통해 현안에 관해 토론한다. 이익단체와 자유언론은 국내 정치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제 차원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NGO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역할을 자임한 것이긴 하지만 이들 역시 투명성 제고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NGO는 의견을 말할 수는 있으나(deserve a voice) 의사결정에 참여시켜서는 안 된다(not a vote). NGO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국제기구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국제기구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재판 과정이나 외환시장 개입에서와 같은 경우에는 미리 그 정보를 제공할 수 없겠지만 사후에라도 논평과 비판을 위해 그같은 결정이 나오게 된 과정의 기록과 그 근거들을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투명성의 기준은 NGO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민간부문도 책임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 민간단체들, 또는 인도 보팔 참사 후에 국제화학기업들이 마련한 것과 같은 규범들은 행동기준의 악화를 막을 수 있다. 완구, 봉제산업 등에서 특정 기업을 집어내 그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 온 관행들은 초국적기업들의 책임성 향상에 기여했다. 또한 아시아 외환위기는 부패한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그 어떤 공식 협정보다도 크게 기여했다. 개방된 시장은 지역적 독점의 비민주적 힘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민의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부 관료들의 완고한 권력도 약화시킬 수 있다. 나아가 투명성을 높이려는 투자자들의 노력은 정치제도에까지 파급될 수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자들

국제기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반세계화 군중들의 조잡한 주장들을 단순히 거부할 것이 아니라 국제기구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들을 해야 한다. 핵심은 투명성이다. 국제기구들은 비록 사후에라도 자신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다 폭넓게 공개해야 한다. 이미 세계은행이 하고 있듯이 NGO들을 옵서버로 받아들이고 WTO 분쟁조정의 과정을 브리핑받을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잘 조직된 이익단체가 기구를 장악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성이 있긴 하지만 현재 캘리포니아주의 한 기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이사회 멤버를 (NGO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할 수도 있다. 또 세계 댐위원회나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주도한 지구적 계약(Global Compact)처럼 정부기구, 정부간 기구, 비정부 기구 대표들로 구성되는 잡종형 조직(hybrid network organizations)들도 시도해 볼 만하다. 국회의원들의 모임은 다른 단체들과 연계해 특정 사안에 대해 청문회를 열거나 정보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

세계적 기구들의 필요성과 민주적 책임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단일한 방법은 없다. 고도로 전문적인 기구들이라면 효율성 하나 만으로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기구가 다루는 가치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민주적 정통성의 문제는 더욱 중요해진다. 민주주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화의 관리에 필요한 가치기준과 절차에 대해 더욱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문제를 도외시하거나 거리의 선동가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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