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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을 지키는 대한민국 경찰 최 씨보다 무서운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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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을 지키는 대한민국 경찰 최 씨보다 무서운 건…

[대한문과 집회·시위의 자유 ①] 대한문은 계엄 상태

"안 됩니다. 천막은 안 됩니다. 비닐도 안 됩니다. 피켓도 안 됩니다. 침낭은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미신고 불법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자진 해산을 명합니다. 불법이라고 생각되면 고소하세요. 집회 신고를 하시고 집회를 하세요. 집회 신고 물품은 집시법 위반이 아니고 도로교통법 위반입니다. 검거하세요. 마이크 잡고 선동하는 고동민부터 검거하세요."

대한문에서 먹고 잔 지 1년 7개월 동안 남대문서 경비과장 최성영 씨(이하 최 씨)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집회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경찰들을 동원해서 집회를 방해하고 연행하고, 집회 신고를 하면 경찰관 직무 규정이나 도로교통법 등을 들먹이며 집회를 방해하고 연행하는 최 씨는 남대문 일대, 특히 대한문에서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듯 합니다. 저는 올해에만 최 씨의 검거 명령에 5번이나 불법 체포를 당했습니다.

▲ 지난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경찰에 연행되는 고동민 씨. ⓒ점좀빼

노래 부르려다가 연행된 김정우 전 지부장

그를 처음 만난 건 2012년 3월,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정리 해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함께 알려내자고 서울 광장 한 귀퉁이에서 '희망 광장' 투쟁을 할 때였습니다. 눈도 내리고 삭풍이 부는 3월, 최 씨는 침낭도 비닐도 텐트도 허용할 수 없다며 지나가는 노동자들의 가방을 일일이 열어 불심 검문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지나가지도 못하게 했었습니다. 모여 있으면 불법 집회라고 고착을 지시했고, 고착에 항의하면 공무 집행 방해라고 연행했습니다. 지금 구속되어 있는 쌍용차 김정우 전 지부장은 집회를 마친 뒤 그의 애창곡 '유정천리'를 부르다가 팔이 꺾이고 사지가 들려 연행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유정천리'의 첫 대목 '가련다~ 떠나려언다~'부르다가 경찰이 뛰어 들어와 폭력적으로 연행했습니다. 저는 그때 '유정천리'라는 노래가 많은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고, 공공의 안녕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는 것을 최 씨의 이야기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연행 이유는 최 씨가 해산 명령을 했는데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정우 전 지부장이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였습니다.

국회의원 오면 사라지는 경찰?

작년 4월, 2009년 '77일 투쟁'을 끝까지 함께했던 쌍용차 해고자 중 한 분이 자신의 임대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5년 동안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결국 짧은 생을 스스로 마쳤습니다. 한 줄 자막 뉴스에서 보도된 22번째 죽음이었습니다. 해고자들은 더 이상 죽음을 막아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대한문에 올라와서 분향소를 차렸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분향소를 차리기까지 10명이 연행되고 경찰들의 폭력에 10명이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최 씨는 매일같이 사람들을 고착하고 피켓 하나 들지 못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고 다수가 같은 목적으로 모여 있기 때문에 불법 집회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집회 신고를 하면 되지 않느냐며 이죽거렸습니다.

하지만 집회 신고를 하면 남대문경찰서는 불허 통보를 했습니다. 집회 신고를 안 했다고 피켓 하나 들지 못하게 하고 그래서 집회 신고를 하면 불허 통보를 하는 경찰의 전형적인 수법이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쌍용차 해고자들의 집회가 공공의 안녕을 해친다고 볼 수 없고, 남대문 경찰서가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시위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판결을 1심과 2심에서 받고서야 불법적인 경찰의 폭력은 멈췄습니다. 그 뒤로도 최 씨는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에서 벌어지는 집회에서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방해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민변 변호사들이 와서 불법적인 공무 집행에 항의하거나, 국회의원들이 대한문 분향소를 방문할 때면 늘 어디론가 허둥지둥 사라져 버렸습니다.

화단 지키는 게 공적 업무?

대한문에 올라온 지 딱 1년째인, 올해 4월 4일 서울 중구청이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를 계고장 하나 없이 철거했습니다. 덩치가 산만한 중구청 옷을 입은 공무원들이 자고 있던 저와 동료들을 천막에서 끌어냈습니다. 그리고는 몇 명의 공무원들이 해고자들을 대한문 바닥에 눕히고 얼굴과 팔다리를 붙들고는 꼼짝 못하도록 강제 억류했습니다. 바닥에 눕혀진 채로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에게 구청 공무원들이 무슨 권한으로 우리를 억류할 수 있냐고, 불법적인 공무 집행이라고, 당장 우리를 풀어달라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최 씨는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자꾸 항의하면 공무 집해 방해로 검거한다고 협박했습니다.

쌍용차 정리 해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24명의 해고자와 가족들의 분향소는 그렇게 단 몇십 분 만에 철거 되었습니다. 죽음이 철거된 그 자리에는 몇 톤의 흙들이 부어지고 그 흙무덤 위에는 꽃과 나무가 심어졌습니다. 분향소 철거와 화단 조성에 항의하는 쌍용차 해고자, 투쟁 사업장 노동자, 성직자, 시민들이 공무 집행 방해라고 연행되었습니다. 그날 하루에만 51명이 연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최 씨는 화단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리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대한문을 막아내지 못하면 자신은 고향으로 가야한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절대 질 수 없는 게임이라고.

대한민국 경찰들이 24시간 대한문 앞에 있는 흙더미를 지키는 게 어떻게 공적 업무가 될 수 있는지 어이가 없었습니다. 쌍용차 해고자들뿐만 아니라 정부와 자본에 의해 내쫓긴 사람들을 응원하고 위로하던 대한문이라는 공간이 왜 화단을 지키려는 경찰들의 근무지가 되어야 하는지 억울했습니다. 헌법에 명시된 집회 시위 자유를 보호해야 할 경찰들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공권력 남용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경찰들을 밀쳐가며 흙더미 위에 심어진 꽃과 나무를 밟아 뭉개기도 하고, 나 홀로 1인 시위도 했습니다. SNS에 알려 화단에서 1인 시위를 하자고 제안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최 씨는 형법에 의거한 공용물 훼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근거로 1인 시위를 막거나 시민들을 끌어내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남대문 경찰서는 1년 가까이 집회 신고를 하고 집회를 진행했던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집회를 금지한다고 통보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최루액을 쏘는 경찰에 맞서 물총을 쐈고 물총에 의해서 폭력 집회로 변질되었으며 해고자들의 항의에 많은 경찰들이 다쳤다는 이유였습니다.

▲ 지난 4월 4일 오전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가 경찰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중구청은 분향소가 있던 자리에 흙을 부어 화단을 만들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집회 금지가 통보되고 대한문은 계엄 상태가 되었습니다. 24시간 수백 명의 경찰들이 비닐 한 장, 침낭 하나, 피켓 한 장을 막으려고 늘어서 있었습니다. 분향소를 차리기 위해 놔둔 영정 사진을 훼손하고 분향하기 위한 향로를 도둑질 해갔습니다. 향로를 빼앗겨 종이컵에 흙을 담아 향불을 피우자 종이컵도 빼앗아 갔습니다.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참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최 씨는 1인 시위를 막았습니다. 아니 1인 시위하고 있던 피켓을 빼앗거나 부숴버렸습니다. 1인 시위를 막는 근거가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하지 않고 피켓만 빼앗는 일이 경찰 본연의 업무인 듯 했습니다.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쌍용차 해고자들의 바로 뒤에 붙어서 경찰이 근무하도록 최 씨는 지시했습니다. 뒤에서 경찰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인권 침해 아니냐고 항의하니 다른 곳에 가서 1인 시위하라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지나가던 여성 한 분이 경찰들의 행동에 화가 나서 대신 1인 시위를 해주셨습니다. 경찰은 그 여성 시민분의 뒤에도 바짝 붙어 있었습니다. 성추행이라고, 신고하겠다고 항의하자 한발 물러선 것이 경찰들이 인식하는 인권의 수준이었습니다.

최 씨보다 두려운 건…

대한문에서는 최 씨의 허락이 없으면 집회신고 한 물품도 마음대로 설치할 수 없습니다. 대한문 앞을 오고 가는 것도 최 씨의 허락이 없으면 다닐 수 없습니다. 집회 신고 물품인 파라솔도 펼 수 없고, 서명 받는 책상도 설치할 수 없습니다. 천주교 미사마저도 최 씨는 허용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정말 두려운 것은 공권력을 사적 폭력으로 둔갑시키는 최 씨가 아닙니다. 대한문 화단을 지키면서 최 씨의 지시에 일사분란하게 영정을 부수고, 종이컵 하나조차 빼앗는 수많은 경찰들의 눈빛이 변해가는 걸 느낄 때 가장 두려워집니다. 이런 일들을 경찰들이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의 눈빛에서, 시민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사적 폭력을 마음대로 저지르며 거칠게 없다는 눈빛으로 변할 때 저는 두렵습니다. 제주 4.3에서, 광주 5.18에서, 용산 참사에서 그런 의심 없는 눈빛들이 얼마나 큰 비극을 만들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문은 그런 공권력을 가장한 사적 폭력들이 횡행하는 곳입니다. 비단 대한문뿐만 아니라 밀양에서도, 강정에서도 수많은 시민들이 공권력의 폭력을 일방적으로 감내하고 있습니다. 그 폭력에 항의하면 연행되고, 심지어 구속되는 건 이제 싸우는 이들의 일상입니다. 경찰들이 부당한 지시에 무조건적인 폭력을 수행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구도 처벌 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최 씨를 비롯한 수많은 경찰들이 불법적인 공권력남용으로 검찰에 고소고발 당했지만 기소조차 되지 않는 현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쫓겨나고 배제된 사람들을 더욱 악랄하게 탄압해야 능력이 있고, 진급할 수 있다는 경찰의 조직 문화에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폭력들을 우리 스스로 모른 척 한다면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을 우리는 또 다시 겪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공권력의 폭력을 멈추는 것이 다시 서야 할 민주주의로 가는 첫 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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