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다. '국내 최장기 노사 갈등 사업장'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재능교육 사측은 왜 5년 8개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노사 합의를 했을까. 회사는 이번 노사합의의 의미와 특수고용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재능교육의 노사 합의 과정은 지금도 싸우고 있는 숱한 '장기 투쟁 사업장'에 어떤 시사점을 던져줄까? 기륭전자처럼 혹시 합의해 놓고 다시 갈등 상황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사옥에서 양병무 재능교육 사장을 만난 이유다. 이날 인터뷰는 전홍기혜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법과 원칙만 고수해선 해결 안 돼…뛰어넘어야"
▲ 양병무 재능교육 사장 ⓒ재능교육 |
회사가 최종 합의하기까지 5년 8개월이 걸린 이유에 대해서 양 사장은 "법과 원칙"에 대해 말했다. 2005년 대법원은 학습지 교사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회사가 응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으며, 회사는 법과 원칙대로 대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이 기존 대법원 판결을 뒤엎고 '학습지 교사도 노조법상 근로자'라고 판결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긴 했지만,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처음에는 '법과 원칙'대로 대응했다던 양 사장은 "(노사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회사도 부담이 있었고, 사회적으로 관심도 많은데 원칙만 고수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지난해 3월부터 법과 원칙을 뛰어넘는 조치가 없을까 생각했고, 지난해 8월 이후부터는 파트너십을 가지고 대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재능교육 사측은 해고자가 복귀하면 그 이후에 단체협약을 새로 체결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노조는 "사측이 일방적으로 해지한 단체협약을 먼저 원상 복귀하고, 해고자를 복직시켜야 한다"고 맞섰다. 노사가 합의한 절충안은 2008년 당시 단체협약을 회복해 특수고용직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한 사업장이라는 상징성을 유지하되, 올해 안에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한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올해 안에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하면 합의된 조항으로 단체협약을 우선 체결하고, 미합의 조항은 이후 교섭을 통해 보충 협약을 체결키로 했다.
이번 합의를 두고 양병무 사장은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고 서로 양보한 결과"라며 "역지사지 입장으로 노사가 공감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측이 합의하려고 하니 처음엔 경총이 걱정했다"며 "회사 내에서도 (합의안이) 굴욕적이라는 반응이 대세였지만, 실장을 불러서 설명하고 그 다음에 회장님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특수고용직 사측 '대리전'…경총 반응은?
경총의 반응에 대해 양 사장은 "한진중공업 사례에서 보듯이 지금까지 노사 문제를 해결할 때는 회사가 밀려서 막판에 할 수 없이 합의했는데, 경총 입장에서는 재능교육같이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는 회사가 선제적으로 (노조에 제안)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양 사장은 재능교육 사측으로서 특수고용직 투쟁의 '대리전'을 펼친 데 대해서는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우리는 학습지 회사 가운데 4위이고 1, 2, 3위 회사가 있는데, 내가 싸우다보니 어느덧 기업의 최전방에 나와서 싸우고 있었다"며 "언론은 우리에게 특수고용직의 모범이 되고 대승적인 결단을 내리라고 쉽게 말하는데, 사장은 얼마나 힘들겠나"라고 말했다.
양 사장은 "다른 기업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원칙을 끌고 간 측면도 있다"며 "특수고용직 관련 입법은 국회가 할 일이고, 우리가 할 일(노사 합의)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총에도 '사기업인 우리를 모델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국회로 간다는 건 잘못됐다'고 얘기했다"며 "특수고용직 관련 입법은 입법부에 가서 하고, 우린 우리 개별 문제로 해결하게 해달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재능교육 |
"연말까지 단협 체결 노력…노조원과도 소통할 것"
회사가 정말 약속을 지키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양 사장은 "우리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때 한진중공업과 재능교육이 세트로 묶여 있었다"며 "(국회의원들이)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가둬서 (조 회장이) 마지못해 수용하는 것을 옆에서 다 봤다"고 운을 뗐다. 그는 "한진중공업이나 기륭전자 문제는 정치권이 개입했지만, 나는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며 "회사가 (일부 국회의원, 민주노총 관계자 등 회사에 비우호적인 사람들을) 다 만나고 다녔고, 노사가 자율 합의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기륭전자나 한진중공업 등) 다른 데는 복직에 1년 이상 유예 기간을 뒀지만, 우리는 즉시 복귀하도록 했다"며 "10월부터 단체협상을 성실하게 시작해서 연말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새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노조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회사가 기존 단체협약을 파기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는 "틀어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노사 합의가) 공개된 사안이라 책임감을 느낀다. 앞으로 교섭하는 것도 지켜봐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해고자) 11명이 복귀하면서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하는데, 회사가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고충을 해결하는 창구가 있으니 회사로 연락해서 해결하고 그래도 안 되면 액션이 필요하겠지만, 예전에도 지혜롭게 해 와서 걱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시청 사옥에 유명자 전 재능교육지부장 등 일부 조합원이 남아 농성을 이어가는 데 대해서 양병무 사장은 "시청 문제는 회사 입장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합의안에) 따르지 않는 조합원이 있는 것은 노조 집행부가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시청에서 농성을 이어가더라도) 회사는 회사대로 교섭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노조와 회사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해 양 사장은 "협력하고 상생하는 노사 관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내가 2010년 5월에 (사장으로) 왔는데, 소통과 행복 경영을 강조했다"며 "노조와 소통하는 데 3, 4년이 걸렸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행복해야 한다면 노조도 행복해야 한다. 노조가 있는 기업이라는 실체를 인정하는 상태에서 노조원과 소통해서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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