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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에 8점차면 경기 포기합니까?

[최동호의 스포츠당] 두산-넥센 벤치클리어링 사태에 세워야 할 관점

불문율 논란이 그라운드를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5월 21일 두산-넥센 전에서 발생한 벤치 클리어링이 논란의 불씨였다. 넥센이 12대 4로 앞선 5회 강정호(넥센)가 도루를 시도했고 곧바로 윤명준(두산)이 보복성 사구를 던지자 양팀 선수들이 몰려나와 몸싸움을 벌였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언론은 프로야구 불문율을 언급하며 벤치 클리어링의 책임소재를 규명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두산이 과했다는 반응이 대세였다. 그러나 뜨뜻미지근했다. 8점차였지만 5회였고 2명의 타자에게 연속으로 사구를 던졌기 때문에 두산이 과민반응했다는 뉘앙스 정도였다. 어느 언론이나 어느 야구인도 두산의 사구가 불문율이 아니라 감정적인 분풀이였다는 것을 따끔하게 지적하지 못했다.

5회에 8점차로 경기 포기한 두산, 5월 8일 SK전에서 3회 11대1로 앞서다 역전패

5월 8일 두산-SK전. 두산은 1회 9점을 뽑아내며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짓는 듯 했다. 3회 2점을 추가한 두산은 5회 11대2, 9점차로 앞섰다. 그러나 결과는 두산의 12대13 역전패였다. 두산이 11대2로 앞서던 5회, 두산 선수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미 승부는 결정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두산 선수들이 SK전에서 10점차까지 앞설 당시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 의문이다.

문제가 된 21일 두산-넥센전. 강정호가 도루를 시도했던 5회 두산은 경기를 포기한 듯한 인상이었다. 1사 1·3루와 이어진 1사 1·2루에서 두산 내야진은 한 눈에 보기에도 주자에 신경을 쓰지 않는 느슨한 자세였다. 8일 SK전에서 10점차까지 앞서다 역전패한 두산이 반대로 21일 넥센전에선 8점차로 지고 있는 경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투지를 왜 못 보여줬는지 궁금할 뿐이다.

불문율을 메이저리그에선 신사협정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불문율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점수 차가 많이 났을 때 도루를 하지 않는다', '이긴 경기에서 스퀴즈 번트로 점수를 짜내지 않는다',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너무 천천히 돌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도루할 때 스파이크를 너무 높이 들지 않는다'처럼 상대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불문율도 있지만 대부분의 불문율은 상대, 정확하게는 패자에 대한 존중이다. 동업자로서 패한 선수들의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준다는 의미이다.

8점차로 뒤졌다고 5회에 경기를 포기했다면, 그래서 사구를 던져 패자의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려했다면 두산은 스스로를 되돌아 봐야하지 않을까? 과거의 두산이 아니다. 뚝심의 두산은 더더욱 아니다. 5회는 경기를 포기하기엔 너무 이른 시점이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최선을 다 하지 않았던 두산이 넥센의 도루를 기만으로 여겨 사구를 던졌다면 불문율이기보단 분풀이 사구라 할 수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3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5회초 두산 투수 윤명준이 2연속 몸에 맞은 공을 던지며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고 있다. ⓒ뉴시스

불문율 중의 불문율은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

앞서 소개한 사례 외에도 다양한 불문율이 존재한다. '삼진을 잡은 뒤 지나치게 기뻐하지 않는다', '홈런을 맞았다고 다음 타자에게 사구를 던지지 않는다', '노히트 노런 같은 대기록을 막기 위해 번트를 대지 않는다' 등이다. 불문율은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지침이다. 불문율이 제시한 구체적 행동의 취지가 한결같이 정정당당한 승부와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정당당한 승부와 상대에 대한 존중은 지극히 당연한 한 가지 조건을 전제한다. 그것은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기본 자세다.

패자를 존중하는 이유는 비록 패했지만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홈런을 맞고 삼진을 당하고 큰 점수차로 패한 선수들 앞에서 지나치게 자극적인 행동을 자제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일찌감치 경기를 포기하고 느슨한 플레이로 프로답지 못한 경기가 이어진다면? 최선을 다하지 않는 상대에겐 불문율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야구는 굉장히 섬세한 스포츠다. 사소한 심리적 요소 하나가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경기에 나선 선수들 스스로가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어떤 사고가 발생하는 지 더 잘 알고 있다.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노히트노런 주인공은 최동원도 선동렬도 김시진도 아닌 방수원(해태)이었다. 82년 영남대를 중퇴하고 해태에 입단한 방수원은 89년까지 179경기에서 18승 29패 18세이브를 기록했다. 패전 처리 투수라고도 불리었다. 이미 승부가 기운 경기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패전 처리 투수의 심정은 어떨까? 그러나 방수원은 84년 5월 5일 광주 삼미전에서 최초의 노히트노런 기록을 세웠다. 84년 방수원의 기록은 1승 8패. 노히트노런은 그 해 방수원의 유일한 1승이었다.

21일 넥센전에서 두산이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그리고 8회나 9회 8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넥센에 도루를 허용한 뒤 보복성 사구를 던졌다면 불문율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넥센의 기만이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는 지 여부는 눈앞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불문율 논란을 지켜보는 팬들은 냉정했다. 불문율 이전에 기본이 있다. 그것은 '끝까지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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