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야 할 가정의 달을 고통스럽게 보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철탑과 양재동 노숙 농성장에서,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에서,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종탑과 시청 농성장에서 보내는 5월은 참으로 잔인합니다. 천막 농성 1년을 넘긴 코오롱을 비롯해 콜트콜텍, 골든브릿지 등 거리의 노동자들은 아이들과 가까운 놀이공원에 다녀오기는커녕 부모님 가슴에 꽃 한 송이 달아주지 못했습니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지난 4월 22일부터 종이박스를 깔고 노숙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 한 달을 맞았습니다. 4월 14일 공장에서 쫓겨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목을 매 자살하고, 4월 16일 기아차 사내 하청 노동자가 분신을 하면서 상경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또 어디서 절망에 빠진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시 목숨줄을 놓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법원에서 정규직이라고 인정받은 현대차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망은 실오라기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불법 파견 10년, 사내 하청 노동자 투쟁 10년, 이제는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배낭 하나 메고 울산과 전주, 아산에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 눈물 흘리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프레시안(김윤나영) |
가정의 달, 거리의 노동자들
대한민국 최대의 재벌 현대차그룹 본사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한 스무 살 남짓 '등빨 좋은' 청년들이 본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서초경찰서가 정몽구 회장과 현대자동차를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1년 내내 집회 신고를 하고 있는 현대차는 연구와 판매에 몰두해야 할 직원들을 내려보내 무력 시위를 했습니다.
잔인한 5월이 시작되었습니다. 5월 6일 서초경찰서는 본사 앞 농성장에 경찰 병력을 투입해 8명을 연행하고, 서초구청은 농성 물품과 차량을 쓸어갔습니다. 5월 10일에도 두 명의 노동자가 유치장으로 끌려갔고, 5월 15일에는 최루액을 맞으며 17명이 연행되었습니다. 경찰은 노숙 농성 한 달 동안 27명을 연행했습니다.
울산의 한 노동자는 머리가 깨져 30바늘을 꿰매야 했고, 전주의 한 노동자는 갈비뼈가 부러졌습니다. 한 달 동안 50명이 다쳤고, 40명이 출석 요구서를 받았습니다. 경찰은 집시법과 일반교통방해, 공무집행방해로, 현대차는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으로 노동자들을 고소했습니다.
노숙 농성 한 달, 27명 연행 50명 부상
박근혜 대통령은 총선과 대선 기간 내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약속했고, 취임 첫날 "임기 내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정부는 지난 10년간 불법을 저질러왔고, 지금 이 시간에도 불법을 저지르며 파견법 제43조에 의해 징역 3년형을 처해야 하는 현대차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회 청문회에서 "불법 파견이 있는 곳이면 장소를 막론하고 어디든지 달려가 법에 있는 대로 직접 고용을 명령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불법 파견에 맞서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직접 고용을 명령하는 게 아니라 최루액 발사와 폭력 연행을 명령했습니다.
한국소비자보호원 노조 위원장에 따르면, 5월 15일 서울경찰청은 경찰 간부 150명을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건너편 한국소비자보호원 대회의실에 모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방어 전략을 수립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이날 하루에만 100개가 넘는 살포기를 동원해 발암 물질인 최루액을 쏟아 부으며, 17명의 노동자를 연행했습니다.
비정규직 보호하겠다던 정부는 재벌만 보호
가정의 달,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서럽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쏟아지는 빗줄기입니다. 노숙 농성을 시작한 다음날부터 비가 왔고 한 달 동안 무려 12일 동안 비가 내렸습니다. 장마철도 아닌 4-5월에 한없이 쏟아지는 빗줄기가 천막도 없는 농성장을 휩쓸었습니다. 비닐과 비옷을 뚫고 들어오는 비는 눈물과 뒤엉켜 서글퍼졌고, 온밤을 꼬박 새우게 했습니다.
빗줄기보다 더 서러운 건 언론이었습니다. 4월 26일을 시작으로 5월 15일까지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세 차례 파업을 하고 서울로 올라와 항의 시위를 벌였지만 방송은 물론 신문에도 한 줄 실리지 않았습니다.
경총은 노숙 농성을 강경하게 진압하라는 성명서를 내고, 보수 언론들이 일제히 기사를 내보냅니다. 어느 경제 신문은 "본사 앞 점거 비정규직 때문에…해외 고객도 못 들이는 현대차"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난합니다. 그런데 소위 진보 언론들에는 기사 한 줄, 사진 한 장 실리지 않습니다. 현대차에서 광고를 받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에 더더욱 서러워집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외면하는 언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가장 서럽게 한 사건은 5월 15일 일어났습니다. 3000여 명의 금속노조 간부들이 양재시민의숲에서 모여 현대차 본사로 행진하던 중 현대차 전주 비정규직 노동자 9명이 연행되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조합원 석방을 요구하며 금속노조에 집회를 중단하고 함께 싸울 것을 요청했으나 집회를 중단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금속노조에 집회가 끝나고 함께 싸워달라고 요청하고, 경찰의 최루액 살포에 맞서 격렬한 몸싸움을 전개했으며, 이 과정에서 6명이 추가로 연행되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데 금속노조는 집회를 마치고 해산했습니다.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 쓸쓸하게 남겨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쏟아지는 빗줄기보다, 외면하는 언론보다 더 서럽고 서글픈 날이었습니다.
비정규직 싸우는데 집회 마치고 해산한 금속노조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최루액을 맞으며 곁을 지켜준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소나기를 함께 맞고, 경찰과 용역들의 폭력에 맞서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와 기아차 영업소 앞에서 정몽구 회장 구속과 모든 사내 하청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서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5월 22일 이름도 모르는 노동자 시민들이 자기 시간을 내어 서울에서 제주까지 무려 전국 110개 영업소에서 1인 시위를 함께했습니다. 5월 29일, 6월 5일에는 더 많은 영업점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집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연대 소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토닥토닥 밥차'가 없었다면 하루하루 견디기 어려웠을 겁니다. 밤새 내린 비에 홀딱 젖어 오들오들 떨고 있을 때면 빠짐없이 찾아와 따뜻한 밥과 국물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전국에서 많은 이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밥차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끼니를 챙겨주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희망을 만들어가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서러움을 털어버리고 씩씩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한 끼 연대하기 : 토닥토닥 밥차(김은주 010-9101-9564) 1인 시위 함께하기 :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카페 (☞바로 가기 : cafe.daum.net/happylaborworld) |
이 글은 <레디앙>, <오마이뉴스>, <참세상>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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