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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못 짓고 농성장 나가야 하는 농민들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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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못 짓고 농성장 나가야 하는 농민들의 사연

[인권오름] 철거 항의하는 80대 노인에게 "쌩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대부분은 골프장에 가거나 골프를 쳐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왜 골프를 치지 않는가? 돈이 없어서? 이것도 맞다. 골프는 회원권뿐 아니라 여러 가지 부대비용에 돈이 많이 들어 비싼 스포츠다. 하지만 돈이 있다고 한들, 과연 스포츠로서 체력을 단련하고 즐기기 위해 골프장에 가게 될까? 한국에서는 이상하게도 골프가 단순히 스포츠가 아니라 비즈니스와 로비 수단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재벌, 고위공무원, 검찰, 변호사들이 만남의 장소로 골프장을 애용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곧 골프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준다. 그래서 서민들은 돈이 생겨도, 골프장에서 교류하고 네트워크를 만들 만한 이유나 배경이 없기 때문에 골프를 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이유로 골프장 대부분은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반영되어 수도권 중심으로 분포한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곳에 생기는 골프장이 유리하고, 수도권에서 뻗어 나가는 도로가 생길 때마다 주변에 골프장들이 마구 들어선다. 골프장이 가장 많은 곳은 경기도, 그다음이 강원도인 이유다.

특히 요즈음 골프장 건설이 문제가 되는 곳은 강원도다. 산지와 숲이 많아서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훼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작년 6월 기준으로 강원도에는 50개 골프장이 운영 중이고 21개가 건설 중, 13개가 인허가 과정 중이다. 이 중 홍천군은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가장 큰 피해가 생긴 곳인데, 지금 홍천군에는 운영 중인 골프장이 4개, 건설 중인 골프장이 7개, 추진 중인 골프장이 3개에 달한다. 어떤 마을은 산을 건너면 또 골프장이 생길 위기에 처해 있는데 이게 다 고속도로가 생겨서 수도권과 가까워진 탓이다.

이미 한국은 골프장이 포화상태다. 2012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골프장 426곳 중 344곳이 은행대출을 받았고, 적자업체 비중이 2009년 152개(44.2%)에서 2011년 174개(50.6%)로 증가해 도미노 부도가 우려된다고 한다. 상당수 골프장은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금을 제때 갚지 못하고 있거나 공사비 문제로 시공사와 법정 다툼을 벌이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는데, 만약 골프장 건설이 시작된 후 시공사나 골프장업체가 부도가 나면 이미 파헤쳐진 자연환경은 누가 책임져야 하나. 또 이미 땅을 강제수용 당해서 마을을 떠나야 했던 주민들은 누가 책임질 수 있는지?

공익사업도 아닌데, 땅을 뺏기고, 농사꾼 일상도 뺏기고

삶의 터전과 수많은 생명의 안식처를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골프장 반대 활동이 벌써 길게는 9년째 접어들고 있다. 시민과 주민, 단체, 양심 있는 학자들이 동참하여 골프장 예정지 곳곳을 누비며 사업자들의 부정과 거짓을 밝혀내는 성과를 얻었었고, 지난 한 해를 꼬박 강원도청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기도 했다. 그 결과 강원도지사로부터 골프장 전면 재검토 약속을 받아내는 쾌거를 이루어냈지만, 여전히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강원도지사가 아니라 이제는 홍천군수와 같이 지자체장이 주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 강원지역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가 지난해 10월 춘천역 앞 광장에서 '골프장 싫어, 강원도 살림 아우성 3000대회' 항의 집회를 열었다. 홍천 월운리 조인자 주민대책위 부위원장이 삭발하면서 울부짖고 있다. ⓒ연합뉴스
홍천군 구만리는 강원도 골프장 싸움을 이끌었던 마을이다. 주민들 간 결속력과 연대감이 강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2004년부터 사업자들이 '지역발전을 위해 가시오갈피 농장을 하겠다'고 주민들을 속여 야금야금 땅을 사들인 곳이다. 골프장을 한다고 하면 주민들이 땅을 팔지 않으니까 주민들을 속였던 것이다. 이뿐 아니다. 골프장 공사를 시작하면서 묘가 훼손되고, 홍천군청 공무원 출신이 골프장 업체의 간부로 일하면서 '관'과 '업자'가 유착하여 인·허가와 사업추진과정에서 여러 특혜가 주어지고, 엉터리 서류들을 근거로 인·허가가 이루어진 점들이 모두 밝혀졌다. 그런데도 홍천군수는 이미 허가가 난 사업, 되돌릴 수 없다는 말만 한다.

지난 5월 10일, 홍천군청 앞의 구만리, 갈마곡리, 월운리 주민들의 농성장이 철거되었다. 이 과정에서 80대 어르신은 충격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그걸 지켜보는 공무원은 "'쌩쑈'를 하고 있다"고 말했단다. 과연 한 번 허가가 난 사업은 취소할 수 없을까? 이미 경기도 안성 골프장이 인허가 과정에서 비리가 발각되어 취소되었고, 인천 계양산 골프장 역시 절차상 불법·탈법이 드러나서 사업허가 자체가 취소된 사례가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획득한 허가권을 절차가 끝났다고 해서 다시 뒤집을 수 없다면, 행정의 일관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행정 자체의 불신을 얻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골프장 하나 정도면 일하는 사람 150명 정도를 고용할 수 있으므로 일자리 창출이라고 말하지만, 이 중 코스관리사 등 전문직을 제외하고 주민들이 일할 수 있는 것은 주방, 경비, 청소 등 일용직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본래 골프장이 생기면서 토지를 수용당하지 않았다면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지금 주민들 일상은 철거되는 농성장을 지키는 일, 소송비용 8억500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이다. 사람들이든 물건이든 본래 자리에 돌아갈 수 있는 것이 평화이고 인권이다. 농부들에게 농사를 돌려주자. 불법·탈법 골프장사업 중단하자!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홍천군 월운리 주민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www.greenwonju.org에 가면 '후원 바로 하기'가 있으니 많은 관심을 갖기를!)

*이 글은 "[고이지선의 인권이야기] 요즈음 흔한 농민들의 일상"이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www.freeuse.or.kr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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