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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넥센', 비결은 강력한 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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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넥센', 비결은 강력한 수비?

[배지헌의 그린라이트] 수비효율지표로 본 넥센의 선전, 한화의 부진

1999년 삼성 라이온즈는 리그에서 가장 적은 실책을 기록했다. 그해 삼성은 팀 실책 76개로 한국시리즈 우승팀 한화(94개)보다도 훨씬 실책이 적었다. 실책 숫자만 보면 삼성이 물샐틈없이 견고한 수비력을 자랑한 최고 수비팀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정반대다. 그해 삼성은 외국인 선수로 거포 찰스 스미스와 발 빠른 타자 빌리 홀을 영입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스미스는 1루수나 지명타자로, 홀은 유격수로 활약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스미스를 막상 데려오고 보니 국내 거포 김기태-이승엽과 포지션이 겹쳤다. 셋 다 1루 외에는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순수한 1루 요원들. 결국 삼성은 이승엽-스미스-김기태의 막강 중심타선 구축을 위해 이승엽을 1루수로, 김기태를 지명타자로, 스미스를 좌익수로 기용하는 고육지책을 사용했다. 라이벌 현대의 우승에 자극받아 좋은 선수라면 앞뒤 안 가리고 영입하던 시절의 일이다.

당시 스미스의 전공 분야는 외야에서 평범한 타구를 '호수비'로 잡아내기. 보통의 선수라면 쉽게 잡아낼 플라이도 뒤늦게 쫓아가서 다이빙 캐치로 잡는 스미스의 허슬플레이는, 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함과 동시에 평범한 외야수라면 충분히 처리했을 법한 무수히 많은 타구를 안타로 만들어 주었다. 그해 스미스가 기록한 실책은 단 2개에 불과했지만, 스미스에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나와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비수로 빵점이기는 빌리 홀도 마찬가지. 유격수로 쓰려고 데려온 빌리 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야진의 '구멍(hole)'임이 증명됐다. 그렇다고 쫓아내자니 짧은 안타를 치고도 2루에서 세이프될 만큼 빠른 발이 아까웠다. 여기서도 고육지책으로 삼성은 빌리 홀을 원래 포지션인 중견수로 기용하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외야에서 홀의 수비력은 스미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만 빠를 뿐 타구판단능력에 심각한 결함을 노출한 빌리 홀은, 뜬공이 날아오면 뒤로 한참 물러났다 앞으로 달려가 잡아내는 아찔한 장면을 자주 연출했다. 그해 빌리 홀이 기록한 실책은 5개. 하지만 홀 밖으로 빠져나간 타구의 숫자는, 5개보다는 훨씬 많았다. 기록상으로는 분명 안타지만, 실은 아웃이나 실책이 되었어야 할 타구가 수두룩했다는 이야기다.


삼성의 예에서 드러나듯, 실책과 수비율만으로는 수비력을 평가하는데 한계가 있다. 기록원들은 '보통의 수비로 잡을 수 있는 타구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실책과 안타를 가른다. 스미스가 뒤늦게 판단해서 원바운드로 포구한 타구는 안타로 기록되지만, 누가 봐도 안타인 타구를 이종범이 끝까지 쫓아가 글러브를 갖다 대면 실책이 된다. 수비수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안타성 타구를 하나라도 더 '아웃'으로 잡아내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다시 말해 '얼마나 실책을 하지 않느냐'보다는 '얼마나 많은 아웃을 잡아내느냐'가 수비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고안된 수비 지표가 바로 '수비 효율(Defense Efficiency Ratio, DER)'이다.

DER=(상대한 타자-안타-삼진-사사구-실책) / (상대한 타자-홈런-삼진-사사구)
*DER은 미국의 통계 사이트마다 조금씩 다른 공식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하드볼 타임즈(hardballtimes.com)의 계산식을 사용한다.

수비 효율은 '페어 지역으로 들어간 인플레이 타구의 안타/아웃 여부는 투수나 타자의 능력과는 무관하다'는 파격적인 야구 통계 이론에서 유래했다. 이를 수비에 적용해서 홈런, 삼진, 볼넷 등을 제외한 인플레이 타구를 얼마나 더 아웃으로 처리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든 게 수비 효율이다. 수비 효율이 높은 팀은 보통의 안타성 타구를 아웃으로 만들어낼 확률이 그만큼 높다고 할 수 있다. 안타보다 아웃이 늘어나니 실점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결과. 그래서 수비 효율이 높은 팀에 속한 투수들은 실제 실력에 비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가령 앞서 언급한 1999년도 삼성을 비롯한 몇몇 팀의 수비 효율을 보자.
1999년 수비 효율(DER)
롯데 .699 - 실책 80개
한화 .684 - 실책 94개
삼성 .670 - 실책 76개
해태 .674 - 실책 110개

삼성과 롯데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두 팀 다 실책 수는 비슷하지만 수비 효율에서는 롯데가 삼성보다 2할 9푼이나 좋은 수치를 보였다. 이는 삼성 투수들이 수비수의 도움을 받지 못해 롯데보다 주자를 3%나 더 내보냈다는 의미. 한국시리즈 우승팀 한화도 실책은 94개로 다소 많은 편이었지만, 수비 효율은 롯데 다음으로 뛰어났다. 롯데가 플레이오프에서 예상을 깨고 삼성을 격파한 것, 롯데와 한화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수비의 중요성은 올 시즌에도 마찬가지다. 14일 현재 삼성은 20승 10패로 1위, 넥센이 21승 11패로 그 뒤를 바짝 따르고 있다. 삼성의 1위야 늘 보던 일이니 새롭지 않지만, 넥센이 1, 2위를 유지하는 모습은 시즌 전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다. 팀홈런(31개)과 장타율(.414) 부문 1위의 막강한 타선 덕분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14일까지 9개 구단이 기록한 수비 효율과 실책을 보면 또 다른 답을 얻을 수 있다.

ⓒ배지헌

넥센은 9개 구단 중 두 번째로 적은 15개의 실책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 앞의 1위는 실책 12개에 그친 삼성이다. 매 경기마다 온갖 창의적인 실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올 시즌에, 두 팀의 안정감 있는 수비가 빛을 발한다. 그렇다고 소극적인 수비를 펼친 것도 아니다. 넥센은 수비 효율 부문에서 .681로 SK(.722)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대부분의 팀이 지난 시즌보다 크게 하락한 수비 효율을 기록하며 '경기력저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넥센과 SK, LG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수비 효율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박병호-서건창-강정호-김민성으로 이어지는 넥센의 젊은 내야진의 순발력이 수준급이다. 장기영-이택근-유한준 등이 버티는 외야의 수비력도 만만찮다. 파울라인 안에 들어가는 어지간한 타구는 아웃으로 잡아낼 능력을 갖췄다. 특히 삼진보다는 땅볼로 맞춰 잡는 타구가 많은 에이스 브랜든 나이트가 수비수들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넥센의 젊은 투수들이 볼넷을 줄이고 보다 공격적인 투구를 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지금은 중위권에 처져 있지만, SK의 압도적인 수비 효율과 LG의 준수한 수비 효율도 앞으로의 반전을 기대하게 하는 요인이다.

▲올시즌 넥센은 삼성과 함께 최고의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다. 넥센 선전의 중요한 요인이다. ⓒ뉴시스

반면 롯데는 지난해보다 2푼이나 하락한 .662의 수비효율을 기록하고 있다. 실책도 29개로 신생팀인 NC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주전 야수들의 잇단 유출과 세대교체 실패가 공격력과 수비력의 동시 저하로 돌아오는 모양새다. 주전급 야수가 포지션당 2명 이상이라는 두산은 .651의 수비 효율로 한화와 함께 최하위를 기록했다. KIA의 수비 효율도 .658로 하위권. 지난해보다 나아진 게 없다. 막강 전력을 갖췄다는 두 팀이 남은 시즌 우승에 도전하려면, 반드시 수비를 보완해야 가능하다.

그리고 가장 큰 폭의 수비력 저하를 경험한 팀은 8위 한화 이글스. 작년 .681에서 올해는 .651까지 수비 효율이 폭락했다. 한화는 커리어 내내 주로 우익수로 활약한 정현석이 중견수를 맡았다. 외야 수비력은 약한데 대전 구장은 넓어졌다. 내야에는 인조잔디를 치우고 천연잔디를 깔았다. 팬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변화일 수는 있지만, 팀 전력과 수비수들의 적응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견된 결과다.

www.futuresb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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