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옮겨놓고 보니 화자가 정말 인간성이 안 좋아 보인다. 대본을 두고 작가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아찔한 몸매', '카리스마 발산' 등의 표제어를 뽑고 드라마 내용과 연결시키려 고심하는 보도자료 작성자에게 건넨 말이었다.
드라마 홍보는 민망하다. 홍보라는 게 선물을 포장하여 전달하는 일과 비슷해서 과하지 않게, 담백하게 포장하는 것이 좋다. 원칙적으로는. 하지만 홍보라는 게 어디 그런가. 경쟁작들에 뒤지지 않게, 눈에 띄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무리를 하게 마련이다. '톱스타 몰래 데이트 끝에 결국….' '미녀 탤런트 A 임신! 알고 보니….' 이런 기사들의 내용은 결국 드라마 속에서 몰래 데이트를 했고 임신도 했다는 얘기다. 무리수다. 그나마 이런 기사라도 잘나가면 홍보 대행사가 일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다. 무명보단 악명이 났다고, 어찌됐든 인터넷의 바다에 스친 흔적이라도 남기겠다는 각오로 써낸 보도자료들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글을 써야 하는 입장에 처한 사람 대부분은 촬영본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쓰게 된다. 홍보 전략이 수립되고 기사가 나가기 시작하는 시점은 촬영 이전이기 때문이다. 예고든 본방이든, 홍보팀도 시청자와 똑같은 시점에서 완성품을 접하게 된다. 물건도 없이 포장부터 먼저 해야 하는 작업이다. 시놉시스와 대본, 캐스팅과 현장 스틸 사진 정도를 바탕으로 글짓기를 해야 한다. 게다가 여기에 기자들이 받아쓰고 싶을 만한 '클릭 포인트'도 줘야 한다. 그러니 영혼을 꼭 붙들고 보도자료를 쓰기란 정말 쉽지 않다. 결국 매력 있는 배우의 해프닝성 사진에 기대어 낚시 기사를 내게 된다. 드라마 내용과도 연결시켜야 하지 않느냐고? 그럼 배우와 캐릭터를 혼동시켜서 마치 실제로 일어난 일인 양 써봐야지. 이렇게 '아찔한 몸매'와 '충격 임신' 등의 기사가 탄생한다.
프로듀서로서 보도자료에 대한 전략을 홍보 대행사와 같이 고민하다보면 '낚시의 품격'을 생각하게 된다. 무조건 자극적인 제목만 달았다고, 그래서 클릭 수 늘렸다고 드라마 홍보에 도움이 될까? 웃기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낚였다'는 불쾌감은 주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 정말로 몸매가 아찔하다고 생각될 때만 아찔하다고 써주시면 어떨까요, 식의 흰소리를 하기에 이른다. '영혼 없는 글'이라는 표현도 이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어차피 홍보 기사를 두고 글쓴이의 신념이 담겨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으니, 최소한 글쓴이만이라도 '이거 재미있겠는데?'라고 생각하는 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드라마 홍보는 드라마가 완성되기도 전에 이뤄진다. 홍보 기사가 '낚시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사진은 한 드라마 촬영 현장으로, 본 글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
자화자찬과 선정성의 테두리 밖에서 보도자료가 설 자리는 진정 없는 것일까. 읽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자화자찬은 관심이 안 가고, 선정성은 깔끔하지 못한 뒷맛을 남긴다. 도대체 내가 왜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이 작품을 본다고 무엇이 좋을까, 이런 걸 결코 설득할 수 없다. 실소라도 나오게 한다면 다행이다.
일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드라마 홍보의 개념을 '인연 잇기'라고 볼 수 있다. 시청자와 작품의 인연을 맺어주는 일. 서로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던 시청자와 작품을 홍보를 통해 이어주고, 재미와 감동을 전달하는 일. 우리 좋은 인연이 됩시다, 라고 악수를 청하는 홍보. 멋지지 않은가. 이 만남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 달라 호소하는 거다. 왜? 우리에겐 그만한 볼거리, 들을 거리가 있으니까.
그러자면 드라마 자체 내용에 대한 파악이 제일 중요한데, 여기서 상상력이 필요하다. 온 에어(on air)가 되기 전까진 누구도 최종 완성본을 미리 시사할 수 없는 게 방송 드라마의 제작 스케줄이니까. 완성본에 대한 상상을 한 후 기대를 부추겨야 한다. 자신에게도, 시청자에게도.
흥미로운 건 그 상상력이 본방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가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기대감이 역으로 투사된다. 실제로 방송 전에 차례로 공개되는 포스터 이미지, 티저 예고들, 타이틀 영상, 제작 발표회 영상 등은 연출, 작가, 배우, 스태프에게 영감을 준다. 본인들이 하고 있는 작업이 어떤 방향으로 종합되고 대표될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완성품 없이 이루어지는 포장 작업이니, 그 포장의 형태에 따라 내용물의 형태가 영향을 받는 유기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따라서 이 과정이 긍정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완성품을 미리 가지고 하는 영화 홍보에 비해 드라마 홍보는 훨씬 살아 있는 과정이 된다. 홍보가 본방 내용을 요청한달까. 우리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시청자와 제작진 양방향으로 스며든다. 확정된 내용물을 두고 홍보가 그에 따라 연역적으로 풀려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홍보되는 이미지를 통해 본방 내용의 톤을 결정하는 부분이 생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드라마의 예고를 훑어보는 일은 그래서 흥미롭다. 예고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드라마의 내용을 충실하게 요약 묘사하는 요소, 그리고 드라마의 톤을 미리 잡고 그렇게 제작되기를 기대하고 요청하는 요소. 이것은 첫 예고 역시 드라마가 제대로 촬영되고 편집되기 전에 나와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충실한 내용의 요약은 안전하긴 하나 기대하게 만드는 폭이 아무래도 좁다. 드라마 전체의 콘셉트를 요청하는 형식의 예고는 드라마의 본 내용과 조금 어긋날지도 모를 우려는 있지만 보는 사람에게나 만드는 사람에게나 상상의 폭을 넓혀준다.
홍보 기사 역시 예고의 이러한 기능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면 된다. 그게 잘되지 않는 건 두려워서다. 클릭 수를 확보하지 못할까봐. 우리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지배감을 느낄 뿐. 이야기는 보는 사람에게 아부하고 복종하며 지배당하기 위해 만드는 게 아니다. 매력을 느끼며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만드는 거다. 결국 드라마 홍보란 한 세계를 상상하게 하여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이다.
글로 포부를 풀어보면 이렇듯 거창해지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선정적인 제목 뽑기와 그럴듯한 현장 스틸 찾기에 맞닥뜨린다. 위의 이야기를 주워섬길라 치면 철모르는 이상주의자 취급을 받기 쉽다. 그래도 여전히, 보는 사람뿐 아니라 만드는 사람에게까지 어떤 상상과 기대를 요청한다는 점에서 드라마 홍보 과정은 매력적이다. 그 매력을 '아찔한 몸매'와 '카리스마 발산' 따위의 좁은 새장에 가두지 말기를, 이 글을 통해 숱한 한국의 홍보 대행사들에 요청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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