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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규탄,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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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규탄, 잘못됐다

[김민웅 칼럼]<67> 2억 원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일부 진보언론의 경박성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진보진영의 규탄과 사퇴요구는 잘못됐다. 특히 일부 진보언론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곽 교육감이 권위와 도덕성을 잃어 더는 교육감으로서 업무 수행이 불가능해졌다고 못 박고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사안을 속단했고 논의도 경박하게 한 결과다.

합리적인 논의의 과정을 치밀하게 밟고, 이 사건을 통해 집권세력이 기도하는 바에 대해 냉정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곽 교육감의 말을 충분히 듣고 그가 반론을 펼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상태에서 몰매를 더했다. 진보진영 전체의 상처와 위기로 해석하고 이걸 막기 위해서라도 사태악화를 조기 차단하겠다는 뜻이었겠으나, 그건 이걸 진보진영 전체의 위기로 만들고자 한 세력의 작전에 그대로 말려간 모습이었다.

이는 실체적 진실 규명보다는 막무가내의 여론몰이 재판에 동조하는 꼴이다. 뿐만 아니라 전후 사정을 제대로 가리지 않고 검찰의 일방적인 수사 논리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격이다. 더군다나 검찰은 수사 중의 내용에 대해 공표하면 안 되는 법을 마구잡이로 어기는 중이다. 재판에 앞서 검찰이 재판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격이 아닌가?

검찰의 말을 믿는가?

당연히 놀라고 당황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린 이미 노무현, 한명숙을 통해 검찰의 정체를 확인한 바다. 다행스럽게도 곽노현 교육감은 중심을 잡고 사태를 감당해나가는 침착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아마도 이 사건이 불거질 경우까지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으리라 보인다.

후보 단일화 당시 상대후보에게 당선 이후 돈을 주었다는 사실로 해서 곽노현 교육감의 도덕성과 권위를 질타하는 것은 당혹감과 실망의 표현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 하나만으로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판단과 평가를 하는 것은 섣부르다. 모든 것은 정황이 있게 마련이고 구체적인 과정이 또한 존재한다.

다른 사건과는 달리, 이번의 경우 당사자가 된 곽 교육감 자신이 후보 단일화 당시 경쟁 상대였던 박명기 서울 교대 교수에게 돈을 주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가 일정하게 근거를 갖춘 것이 되었다고 여겨질 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곧 곽 교육감이 후보 단일화 대가로 박 교수에게 돈을 주었다는 확증으로 이어질 수 없다.

박명기 교수가 대가성으로 받은 것이라고 했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일방적인 주장이므로 이번 사건의 성격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도 되지 못한다.

곽노현 교육감은 왜 돈을 주었는가?

이번 사건의 핵심은 후보 단일화를 목표로 돈을 주었는가, 아닌가에 있다. 곽 교육감은 부인하고 있다. 그러면 그가 부인한 것이 과연 사실인지를 따지는 것이 그 다음 순서다. 그런데 곽 교육감은 돈을 준 까닭을 밝히고 있다. 단일화의 대가가 아니라, 박 교수의 인생이 자칫 망가질 것을 우려해서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거짓말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그걸 출발점으로 생각해보고 그래도 석연치 않고 논리가 서지 않으면 다시 되돌아와서 따져볼 수 있는 거다.

<한겨레>는 2억 원이 선의가 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분명 2억 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2억 원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그건 큰돈이 아니다. 인간의 목숨은 2억 원으로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박 교수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걸 곽 교육감이 해야 하는냐는 것도 문제가 된다.

당연하지 않는가? 선거에 함께 나가 한 사람은 교육감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후보에서 물러나고도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채권자들에게 시달리고 진보적인 지식인으로서의 자존감과 품격 모두가 다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채 자살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을 보면서 곽 교육감은 무얼 느끼게 되었을까?

그는 박 교수의 이런 처지에 대해 자신도 그런 상황을 만들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게 되지 않았을까? 물론 내가 그가 아니니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곽 교육감이라면 그런 박 교수의 처지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만에 하나 정말 그가 죽어버린다면 곽 교육감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

단일화에 합의해서 자신이 당선되는데 조력해준 상대. 그러나 이제는 죽겠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선거 당시의 경쟁 후보, 조금만 도와준다면 살 길이 열릴 거라고 호소하는 상대. 곽 교육감은 고뇌하고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고 본다. 여기서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이 펼쳐진다. 곽 교육감이 아무리 그런 생각과 인정을 베풀려 해도 이건 누가 봐도 오해할 수 있고 자신은 물론 진보진영 전체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이 된다.

▲ ⓒ프레시안 자료

바보 곽노현

정치적 판단을 하자면 곽 교육감은 박 교수가 어떻게 되든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말아야 한다. 그를 계속 감시하고 노리는 세력들이 뻔히 있는 상황에서 곽 교육감은 박 교수의 처지를 외면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옳은 결정이 된다. 하지만 "인정"이라는 가치가 그를 좌우했다. 인권과 교육, 그리고 법의 길을 걸어온 그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먼저 고려하는 것보다는 상대의 절박한 처지가 먼저 눈에 들어와야 옳다.

이런 그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할 수 있다. 그러면 곽 교육감 말고 누가 박 교수의 일에 나설 수 있을까? 곽 교육감 대신 박 교수에게 2억 원이라는 돈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또 빌려주는 것이니 갚으라고 하지 않고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곽 교육감과 박 교수는 서로 특수 관계가 되었다. 두 사람 이상으로 다른 어느 누구도 서로가 처해있는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관계는 없다. 그건 후보 사퇴에 대한 대가로 이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한 사람은 교육 정책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같은 꿈을 꾸고 노력해오다가 궁벽한 형편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꾸면 그건 서로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박 교수 말고도 경제적 곤경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이 어찌 더 없겠는가? 그러나 곽 교육감은 당장 그 앞에 등장한 박 교수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그건 오해의 가능성이 무한한 선택이자 공개할 경우, 누구의 이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곽 교육감은 그런 쪽을 택했다.

"다른 이유", 그리고 곽노현의 눈빛

경쟁 상대방 후보에게 돈을 준 처신에 대한 질타가 있다. 이때 질타가 성립하려면 후보 사퇴에 대한 대가일 경우 외에는 없다. 만일 대가가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거다.

우린 이 "다른 이유"에 대한 이해를 하려 들지 않는 현실에 처해 있다. 그리고 그 "다른 이유"를 진보진영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자들과 맞서 있다.

법 이전에 인간이다. 오해의 가능성을 충분히 안고 있는 선택,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쪽으로 자신을 걸어버린 곽 교육감은 바보다. 그러나 그 바보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교육 정책의 변화를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 혹독한 세간의 비난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한다. 자신이 진보적 교육정책의 보루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바보가 아니었다면, 박 교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만일 그랬다면 우린 곽노현이 매몰차고 잔혹한 인간이라고 평했을 것이다. 그렇게 애원했는데도 돌아보지 않고 외면했다는 뒷이야기를 들으면서 섬뜩했을 게다. 아닐까?

나는 곽노현 교육감의 눈빛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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