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케이블방송 도급업체에서 설치 기사로 일하는 윤성대(37) 씨는 월급 대신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건수'를 많이 채울수록 임금을 많이 받는 구조이지만, 그래봐야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6-7건이 한계다. 근로계약서를 쓴 적도 없다. 초과 수당, 휴일 수당, 야근 수당도 없다.
일은 원청업체가 할당하지만, 잘못은 하도급 구조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하청 노동자 책임이다. 그는 "본사에서 아침 일찍, 혹은 저녁 늦게 예약을 잡으면 설치 기사들은 추가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며 "반면 업무가 과중해서 한 집이라도 늦게 방문하면 수수료(임금)가 깎인다"고 말했다.
윤 씨가 하루 9-10시간씩 한 달에 28일가량 일해서 받는 '수수료'는 한 달에 약 170만-230만 원. 기름값, 식비, 통신비, 차량 유지비를 빼고 손에 쥐는 돈은 150여만 원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조, 민주통합당 장하나·전순옥·한명숙 의원,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11일 국회에서 개최한 '케이블방송 불공정 하도급 실태와 외주업체 비정규직 노동실태 보고대회'에서 윤 씨는 이 같이 말했다.
케이블방송 설치와 영업, A/S 등을 담당하는 간접 고용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준수'와 '불공정 다단계 하도급 구조 근절'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개인 사업자, 단기 계약직, 파견 근로직 등의 다양한 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다.
이종탁 희망연대노조 위원장은 "케이블방송 본사는 영업 할당과 지침 등을 통해 사실상 노동자들에 대한 사용주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설치 노동자들은 개인 사업자로 일하거나 개인 사업자 등록을 한 팀장 밑에서 건당 수수료를 받고 일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협력업체는 전 직원을 모아놓고 출근 조회를 하고, 영업 관련 지시를 하며, 다른 팀으로 인사이동을 한다"며 "그럼에도 원청과 협력업체 모두 사용자로서 책임지지 않는 고용 형태를 넓히고 있다"고 비판했다.
▲ 2월 25일 종로구 지봉로에서 한 통신사 직원이 전신주 케이블 작업을 하던 중 감전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서울 중부소방서에서 출동, 구조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케이블방송 외주업체 노동자들은 업무 특성상 비 오는 날에도 전신주에 올라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뉴시스 |
업무 특성상 산재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지만, 일을 하다 다쳤을 때 '그냥 참고 넘어가거나 자비로 치료한다'는 응답은 55.8%나 차지했다. '작은 사고는 자비로 처리하고, 큰 사고는 산재로 처리한다'는 응답은 17.7%였다. 윤 씨는 "옥상 난관에서 작업하거나, 가스 배관을 잡거나 유리병이나 쇠창살이 박힌 담벼락을 탈 때도 많다"며 "작업을 하다가 전신주에서 떨어지거나 감전돼 크게 다친 사례도 지난 6년 동안 서너 번 봤지만, 산재 처리가 되는 것을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원청업체와 도급업체가 장비와 사람에 투자하지 않으면서 '실적'을 종용하고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고 비판했다. 윤 씨는 "도급업체가 낡아빠진 기계를 주고 해피콜(고객 만족도) 실적, 영업 실적을 올리라고 압박한다"며 "그러면서 설치 기사들이 올려놓은 영업 건수가 본사 등록 과정에서 빠져나가도 기사들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비판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수급사업자의 희생을 통해 원사업자는 유리한 지위에서 대외 경쟁에 임할 수 있지만, 이는 장기적으로는 수급사업자의 채산성 악화와 품질 저하로 이어져 원사업자의 경쟁력도 떨어뜨릴 것"이라며 "불공정 하도급 거래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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