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Radiohead) 팬들이 다시금 큰 숨을 들이마시게 할 프로젝트 밴드 아톰스 포 피스(Atoms for Peace)의 앨범 [어모크](Amok)가 본모습을 드러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이 밴드에는 톰 요크(Thom Yorke, 보컬, 기타, 키보드 프로그래밍)와 마이클 피터 발자리(Michael Peter Balzary), 곧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플리(Flea, 베이스)가 참여했다. 이들의 뒤를 이제는 여섯 번째의 라디오헤드 멤버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프로듀서 나이젤 고드리치(Nigel Godrich, 프로듀싱, 프로그래밍), 벡(Beck)의 드럼 세션을 담당했던 조이 와론커(Joey Waronker) 및 RHCP와 작업했던 마우로 리포스코(Mauro Refosco, 퍼커션)가 떠받친다. [어모크]는 이들이 모여 라이브를 한 후 4년 만에 나온 첫 앨범이다.
▲아톰스 포 피스 [어모크]. ⓒXL, 워너뮤직코리아 |
[디 이레이저]의 그것과 같은 형태의, 같은 질감을 가진 앨범 재킷이 [어모크]를 설명하는 열쇳말이다. 앨범 사운드는 [디 이레이저]에 더 가깝게 닿아 있다. 톰 요크와 나이젤 고드리치가 만들어낸, 공간을 부유하는 리듬 루프를 뼈대로, 군데군데 퍼커션이 빈 공간을 메우는 형식을 지니고 있다. 모든 곡의 기운은 불안하고, 어둡고, 긴장감이 넘친다. 극도로 끌어올려진 긴장감이 여유와 빈틈을 찾기 어렵게 할 정도다.
버스와 코러스를 구분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이 앨범이 라디오헤드의 그것보다 톰 요크의 솔로작과 더 맞닿아 있다는 평가의 이유다. 9개의 곡으로 구분돼 있지만, 실제로는 한 곡을 듣는 것과 같은 기분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스핀>은 이와 같은 개별 싱글의 동질성을 두고 [디 이레이저], [킹 오브 림스]에 비해 [어모크]가 "두 앨범보다 더 단색성(monochromatic)을 띤다"고 평했다.
과장된 음악 구조와 패배감에 절었던 1990년대 록의 세계를 빠져나온 후 톰 요크가 만든 다른 작업물과 마찬가지로, [어모크]는 서사를 이해하기 힘든 '단어 이미지'가 전자음악을 타고 넘실대는 한 폭의 추상화와 같다. [킹 오브 림스]가 차라리 대중적이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앨범은 극도의 차가운 기운을 머금고 있다. 최근 해외 인디 음악팬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끄는 포 텟(Four Tet)이나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 등의 뮤지션이 만든 작업물과 비교가 더 나을 정도다.
다만 기대보다 낮은 평단의 반응에 불안함을 가질 이유는 없다. [어모크]는 [키드 에이](Kid A)의 스산한 기운과 [헤일 투 더 시프](Hail to the Thief)의 광기, 그리고 [인 레인보우즈](In Rainbows)의 아름다움과 절묘한 리듬감을 사랑하는 이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앨범이다. 퍼커션이 각 곡의 빈틈을 메우는 관절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시작과 동시에 매 곡의 리듬이 귀에 각인된다. 나이젤 고드리치의 연출력은 톰 요크의 자유분방한 사고가 철저히 계산된 곡 전개를 통해 스피커에 표현되도록 잘 계산돼 있다.
그러나, 앨범을 플레이하는 순간 느껴지는 의문 하나는 마지막 곡 <어모크>가 끝날 때까지 해소되지 않는다. 이 앨범에서 플리의 존재감은 어디 있을까. 옷을 벗음으로써(더 정확히는 수만 명이 모인 무대 위에서 엉덩이를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면서) 스스로 희화화하는, 슈퍼 록 밴드의 중심인 거물 베이시스트가 참여했음에도, 그의 두툼한 펑키 사운드는 [어모크]에서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스턱 투게더 피시스>(Stuck Together Pieces), <리버스 러닝>(Reverse Running) 등에서 침잠한 플리의 연주가 더 전면에 나서지만, 한때 재즈를 전공했던 플리는 톰 요크에 철저히 가려져 있다.
결국, 앨범 재킷이 열쇠다. 이 앨범은 톰 요크의 두 번째 솔로 프로젝트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감독 톰 요크의 지시 하에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배우의 영역에 머무른다. 아톰스 포 피스에게서 느껴지는 단 하나의 아쉬움은, 이 밴드가 멤버들의 매력이 그 수에 맞게 표출되는 팀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인이 확실히 존재했던 프로젝트였다는 점일 것이다.
김태춘 [가축병원블루스]
▲김태춘 [가축병원블루스]. ⓒ일렉트릭 뮤즈 |
이미 지난해 나온 블루스 컴필레이션 앨범 [블루스 더, Blues]에서 독보적인 노래였던 <개>로 존재감을 보인 김태춘은 [가축병원블루스]에서도 예리한 칼과 같은 목소리를 내뱉는다. 김태춘은 하헌진, 김대중의 등장으로 최근 국내 인디 음악신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내는 장르가 된 블루스를 포크, 컨트리와 함께 자신의 극단적인 분노를 뱉는 도구로 활용했다.
대부분의 곡 주제의식은 비참한 삶을 이어가는 우리네 민중의 분노를 표출하는 데 집중한다. 최근 짐을 벗어던진 논현동의 누군가를 연상케 하는 <악마와 나>, 한국 사회에 대한 분노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개들의 세상>, 비참한 민중의 인생을 빗댄 <가축병원블루스>를 포함해 거의 모든 곡이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분노는 블루스의 원형질을 옮겨온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애초 블루스는 반인권적인 흑인 착취 노동 시절의 산물이다. 노동요이자 민중가요의 역할을 했고, 나아가 흑인 인권운동 정신을 담은 결정체였다. 팝의 정신을 기성 문화에 대한 반문화로 이해할 수 있다면, 블루스가 모든 팝의 원형질이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가축병원블루스]는 결코 여유로운 농담과 같은 앨범이 아니다. 이 앨범에는 수많은 우리 일상 용어, 더 정확하게는 노골적인 성적 농담에 쓰이는 단어가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 서글픈, 때로는 스산한 연주가 근래 찾아보기 힘들었을 정도로 독보적 완성도로 펼쳐지는 이 앨범에서 이는 온전한 감상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여유로운 곡 진행 중간마다 두드러지는 일상의 욕설은, 오히려 높은 문턱처럼 툭툭 귀를 걸고 늘어진다. 굳이 [가축병원블루스]에 민중가요의 속성을 빗댄 이유는, 바로 분노가 여과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불협화음이 드러나는 이유는 [가축병원블루스]가 노래하는 소재와 '19금 언어'의 사용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모로 비슷한 사례가 될 김대중의 <300/30>은 보증금 300만 원을 들고 월세 30만 원짜리 방을 찾아다니는 오늘날 청년세대의 비참한 현실을 유머로 승화한 체험담으로 풀어낸다. 이 곡에서는 녹번동, 평양냉면 등의 단어가 사용되는 게 이상하지 않다. 애초 뮤지션은 일상의 사건을 담담히 기술하고, 이를 통해 우리 현실을 비틀기 때문이다.
[가축병원블루스]에 담긴 노래들은 그와 다르다. 화자는 그보다 전지적 관점으로 현실을 비유하고, 듣는 이가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이런 화법에서 일상의 용어는 과장된 호응을 얻어내기 위한 도구로서는 유용하지만, 오히려 그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우리가 발 디딘 현실을 다분히 문학적인 비유 대상인 '가축병원'으로 그린 후 등장하는 '똥구녕'은 곡을 들을 때마다 귀의 에너지를 병원에서 항문으로 옮긴다.
말하자면, [가축병원블루스]는 하드코어 펑크의 형식을 빌린 블루스, 혹은 블루스를 가장한 하드코어 펑크다. 앨범에 쓰인 연주와 김태춘의 목소리는 여태 경험하지 못한 펄떡이는 생명력을 전달하지만, 그 생명력은 지나치게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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