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난소암에 걸린 노동자의 산재 신청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지난달 불승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5일 '삼성 직업병 진상 규명과 노동 기본권 확보를 위한 충남대책위원회',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불승인 처분을 받은 피해 노동자는 고 이은주 씨로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는 지난달 15일 고 이 씨의 가족들이 신청한 유족급여 등 신청에 대해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1976년에 태어난 고인은 1993년 4월 만 17세의 나이에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 금선연결(반도체 내부와 외부를 전선으로 연결하는 작업으로 와이어 본딩이라고도 부른다) 공정을 맡았다. 1999년 6월 퇴사한 이 씨는 이듬해 4월 만 24세의 나이에 40~50대 여성이 주로 걸리는 난소암 판정을 받았고, 오랜 투병 생활을 하다 지난해 1월 숨졌다.
'삼성 백혈병' 논란이 커지면서 직업성 암을 얻은 노동자들에 대한 산재 판정이 지금보다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과거와 다르지 않은 기준으로 불승인 결정을 내려 반올림 등의 반발을 샀다.
반올림 등은 "고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노동부와 그 산하 기관들은 제대로 된 규명보다는 회사 측이 제공한 작업환경측정결과와 물질정보(MSDS) 등에 기댄 매우 형식적인 역학조사를 했다"며 "그러한 부실한 역학조사 결과에 기댄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를 통해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역학조사를 실시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고 이 씨가 담당한 공정에서 난소암을 유발할 수 있는 석면, 탈크, 방사선 등의 유해 물질을 다루지 않았다고 밝혔고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노동자에게 발생한 질병과 작업환경 사이의 관계를 의학적으로 정확히 규명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상당인과관계만 성립하면 산재를 승인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고 이 씨의 경우 △직장에서 접하는 '에폭시 수지' 등에서 발암물질 및 난소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이 나올 수 있다는 게 국내외 연구로 밝혀졌고 △법적 규제가 약했고 작업환경도 열악했던 1990년대에 근무해 발암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으며 △과거 같은 조에서 일했던 직장 동료도 난소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았고 △외국 반도체업계에서도 금선연결 공정에서 일한 여성 노동자들의 난소암 표준화사망률(연령에 따른 영향 등을 배제한 사망률)이 일반 여성보다 2.3배 높았던 점 등을 볼 때 상당인과관계를 충족시킨다는 것이 반올림 측의 판단이다.
반올림 등은 "명백한 증거 없이는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은 더 많이 죽고 더 많이 병든 후에야 사후약방문을 쓰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며 "노동자는 마루타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