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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회사가 쌍용차밖에 없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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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회사가 쌍용차밖에 없냐고요?"

[기고 ①] 2월 28일 쌍용차 철탑 농성 100일 문화제에 함께해주세요

2월 27일은 쌍용자동차 송전탑 고공 농성 100일을 맞는 날입니다. 이에 '쌍용자동차 희생자 추모 및 해고자 복직 범국민 대책위원회'는 이튿날인 28일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100일 문화제'를 열기로 했습니다. 쌍용차지부는 고공 농성 중인 문기주 쌍용차지부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직지회 수석부회장,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 지부장이 건강하게 하루빨리 내려올 수 있도록 마음을 모으기 위해 <프레시안>에 2차례에 걸쳐 기고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회사가 거기밖에 없나? 다른 곳에 취직하면 되지, 그 회사가 그렇게 대단해?"

얼마 전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3일>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의 일부입니다. 남편이 쌍용차에 다녔던 어느 아내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회사가 어디 있어? 무급 휴직자들 복귀하는 마당에 좋은 게 좋다고, 국정조사 안 하는 게 낫지 않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아내는 취업 나가는 자식에게 "아빠가 쌍용차에 다녔다는 얘기는 해도 되지만, 파업에 참가했단 말은 하면 안 돼. 하지 마. 절대 안 돼"라고 몇 번이나 아이에게 신신당부했다고 합니다.

며칠 전 일요일 오후, 치과 진료를 기다리던 가족들이 두런두런 모여 앉아 소소한 일상을 나누다 나온 이야기입니다. 함께 있던 가족들은 모두 이 아내의 말에 웃으며, "맞아, 맞아" 하며 호응을 해주었습니다. 가운데 끼여 있던 저 역시 고개를 끄덕여 주었지만, 그날 온종일 마음이 참 씁쓸했네요. 나의 존재가, 우리의 싸움이 통째로 부정당하던 느낌이었습니다.

파업이 끝나고 4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런 느낌은 늘 있었죠. 그런데 잠깐 착각하고 있었나 봐요. '와락'(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심리 치유 공간 <편집자>)에서 일하다 보니, 늘 우리에게 호의적인 우리 편만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만 듣다 보니, 세상이 다 우리 편이라고 방심했나 봅니다.

저에게는 세 아이가 있습니다. 첫째와 둘째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학부모 모임이 종종 있는데, 저는 '직장 맘'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참석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직장이라는 방패를 둘러치고 늘 숨어 있곤 했어요. 우리를 바라보는, 우리 가족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 불편해서, 아니, 어쩌면 공격당할까 봐 내 쪽에서 먼저 방어막을 쳐버리는 거죠.

2009년 여름, 물이 끊기고 전기가 끊기고 최루액에 피부가 녹아내리던 와중에도 의약품 반입이 차단되고, 급기야 음식물 반입도 끊기던 그 공장 안에서도 끝끝내 버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외치며 임신 5개월이던 내가 다섯 살 먹은 아들 손을 잡고 국회의원 사무실에 서명을 받으러 돌아다녀야만 했던 이유. 불과 몇 달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남편의 직장 동료가, 남편을 포함한 파업 가담자들에게 '나가라'며 관제 데모 맨 앞줄에 서서 구호를 외치던 모습에 억장이 무너지고서도 다시 마음 추스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 파업 후유증에 시달리던 아이들을 보며 그래도 우리의 싸움이 옳았다고, 아이들이 크면 우리를 이해할 거라며, 아빠·엄마가 정의로웠다고 이야기할 거라며 수도 없이 마음 다독이며 살아온 이유.

이 모든 이유가 부정당할까 봐 그동안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던 건 아닌지 되돌아봅니다.

며칠 전, 평택 안중에서 쌍용차 파업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당신과 나의 전쟁> 상영이 있어 보고 왔어요. 그동안 평택에서 몇 번의 상영이 있었지만 제대로 본 건 처음이었어요. 우리에게 우리의 얘기를 다룬 영화를 본다는 건, 또는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를 읽는다는 건, 그저 단순히 보고 읽는 게 아니니까요.

그날의 기억들과 싸워야 하는 일이니 선뜻 보겠다고 나서는 가족이 없죠. 세월이 흐른 만큼 많이 담담해졌다고 자신했는데, 저 역시 보는 내내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도록 두 주먹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터져 나올까 봐 울음을 꾹꾹 씹어 삼키고 있었습니다.

이 글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어지러운 마음 정리도 할 겸 부산에 계신 친정엄마께 전화를 걸었어요. 항상 그렇듯 엄마는 제게 아이들의 안부를 물으셨고, 모녀 간의 짧은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고 서방은?"
"계속 서울에 있어요."
"우째, 해결될 기미가 보이나…. 애들은 자꾸 커 가는데…."


그렇게 모녀는 4년 동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치 탁구공 튕기듯 대화를 주고받다가 건강하게 잘 지내라는 형식적인 안부로 대화를 끝냅니다.

복잡하고 심란한 바람으로 마음 일렁이던 지난 며칠. 머릿속으로 여러 개의 이미지가 끊임없이 떠올랐다가 수도 없이 지워집니다. '그만두고 싶다. 그만두고 싶다. 지겨워.'

문기주, 한상균, 복기성.
내 모든 방황의 끝자락을 붙잡고 떠오르는 이름들입니다. 저 사람들 내려오기 전에는 차마 그만둘 수가 없어요. 한겨울로 들어섰음을 알리며 매섭게 몰아치던 바람과 함께 그 새벽, 맨손으로 철탑에 올랐을 그들의 사연이 너무 가슴 아파 돌아설 수가 없어요. 어느새 길어진 해가 봄임을 알리는데 동상에 걸렸다는 발이 땅 밟을 날 아득해 모른 척 돌아설 수는 더더욱 없네요.

이들이 철탑에 오른 지 100일이 되어갑니다. 오는 28일,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100일 문화제를 합니다. 오셔서, 우리의 싸움이 정당하다고 외쳐주세요. 일할 곳이 없어서, 쌍용차가 대단해서, 꼭 그곳에 다시 들어가고 싶어서 이 지난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님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세상,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그 누구 하나 억울함 때문에 목숨을 걸지 않도록, 그 옳고도 환한 세상을 위해 우리들 손 힘껏, 잡아주세요.


ⓒ쌍용자동차 희생자 추모 및 해고자 복직 범국민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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