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행정법원은 조선소 하청 노동자로 약 15년간 일했다가 2010년 폐암에 걸려 숨진 고(故) 한모(58) 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는 약 15년 동안 보호 장구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용접과 취부 작업을 하면서 폐암의 발생 원인이 되는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됐고, 그 때문에 각종 호흡기 질환에 시달려 왔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고인은 25년간 금연하였고 폐암 가족력도 없으며 사망 당시 불과 만 58세로서 달리 폐암 발생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며 "폐암은 망인의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프레시안(허환주) |
"업무-재해 인과관계,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한 씨는 1995년부터 한진중공업, 부산중공업, 현대중공업, 송강중공업, 대선조선, 세진기업 등의 하청업체에서 취부 작업과 용접 작업을 하다가 2010년 1월 폐암 판정을 받고 같은 해 12월 숨졌다. 취부 작업이란 임시 용접으로 철판과 철판을 도면대로 연결하거나 붙이는 작업이다.
고인은 1998년까지 선박 수리 작업을 할 때 용접복과 방진 마스크도 공급받지 못했고, 2000년대 이전에는 환기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밀폐된 선박 안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취부 작업과 용접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고인이 쇳가루와 가스 때문에 기관지염으로 치료를 받아왔고, 검은 가래를 뱉었다고 진술했다.
조선소 용접 노동자는 석면, 니켈, 6가 크롬 등 유해물질에 노출되기 쉬워 일반인보다 폐암 발병률이 30-40%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고인의 작업 환경에 대해 역학 조사한 결과, 2005-2006년 한진중공업 취부 작업장에서 금속 분진, 망간, 철, 구리, 아연 등이 기준치 미만으로 검출됐고, 용접 작업을 할 때는 금속 분진과 용접흄이 기준치보다 높게 검출됐다.
앞서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는 2011년 10월 "고인의 작업장에서 발암물질이 확인되지 않았고 유해물질 노출 정도도 기준치 미만이며, 고인은 대부분 옥외 작업장에서 일했다"며 유가족이 청구한 산재를 불승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업무와 재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며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발병 원인 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을 고려하여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입증된다"고 설명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21일 논평을 내고 "이번 판결은 산재 입증 책임을 완화한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것으로 의미가 있다"며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의 산재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산재를 판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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