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단 두 장의 정규 앨범인 1988년작 [이즌트 에니싱(Isn't Anything)]과 1991년의 [러블러스(Loveless)]로 반짝 유행에 그칠 걸로 예상됐던 슈게이징(Shoe Gazing) 스타일이 장르화하는 데 절대적 영향을 끼친 밴드 반열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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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역사는 밴드의 프론트맨인 케빈 실즈(Kevin Shields)와 콜름 오 시오소닉(Colm Ó Cíosóig)이 1978년 의기투합하면서 시작했다. 둘은 2009년 3D 기법으로 다시 제작된 공포영화 <블러디 발렌타인>에서 영감을 얻어 밴드 이름을 짓고, 1985년 데뷔 EP를 내 본격적인 음악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귀를 찢어놓을 듯한 기타 굉음이 곡을 주도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 몽롱함과 아름다움이 황금비율을 이루는 이들 특유의 스타일은 1987년, 엘리자베스 프레이저(Elizabeth Fraser, 콕토 트윈스)를 연상케 하는 목소리를 가진 빌린다 부처(Bilinda Butcher)를 만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즌트 에니싱]은 신호탄이었다. 인디 팝이라고 하기도, 포스트 펑크라고 하기도 곤란했으나 이들 장르의 기운을 모두 머금고 있었던 이 앨범은 언더그라운드에서 다이노서 주니어, 픽시스, 허스커 두, 머드허니가 폭압적인 기타 사운드를 선보이던 시기에 발맞춰 등장했다. 추상적인 인상 비평이 앨범에 대한 찬사로 가득했으나, 무엇보다 "기타 연주가 들어 있지 않은 기타 록 앨범"이라는 크리스 셰이드의 평가가 가장 적확하다.
울부짖는 기타가 만드는, 눈을 감게 하는 몽롱한 이들의 음악은 이제 인디록의 신화적 명반으로 군림하는 [러블러스]에서 폭발했다. 슈게이징을 정의하는 앨범이자, 슈게이징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 오른 이 앨범은 끊임없는 재레코딩 작업을 위해 18명의 엔지니어가 투입됐고, 당시로서는 큰 액수였던 25만 파운드가 제작비로 투입된, 아마도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한 앨범 가운데서는 가장 큰 노력이 들어간 대작일 것이다.
빌리 코건(스매싱 펌킨스)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완벽주의자였던 케빈 실즈는 [러블러스]의 재녹음을 위해서만 2년을 쏟았고, 그 사이 밴드에 미래를 걸었던 크리에이션 레코즈는 이 앨범 하나 때문에 파산 직전까지 갔다. 케빈 실즈는 [러블러스]의 발매 사운드에 여전한 불만을 표했고, 최근 재발매된 리마스터 앨범에서야 케빈 실즈의 의도가 가장 정확히 반영됐다고 한다.
[러블러스] 이후 끝내 해체하는가 싶었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은 2007년부터 다시금 기지개를 켰고, 무려 20여 년 만의 새 앨범 발표를 앞두고 한국을 찾게 됐다. "귀머거리의 고막을 울리는 소음"이라는 <롤링 스톤>의 평가에 걸맞게, 밴드는 이날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밴드 로고가 새겨진 케이스와 귀마개를 제공할 예정이다. 1980년대 미국 언더그라운드에서 시작한 기타 소음에 대한 천착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에 이르러 아름다움의 절정으로 피어났다. 이들의 공연은 다시 맞기 힘들, 강렬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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