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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말기, 저에겐 최고로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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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말기, 저에겐 최고로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기고]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거주지 '쪽방'

2012년 초 서울시 동자동 지역의 쪽방 주민은 주민 회의를 통해 '건강한 마을 만들기' 첫단계 사업으로 동자동의 건강권 실태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건강세상네트워크, 동자동사랑방,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함께 7월부터 11월까지 실태조사를 수행했다. 실태조사는 동자동 쪽방 주민 5명과의 일대일 심층면담, 주민 225명에 대한 면접설문을 통해 이루어졌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쪽방주민에 대한 이러한 실태조사 연구가 보건의료 담론을 넘어서 건강권을 재구성하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면서 3회에 걸쳐 그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고자>

가난한 삶들의 잇단 죽음

"저는 지금 시한부 인생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암말기입니다. 저는 이 병이 나에게 최고로 아름다운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쪽방촌 블로그에 한 30대 후반 여성이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 유서에 남긴 말이다.

최근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인천에서는 아픈 어머니를 돌보던 40대 딸과 70대 노모가 생계를 비관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고, 대구에서는 어머니와 두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여름 거제시청 앞에선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기초수급에서 탈락한 할머니가 '법도 사람이 만드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의 빈곤층은 차상위 계층까지 포함하면 정부의 공식통계로도 그 규모가 570만 명 정도이다. '글로벌 코리아' 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상대적 빈곤도 증가속도는 OECD 평균보다 4배나 빠르고 국민 열 사람 중 한 명 정도가 빈곤층이니 가난은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문제이다.

그러나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한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나태한 개인일 뿐이다. 가난은 이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가난하다는 것은 곧 이 사회를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비참하다는 뜻이며,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매우 비정하다. 이 사회가 이들을 외면하고 있을 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은 이렇게 멈출 수 없는 죽음이 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거주지 '쪽방'

서울역 맞은 편 남대문 경찰서 뒤편 그리고 그 옆 도로 건너 동자동에는 대략 2000여 가구의 쪽방들이 밀집되어 있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이 지역에 피난민들이 판자촌을 지어 거주면서 이 지역은 현재까지 쪽방촌으로 유지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주상복합과 화려한 빌딩들이 늘어선 서울역 근처에 쪽방이 있었어?라고 묻게 되겠지만 삶의 터전인 집을 잃고 전세방에서 월세방으로 그리고 옥탑방과 반지하를 거쳐 고시원 등으로 밀리고 밀려 어쩌면 마지막 거주지가 될지 모르는 어두운 1평짜리 쪽방에서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쪽방은 대체로 1.5평 정도로 성인 한 명이 누우면 가득 차는 크기다. 월세는 15~20만 원 정도로 화장실과 세면장은 따로 없고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 대부분 주민들이 주방이 따로 없어 쪽방 안에서 휴대용 가스렌지를 이용해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쪽방밀집지역은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남대문, 동자동과 종로 창신동, 영등포역 주변 등으로 역세권이나 중심가 주변 골목에 주로 쪽방들이 모여 있다. 생활하기 매우 불편하지만 보증금 없이 구할 수 있는 곳이기에 쪽방은 가난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되는 공간이다.

▲ 쪽방. ⓒ프레시안(최형락)

동자동 쪽방 주민인 A 씨는 IMF 전까지는 잘 나가는 인테리어 전문가였다. IMF 때 사업이 망하고 이혼 후 노숙생활을 하다 쪽방에 들어왔다. 현재는 당뇨합병증으로 몸이 좋지 않은 상태다. 당뇨는 만성질환이니 꾸준히 치료를 받으며 관리하면 어느 정도는 좋아질 수 있는 질병이지만 이 분이 사는 쪽방은 1평이 조금 넘는다. A 씨는 다리도 제대로 뻗을 수 없는 곳에서 매일 부은 몸을 웅크리며 잔다. 또 부엌이 없으니 끼니는 주로 컵라면과 빵으로 해결하고 수급비가 떨어지면 밥을 해먹기가 힘들어 약도 제때 먹지 못해 건강이 더 악화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이 탈락되어 그마저도 현재는 치료가 중단된 상태이다.

동자동과 남대문 쪽방에는 한 달에 기초생활수급비 40만 원 이하로 살아가는 수급권자들이 많다. 현재 수급비는 1인가구 기준으로 한 달에 45만 원인데, 쪽방 방세 17~20만원을 내고 부식비, 통신비 등을 내고 나면 인간다운 삶을 위한 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 아프기까지 하다면 낮은 보장성으로 병원에 가는 것은 엄두로 못 낼 일이다. 삶의 환경이 나쁘면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또 건강이 나쁘면 일을 할 수 없는 조건이 되니 삶과 주거환경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가난한 이들에게 다시 삶의 기회를

동자동 쪽방 주민을 대상으로 한 이번 건강권 실태조사에서 쪽방 주민의 건강은 전반적으로 나빴다. 질병, 장애의 비율도 높았고 흡연과 식이, 영양상태 등 건강행동도 좋지 못한 편이었다. 질병을 가지고 있는 비율이 높아 지속적인 의료서비스가 필요하지만 실제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은 매우 낮아 이들의 건강권 문제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쪽방 주민 5명 중 1명이 최근 1년동안 자살 시도를 한 것으로 조사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요약하자면 쪽방 주민들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 측면에서 한국인 전체 인구 집단에 비해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쪽방 지역을 철거하겠다고 위협하고 전월세 값 폭등을 방치해 이들을 더욱 비참한 주거 환경에 빠뜨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쪽방 주민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야한다. 아파도 치료비 걱정하지 않고 무상으로 병원을 이용하게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들이 노동할 수 있는 조건의 인프라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개발을 위해 쪽방촌을 철거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깨끗하고 안정적인 거주지를 마련해 주어 이들에게 다시 삶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좀 더 상세한 내용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의 '[시민건강이슈-11/12] 쪽방주민의 건강과 삶으로부터 배운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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