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비극적 죽음도, 민주화 이후 최악의 정부라 할 이명박 정부의 실정도,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과 알바단의 암약도, 윤여준의 논리와 김여진의 눈물도, 표창원의 사자후도, 결정적으로 텔레비전 토론을 통해 드러난 박근혜의 실력도 박근혜새누리당 지지자들의 표심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무려 90%가 선거장으로 출동한 50대는 무엇을 위해 혹은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리 결사적으로 투표장으로 향했을까?
대선이 끝난 후 늘 그렇듯 승인(勝因)과 패인(敗因)에 대한 자칭, 타칭의 전문가들의 분석이 난무한다. 이를 거칠게 분석하면 박근혜 새누리당의 승인은 박근혜가 문재인 보다 센 후보였고, 새누리당이 민주당 보다 혁신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새누리당이 민주당 보다 선거전략을 잘 짰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분석이다.
하지만 일리만 있다. 이런 분석은 대한민국 선거지형이 언제나 새누리당에 일방적으로 유리-단적으로 경상도 유권자들은 전라도 유권자 보다 두 배 반이 많다. 새누리당은 경상도를 독식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 단위 선거에서 질래야 질 수가 없다-하다는 기본전제, 언론이 일방적으로 박근혜 새누리당을 지지했다는 사실, 국가기관조차 은밀히 혹은 노골적으로 박근혜 새누리당을 밀었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혹은 애써 외면한다. 이런 게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엄밀한 평가인지 진정 의문이다.
야권과 야권 지지자들에게 이번 패배가 깊은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은 사실상 야권 지지자들이 총집결해 투표장으로 향했으면서도 패배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 때보다 무려 200만표 이상 더 많은 득표를 했고, 20대, 30대, 40대 투표율과 지지율도 노무현 당선 당시를 웃돈다. 그런데도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100만표 이상 뒤졌다.
5년 후에는 진보,개혁진영이 승리할 수 있을까?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대선판을 가장 강력하게 규정하는 요소들이 다음 대선에서도 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유사인종주의의 일종이라 할 영남패권주의에 포획된 경상도 유권자-특히 대구, 경북-들이 5년 후에도 1천만명 내외에 달할 것이라는 사실, 탐욕(나라가 어떻게 되건 부동산 가격 하락만은 막으려는 애처로운 안간힘)과 공포(북한 혹은 좌파에 대한 만들어진 혹은 상상하는 공포)에 사로잡힌 50대 이상 유권자들이 온존할 것이라는 사실, 언론지형은 여전히 9 : 1 혹은 8 : 2로 기울어진 채 교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설사 박근혜 정부가 실패한다 해도 2017년에 정권교체는 쉽지 않아 보인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게 객관적인 현실이다.
기실 선거에서 승리하는 길은 간단하다. 집토끼를 단단히 단속하고 산토끼까지 잡는 것이 그것이다. 새누리당은 집토끼만 확실히 잡아도 승리할 수 있음을 이번에 여실히 보여줬지만, 야권의 사정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야권은 이번에 분명히 확인된 지지코어를 바탕으로 가치동맹을 구성하고 외연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우선 세대별로는 20~40대, 지역으로는 수도권과 호남, PK가 가치동맹의 구성인자가 될 것이다. 야권은 이 가치동맹을 단단히 쥔 채 지역별, 세대별로 외연을 넓혀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야권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할 길은 전혀 없다.
특히 놓치지 말야할 할 포인트는 50대 이상 유권자다. 흔히 '베이비부머'라 불리는 50대는 유권자 수가 7백7십만명에 달하는데 그 중 90%가 이번 대선 투표에 참여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문재인에게 몰표를 던진 20대의 투표율이 65.2%, 30대의 투표율이 72.5%였고, 문재인이 거의 10%포인트 가량 앞선 40대의 투표율이 78.7%였음을 감안할 때 50대의 투표율이 얼마나 경이적인 것인가가 드러난다. 세대별 구성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야권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20~40대 유권자들의 투표율을 이번 대선보다 한결 높이거나 50대 이상 유권자들의 지지를 더 얻어야 한다.
물론 둘 다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야권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달성해 내야 한다.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지도 않은 시점에 차기 대선 얘기를 하는 게 시기상조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전력과 조건이 일방적으로 열세인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부터 잠재적 지지자들까지 포괄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고, 정당의 핏줄 역할을 할 지역조직을 구축해 네트워킹화하며, 대중에게 소구되는 매력적인 인물들을 노출시키고, 정책을 더 세련되게 하며, 정책 전달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5년은 금방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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