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셀로'라는 게임을 좋아한다.
반상에 검은 돌이 줄지어 있을 때, 흰 돌로 양 끝을 막으면 중간의 검은 돌이 모조리 흰 돌로 바뀌는 게 규칙이다. 내가 흰 돌을 들고 있을 때, 눈앞이 온통 검은 돌투성이여도 별로 낙담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이 게임의 묘미다. 머리만 잘 굴리면 한순간에 온통 흰 돌투성이로 뒤집을 수 있다. 물론 여기서 긴장을 놓으면 안 된다. 게임 상대방 역시 하얀색인 반상을 검은색으로 뒤집을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숨 가쁜 반전과 반전. 한번 세가 꺾이면 회복하기 힘든 게 바둑인데, 그와는 다른 재미가 있다.
김대중·노무현 찍었던 '베이비부머', 왜 박근혜 밀었나
지난 1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를 보며 '오셀로' 게임을 떠올렸다. 많은 젊은이들이 선거 결과에 절망했다고 말한다. 또래 친구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투표 독려를 했는데, 진짜 투표율이 높았던 것은 50대 이상 연령층이었다.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다. 이들이 박근혜 후보를 밀었다.
688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번 대선을 승리로 이끄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은 진작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들 연령층이 전체 인구분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또 기업, 관공서, 언론사 등에서 요직에 있으므로 영향력도 세다. 대선 후보 가운데는 안철수 전 후보가 딱 '베이비부머' 세대다. 박근혜, 문재인 후보는 '베이비부머' 세대보다 나이가 조금 위다. (☞관련 기사: 빚더미에 오른 베이비부머, 당신의 부동산은 안전합니까?)
'베이비부머' 세대의 정치 성향은 가변적이다. 그보다 윗세대와는 다른 점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청, 장년기에 1987년 6월항쟁을 경험했다. 교육수준도 높다. 적어도 이들은 조갑제류의 '묻지마 극우' 세력은 아니다. 실제로 이번에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진 50대 가운데 제법 많은 수가 과거 대선에서 김대중, 노무현을 지지했다. 당시엔 이들의 나이가 30~40대였다.
'오셀로' 게임 닮은 그들, 정치 성향은 계속 바뀐다
'오셀로' 게임을 떠올린 건 그래서였다. 바둑에선 흰 돌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흰 돌이다. 하지만 '오셀로' 게임에선 흰 돌이 검은 돌이 되고, 다시 흰 돌이 된다. 정치 성향이 고정된 60대 이상이 바둑돌이라면,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을 가리키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 생)는 '오셀로' 게임의 말을 닮았다.
이는 다음 선거에선 이들 '베이비부머' 세대가 진보 개혁 성향을 띨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물학적으로 나이를 먹으면, 무조건 보수화 하는 것 아니냐고? 꼭 그렇지는 않다. 중국 신해혁명의 주인공 쑨원(손문)은 "내 귀밑머리가 하얘질수록 내 마음은 더욱 붉어진다"라고 말했다.
진보, 보수는 자신이 처한 조건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재산 규모가 달라지고, 지식의 양과 종류가 바뀌면서 정치 성향도 함께 변하는 사례를 흔히 본다. 기자가 아는 한 공학자는 나이 들어 진보로 바뀌었다. 뒤늦게 사회과학에 흥미를 붙인 게 계기였는데, 습득하는 지식의 종류가 바뀌면서 정치 성향이 달라진 경우다. 책 한 권, 신문 한 장 제대로 읽을 시간 없이 일하다 은퇴한 뒤에 신문을 꼼꼼히 읽게 되면서 진보로 돌아선 노동자도 봤다. 지식과 정보의 양이 달라지면서 정치 성향이 바뀐 사례다. 또 학창 시절엔 과격한 좌파였는데, 사회에서 돈을 꽤 모은 뒤엔 보수파가 된 경우도 봤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다. 재산 규모에 따라 정치 성향이 달라진 경우다.
독재와 민주 다 겪었지만, 경제적으론 늘 '부동산 불패' 신화
그렇다면 '베이비부머' 세대는 왜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을까. 아직은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선거 전부터 진행된 이런저런 분석들을 복기해보면, 희미한 그림은 떠오른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정치적으론 거센 부침을 겪었다. 독재와 민주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력을 모두 경험했다. 하지만 경제, 사회적으론 대체로 일관된 경험이 있다. 기본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시대였다. 또 학벌주의 시대였다. 군인이 통치하건, 민주투사가 집권하건 이런 뼈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했다. 집값은 계속 오르기 때문이다. 빚을 내서라도 자식 과외는 시켜야 했다. 이들의 경험으론,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럭저럭 중산층의 삶이 보장됐다.
대학 나온 자식은 백수, 아파트 값은 뚝뚝, 가계부채는 '폭탄'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빚내서 산 아파트 값이 뚝뚝 떨어진다. 자식이 대학에 들어가면 자식 뒷바라지는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취업과 결혼, 육아가 대학입시만큼이나 힘들다.
이런 현실이 통계 지표로 잡힌 게 천문학적인 가계 부채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다. 폭탄을 안고 있는 이들은 불안하다. 그러니까 변화를 꺼린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라는 약속은 힘이 없다. 당장이 급하니까. 우선 폭탄이 터지지 않게 하는 게 급하다.
'베이비부머' 세대 가운데 상당수는 박근혜 후보 당선이 부동산 폭락을 막는데 유리하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이 유지되는 한, 이들이 박 후보를 지지하는 걸 막기는 힘들다.
누구나 아는 사실, 그러나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세상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부동산 대세 하락은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국민도 이걸 곧 깨닫는다. 마치 부자를 대통령으로 뽑는다고 해서 국민이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 무리한 성장 정책은 재벌만 살찌울 뿐이라는 걸 이제는 누구나 알 듯 말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선 '747' 공약처럼 황당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빚내서 집 사봐야 별 볼일 없다는 것, 이 과정에서 입은 손해는 대책이 없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는 날이 곧 온다. 빚내서 과외 열심히 시켜봤자, 그래서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봤자 인생역전 따위는 없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이미 대부분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아파트와 자식이 사회안전망 구실 못하는 시대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끝났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된 뒤엔 무얼 할 거냐는 말이다. 이번 대선에서 화두가 된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게 그때다. '베이비부머' 세대에겐 아파트와 자식과외가 사회안전망이었다.
하지만 기껏 가르친 자식은 부모를 부양할 능력 또는 의지가 없고, 아파트는 애물단지가 됐다. 그렇다면, 사회안전망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또 이들 세대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 비중이 높다. 대기업에 계속 다니기 힘든 나이인 탓이다. 대기업의 횡포를 견제하자는 목소리는 이들의 이해와 겹친다.
"복지는 공동구매, 그래서 세금이 더 싸다"
사실 이들이 짊어진 천문학적 가계부채 역시 복지와 관계가 있다. 복지가 잘 갖춰져 있어서 공적으로 해결했다면, 훨씬 적은 비용이 소요됐을 일들을 개인이 각자 알아서 해결하다보니 비용이 많이 든다. 흔히 복지엔 세금이 든다고 불평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겐 차라리 세금이 더 싸다. 각자 알아서 물건을 사는 것보다 공동구매가 더 저렴한 것과 같은 이치다. 건강보험료를 조금 더 내고 건보보장성을 높이는 게 민간의료보험에 돈을 쓰는 것보다 더 싸게 먹힌다는 말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이런 이치를 잘 설명했다.
복지가 없어서 생겨난 비용을 개인이 감당하면서 가계부채가 늘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질수록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문재인 후보가 TV토론에서 건강보험료 인상과 보장성 확대를 이야기한 것은, 이런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경쟁력 낮은 산업에서 경쟁력 높은 산업으로…'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물론, 정치적인 부담도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 자영업자들은 세금에 가장 민감한 집단이다. "복지는 세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들은 등을 돌릴 수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다른 판단이 가능하다. 이들이 '레드오션'인 줄 뻔히 알면서 자영업 경쟁에 내몰린 이유, 경쟁 탈락에 대한 공포 등을 차분히 짚어보면 그렇다.
반상에 검은 돌이 줄지어 있을 때, 흰 돌로 양 끝을 막으면 중간의 검은 돌이 모조리 흰 돌로 바뀌는 게 규칙이다. 내가 흰 돌을 들고 있을 때, 눈앞이 온통 검은 돌투성이여도 별로 낙담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이 게임의 묘미다. 머리만 잘 굴리면 한순간에 온통 흰 돌투성이로 뒤집을 수 있다. 물론 여기서 긴장을 놓으면 안 된다. 게임 상대방 역시 하얀색인 반상을 검은색으로 뒤집을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숨 가쁜 반전과 반전. 한번 세가 꺾이면 회복하기 힘든 게 바둑인데, 그와는 다른 재미가 있다.
김대중·노무현 찍었던 '베이비부머', 왜 박근혜 밀었나
지난 1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를 보며 '오셀로' 게임을 떠올렸다. 많은 젊은이들이 선거 결과에 절망했다고 말한다. 또래 친구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투표 독려를 했는데, 진짜 투표율이 높았던 것은 50대 이상 연령층이었다.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다. 이들이 박근혜 후보를 밀었다.
688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번 대선을 승리로 이끄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은 진작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들 연령층이 전체 인구분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또 기업, 관공서, 언론사 등에서 요직에 있으므로 영향력도 세다. 대선 후보 가운데는 안철수 전 후보가 딱 '베이비부머' 세대다. 박근혜, 문재인 후보는 '베이비부머' 세대보다 나이가 조금 위다. (☞관련 기사: 빚더미에 오른 베이비부머, 당신의 부동산은 안전합니까?)
'베이비부머' 세대의 정치 성향은 가변적이다. 그보다 윗세대와는 다른 점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청, 장년기에 1987년 6월항쟁을 경험했다. 교육수준도 높다. 적어도 이들은 조갑제류의 '묻지마 극우' 세력은 아니다. 실제로 이번에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진 50대 가운데 제법 많은 수가 과거 대선에서 김대중, 노무현을 지지했다. 당시엔 이들의 나이가 30~40대였다.
'오셀로' 게임 닮은 그들, 정치 성향은 계속 바뀐다
'오셀로' 게임을 떠올린 건 그래서였다. 바둑에선 흰 돌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흰 돌이다. 하지만 '오셀로' 게임에선 흰 돌이 검은 돌이 되고, 다시 흰 돌이 된다. 정치 성향이 고정된 60대 이상이 바둑돌이라면,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을 가리키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 생)는 '오셀로' 게임의 말을 닮았다.
이는 다음 선거에선 이들 '베이비부머' 세대가 진보 개혁 성향을 띨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물학적으로 나이를 먹으면, 무조건 보수화 하는 것 아니냐고? 꼭 그렇지는 않다. 중국 신해혁명의 주인공 쑨원(손문)은 "내 귀밑머리가 하얘질수록 내 마음은 더욱 붉어진다"라고 말했다.
진보, 보수는 자신이 처한 조건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재산 규모가 달라지고, 지식의 양과 종류가 바뀌면서 정치 성향도 함께 변하는 사례를 흔히 본다. 기자가 아는 한 공학자는 나이 들어 진보로 바뀌었다. 뒤늦게 사회과학에 흥미를 붙인 게 계기였는데, 습득하는 지식의 종류가 바뀌면서 정치 성향이 달라진 경우다. 책 한 권, 신문 한 장 제대로 읽을 시간 없이 일하다 은퇴한 뒤에 신문을 꼼꼼히 읽게 되면서 진보로 돌아선 노동자도 봤다. 지식과 정보의 양이 달라지면서 정치 성향이 바뀐 사례다. 또 학창 시절엔 과격한 좌파였는데, 사회에서 돈을 꽤 모은 뒤엔 보수파가 된 경우도 봤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다. 재산 규모에 따라 정치 성향이 달라진 경우다.
독재와 민주 다 겪었지만, 경제적으론 늘 '부동산 불패' 신화
그렇다면 '베이비부머' 세대는 왜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을까. 아직은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선거 전부터 진행된 이런저런 분석들을 복기해보면, 희미한 그림은 떠오른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정치적으론 거센 부침을 겪었다. 독재와 민주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력을 모두 경험했다. 하지만 경제, 사회적으론 대체로 일관된 경험이 있다. 기본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시대였다. 또 학벌주의 시대였다. 군인이 통치하건, 민주투사가 집권하건 이런 뼈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했다. 집값은 계속 오르기 때문이다. 빚을 내서라도 자식 과외는 시켜야 했다. 이들의 경험으론,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럭저럭 중산층의 삶이 보장됐다.
대학 나온 자식은 백수, 아파트 값은 뚝뚝, 가계부채는 '폭탄'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빚내서 산 아파트 값이 뚝뚝 떨어진다. 자식이 대학에 들어가면 자식 뒷바라지는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취업과 결혼, 육아가 대학입시만큼이나 힘들다.
이런 현실이 통계 지표로 잡힌 게 천문학적인 가계 부채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다. 폭탄을 안고 있는 이들은 불안하다. 그러니까 변화를 꺼린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라는 약속은 힘이 없다. 당장이 급하니까. 우선 폭탄이 터지지 않게 하는 게 급하다.
'베이비부머' 세대 가운데 상당수는 박근혜 후보 당선이 부동산 폭락을 막는데 유리하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이 유지되는 한, 이들이 박 후보를 지지하는 걸 막기는 힘들다.
누구나 아는 사실, 그러나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세상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부동산 대세 하락은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국민도 이걸 곧 깨닫는다. 마치 부자를 대통령으로 뽑는다고 해서 국민이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 무리한 성장 정책은 재벌만 살찌울 뿐이라는 걸 이제는 누구나 알 듯 말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선 '747' 공약처럼 황당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빚내서 집 사봐야 별 볼일 없다는 것, 이 과정에서 입은 손해는 대책이 없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는 날이 곧 온다. 빚내서 과외 열심히 시켜봤자, 그래서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봤자 인생역전 따위는 없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이미 대부분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아파트와 자식이 사회안전망 구실 못하는 시대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끝났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된 뒤엔 무얼 할 거냐는 말이다. 이번 대선에서 화두가 된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게 그때다. '베이비부머' 세대에겐 아파트와 자식과외가 사회안전망이었다.
하지만 기껏 가르친 자식은 부모를 부양할 능력 또는 의지가 없고, 아파트는 애물단지가 됐다. 그렇다면, 사회안전망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또 이들 세대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 비중이 높다. 대기업에 계속 다니기 힘든 나이인 탓이다. 대기업의 횡포를 견제하자는 목소리는 이들의 이해와 겹친다.
"복지는 공동구매, 그래서 세금이 더 싸다"
사실 이들이 짊어진 천문학적 가계부채 역시 복지와 관계가 있다. 복지가 잘 갖춰져 있어서 공적으로 해결했다면, 훨씬 적은 비용이 소요됐을 일들을 개인이 각자 알아서 해결하다보니 비용이 많이 든다. 흔히 복지엔 세금이 든다고 불평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겐 차라리 세금이 더 싸다. 각자 알아서 물건을 사는 것보다 공동구매가 더 저렴한 것과 같은 이치다. 건강보험료를 조금 더 내고 건보보장성을 높이는 게 민간의료보험에 돈을 쓰는 것보다 더 싸게 먹힌다는 말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이런 이치를 잘 설명했다.
복지가 없어서 생겨난 비용을 개인이 감당하면서 가계부채가 늘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질수록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문재인 후보가 TV토론에서 건강보험료 인상과 보장성 확대를 이야기한 것은, 이런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경쟁력 낮은 산업에서 경쟁력 높은 산업으로…'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물론, 정치적인 부담도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 자영업자들은 세금에 가장 민감한 집단이다. "복지는 세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들은 등을 돌릴 수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다른 판단이 가능하다. 이들이 '레드오션'인 줄 뻔히 알면서 자영업 경쟁에 내몰린 이유, 경쟁 탈락에 대한 공포 등을 차분히 짚어보면 그렇다.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 경쟁력이 약한 산업 종사자가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지원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 복지국가의 비전이 가장 필요한 집단 역시 이들이다. 그러나 이런 비전을 다듬고 검증하고 설득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관련 기사: "'좌파'보다 국익에 무관심한 그들, '진짜 우파' 맞나?")
'현실이 된 신화'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다
다음 총선이 3년4개월 뒤로 떨어져 있다는 점이 반가운 이유다. 진보 개혁 진영에겐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베이비부머' 세대는 은퇴에 가까워지고 노인복지의 수요가 늘어난다. 현실로 경험하는 '박근혜 정권'은, 국민으로 하여금 수십 년 동안 유지돼 온 '박정희 신화'에서 깨어나게 만든다. '현실이 된 신화'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다. 자신들의 표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여러 정당이 내놓은 복지정책을 꼼꼼히 검토한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의 비전이 있다면, 진보 개혁 진영에겐 기회가 온다는 말이다.
위기를 기회로, 적을 동지로…시간은 있다
간혹 영화 같은 삶을 사는 이도 있지만, 대개는 초라하고 평범한 인생이다. 바둑처럼 한 집 한 집 쌓아올리는 인생, 반전이 드문 삶이다. 정치는 다르다. '오셀로' 게임처럼 반전이 꼬리를 문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되고, 적은 어느새 동지가 된다. 그게 정치다.
5년 뒤, 검은 돌무더기를 일거에 흰 돌무더기로 뒤집는 멋진 '오셀로' 게임 한판을 기대한다.
'현실이 된 신화'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다
다음 총선이 3년4개월 뒤로 떨어져 있다는 점이 반가운 이유다. 진보 개혁 진영에겐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베이비부머' 세대는 은퇴에 가까워지고 노인복지의 수요가 늘어난다. 현실로 경험하는 '박근혜 정권'은, 국민으로 하여금 수십 년 동안 유지돼 온 '박정희 신화'에서 깨어나게 만든다. '현실이 된 신화'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다. 자신들의 표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여러 정당이 내놓은 복지정책을 꼼꼼히 검토한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의 비전이 있다면, 진보 개혁 진영에겐 기회가 온다는 말이다.
위기를 기회로, 적을 동지로…시간은 있다
간혹 영화 같은 삶을 사는 이도 있지만, 대개는 초라하고 평범한 인생이다. 바둑처럼 한 집 한 집 쌓아올리는 인생, 반전이 드문 삶이다. 정치는 다르다. '오셀로' 게임처럼 반전이 꼬리를 문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되고, 적은 어느새 동지가 된다. 그게 정치다.
5년 뒤, 검은 돌무더기를 일거에 흰 돌무더기로 뒤집는 멋진 '오셀로' 게임 한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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