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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 어 베터 월드>에 대한 뒤늦은 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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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 어 베터 월드>에 대한 뒤늦은 小考

[오동진 칼럼]<12>덴마크 여성감독 수잔 비에르의 작품세계가 주목받는 이유


▲ 영화 <인 어 베터 월드> ⓒ 엔터미디어

할리우드와 국내 블록버스터의 홍수 속에서도 관객들은 볼 영화라면 꼭 보고 있다. 발품을 팔아서라도 좋은 영화는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 수잔 비에르 감독의 화제작 <인 어 베터 월드>가 대표적이다. 거의 단관 수준 개봉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봉 한 달여 만에 4만 관객을 넘어섰다.

이런 류의 영화가 4만 명을 넘긴 것은 블록버스터로 따지면 100만 관객에 해당하는 셈이다. <인 어 베터 월드>의 흥행 호조에 힘입은 덕인지 요즘 비상업영화의 위세가 만만치 않다. <인 어 베터 월드> 이후 개봉된 캐나다 영화 <그을린 사랑>도 개봉 2~3주 만에 1만 명의 관객을 넘어섰다. 뒤늦게나마 <인 어 베터 월드>의 리뷰를 싣는다. <편집자>

밀물처럼 가슴을 치고 들어 온 영화는 마치 썰물로 물이 빠져나가듯, 다른 사람들을 위해 바다로 밀어내 줘야 한다. 혼자만 간직하고 있으면 안 된다. 그건 감정적 이기의 발로이며 궁극적으로는 죄악이다. 수잔 비에르의 영화 <인 어 베터 월드>는 혼자만 끙끙 앓고, 혼자만 눈물 흘리며, 혼자만 환호해서는 안 될 영화다. 감동을 나눠야 할 영화란, 바로 이런 작품을 두고 하는 얘기다.

<인 어 베터 월드>는 폭력의 이중주를 그린 영화다. 스웨덴 출신으로 덴마크에 헤어진 아내와 아이를 두고 살아가는 의사 안톤(미카엘 퍼스브랜듯)은 북부 아프리카의 난민촌에서 진료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수단의 다르푸르로 의심되는 이곳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야만적인 폭력이 행사되는 지역인데, 이른바 민병대라 불리는 반군들이 태아 성별을 가지고 내기를 하면서 임산부의 배를 가르는 만행을 저지른다.

안톤은 잔혹한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향해 묵묵히 치료행위를 이어가지만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곤혹스런 선택의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바로 민병대 대장이라는 작자가 다리를 심하게 다쳐 진료소를 들어온 것이다. 이 악마 같은 인간에 대한 치료를 거부함으로써 더욱 많은 양민을 살리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의사로서의 본분을 살려, 어떻든 간에 진료에 나서야 하는가. 안톤은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안톤을 둘러싼 폭력적 환경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덴마크에서 살아가는 10살 난 아들 엘리아스(마르쿠스 리가드)도 처지가 비슷하기는 마찬가지다. 엘리아스는 늘 또래 아이들로부터 이지메를 당하며 힘든 학교생활을 이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티안(윌리엄 요크 닐센)이라는 아이가 런던에서 전학을 오게 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크리스티안은 여느 때처럼 아이들에게 당하고 있던 엘리아스를 일격에 구해내게 되는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생존 감각을 내세우는 크리스티안을 좇아 엘리아스는 점점 더 실제적 폭력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두 꼬마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치기에까지 이른다.

그리 많은 편수는 아니지만 수잔 비에르가 지금까지의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좇아가고 있는 문제는 폭력이 얼마나 사람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 이르게 하느냐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남편이 점점 더 광기에 빠져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를 괴롭히게 된다는 내용의 2004년 작 <브라더스>가 그런 내용이었다.

그러나 수잔 비에르의 문제의식은 단지 그 선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중요한 귀착점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그렇게 사람을 안과 밖 모두에서 바꾸게 하는 폭력이란 존재 앞에서 우리 인간들은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는 것이며 바로 그 점이야말로 이 폭력적 세계를 구원하고, 용서하며, 재생시킬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 영화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 엔터미디어

2007년에 발표한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뜻하지 않은 폭력에 희생된 사람과 그 뒤에 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따뜻하기 그지없는, 무엇보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남편(데이빗 듀코브니)이 거리에서 뜻하지 않는 사건에 휘말려 총을 맞고 즉사하는 바람에 아내(할 베리)는 인생이 주저앉은 느낌이다. 그런 그녀는 남편의 친구(베네치오 델 토로)를 증오의 대상이자 복수의 상대로 삼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 이 친구의 집을 갔다 오는 길에 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잘나가는 부동산 건축업자, 친구는 퇴락할 대로 퇴락한 마약중독자다. 남편은 어릴 때 죽마고우라며 이미 인생이 끝장나 있는 친구를 위해 조촐한 생일잔치를 해주고 오는 길이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아내는 친구를 앞에 두고 그 어떤 폭력보다도 잔혹한 느낌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왜 당신이 죽지 않았어? 죽어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 같은 사람이야. 왜, 당신이 내 남편 대신 죽지 않았어?"

아내의 오열 앞에 친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침묵으로 답을 대신한 그는, 그때부터 마치 속죄를 구하는 양 그토록 끊기 어려웠던 마약을 멀리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의 노력을 지켜보면서 아내는 서서히 남편의 친구를 자신의 마음속에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세상의 폭력이든, 개인의 폭력이든 우리가 폭력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은 우애와 사랑, 용서와 구원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제목처럼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은 어쩌면 바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수잔 비에르는 얘기한다.

폭력 앞에 선 우리는 더 폭력적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폭력적이면 안 되는 것인가. 우리가 한번 비폭력의 삶의 방식을 택한다고 한들 계속해서 그런 태도를 지킬 수 있는가. 그게 그리 쉽고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수잔 비에르의 생각이며 또 그렇게 쉬운 얘기가 아닌 한, 더더욱 그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의 그녀가 작품을 통해 늘 강조하려는 점이다.

<브라더스>에서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그리고 이번 신작 <인 어 베터 월드>에 이르기까지, 수잔 비에르의 목소리는 단지 그녀가 유럽 저 멀리 국가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했다. 그런데 그건 매우 불공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영화 <인 어 베터 월드> ⓒ 엔터미디어

<인 어 베터 월드>의 덴마크 원제는 <복수>다.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어느덧 자신의 마음속에 복수의 칼이 자라나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진정한 복수는 복수하지 않는 것, 폭력을 오히려 저 멀리 지척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폭력이 끊임없이 폭력을 부르는 세상이다. 복수가 복수를 낳고 그래서 점점 더 세상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간다. 그 혼돈의 한 가운데에서 수잔 비에르는 조용히 휘파람을 분다. 모두들 마음을 좀 가라앉히라고. 대신 함께 손을 맞잡고 가슴을 서로의 가슴에 포갠 채 따뜻한 사랑을 나누라고. 세상은 종종, 수잔 비에르의 밀어처럼 고독한 광야에서의 조용한 외침이 뒤흔들게 하는 법이다. 수잔 비에르와 그녀의 영화 <인 어 베터 월드>야말로 바로 그런 영화다.

우리에게 정녕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인가. 결국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거기에 도달하려는 진심의 희망이다. <인 어 베터 월드>는 이 어지러운 세상을 향해 진심을 담아 희망의 목소리를 전하려는 영화다.

(* 전문을 제외한 글은 대중문화 전문사이트 엔터미디어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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