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린 것은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라며 "저는 오늘 이 순간부터 흑색선전과의 전면전을 선언한다"고 기염을 토하는 박근혜를 바라보는 심정은 복잡했다. 그 심정은 납득 불가와 분노와 두려움이 섞인 묘한 것이었다. 박근혜가 직접 기자회견장에 나와 "성폭행범들이나 사용할 수법", "음습한 정치공작", "국기문란행위", "집단테러" 등의 살벌한 단어들을 쏟아내며 분기탱천한 건 문재인과 민주당이 자신을 상대로 근거 없는 마타도어에 골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근혜가 마타도어의 증거로 삼는 건 2차 TV 토론 당시의 '아이패드 논란', 나꼼수가 제기한 1억5000만 원 '굿판' 논란, 신천지 연루 논란 등인데,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각종 비판과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도 입증 못하는 허위사실 유포'라고 단정했다.
박근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민주당이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선 "이 나라의 공당이 젊은 한 여성을 집단테러한 것은 심각한 범죄행위"라며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는 정보기관마저 자신들의 선거승리를 위해 의도적으로 정쟁의 도구로 만들려 했다면 이는 좌시할 수 없는 국기문란행위"라고 맹공격했다. 아울러 박근혜는 "이런 세력이 권력을 잡으면 대통령 비방하는 댓글 하나만 달아도, 컴퓨터 내놓으라고 폭력정치·공포정치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가를 폭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하고, 정치를 사회적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할 때 일정 기간 국가와 정치를 책임지는 리더쉽을 선출하는 선거의 본질이 무력을 수반하지 않는 전쟁이라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이건 선거, 그것도 대통령제를 선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선거가 점잖고 평화롭게 치러지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네거티브는 아름다운 일도, 권장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정당한 검증과 근거 있는 비판을 무조건 네거티브로 규정하고 이에 분노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더욱이 박근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속속 발각되고 있는 새누리당 SNS미디어본부장 윤모 씨의 이른바 '댓글 부대'를 통한 불법 선거운동 의혹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당장 물증이 드러나지 않는 검증과 비판은 네거티브로 치환하고,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드러난 혐의에 대해서는 묵비로 일관하는 것이 박근혜표 선거운동인 것 같아 근심된다.
기실 최근 박근혜가 보이는 일련의 언행은 근심을 넘어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인혁당 사건이나 5.16군사반란, 유신쿠데타, 정수장학회 강탈 등에 대한 박근혜의 물구나무 선 역사인식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는 치명적인 결함이지만, "흑색선전", "문재인이 집권하면 국민을 사찰하고 감금할 것" 운운하는 박근혜의 발언이 단순히 선거전략이 아니라 그녀가 지닌 멘털리티의 중요한 부분을 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인데, 그녀는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는 것 같다.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며 양해할 수도 없는 일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사찰ㆍ감금ㆍ고문의 대마왕은 박근혜의 아비 박정희였고, 박근혜는 유신시대의 상당기간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또한 새누리당의 전신정당들은 흑색선전과 마타도어와 지역주의 조장의 원조정당이며 새누리당 역시 전신정당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쉽게 말해 박근혜는 대한민국에서 가해자의 가해자였다는 의미다. 박근혜는 모친과 부친의 피살, 타의에 의해 청와대를 나간 사실, 5공 기간 동안 정치활동이 사실상 금지됐던 사실 등을 피해의 확고한 근거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박근혜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할 때 가장 춥고 어두웠다고 기억하는 때조차 그녀는 신체의 위해도, 물질적 결핍도, 명예의 실추도 경험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피해자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 아비 박정희에 의해 죽고, 고문당하고, 투옥당하고, 가족이 파괴된 수많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내가 박근혜를 정말 두려워하는 건 그녀가 무식해서도, 여성의 몸을 한 남성이어서도 아니다. 내가 박근혜를 진정 무서워하는 것은 그녀가 가해자의 "갑"이면서 철저히 피해자의 멘털리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철저히 피해자의 멘털리티를 지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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