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연정'발언을 계기로 정치권이 한 동안 술렁이더니, 최근에는 내각제 개헌논의로 연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제안하고 여당이 힘을 실었던 연정 제의에 대한 국민여론도 좋지 않고 야당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이를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내각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연정이 무엇이기에 대통령과 여당은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과 야당은 그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원래 '연정'이란 '연립정부'를 의미하며, 이는 의원내각제에서 나타나는 정치형태의 하나다. 내각제에서는 의회의 다수파가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원칙이고, 하나의 정당이 과반수를 형성하지 못할 경우에는 여러 정당이 연립해 내각을 구성하게 되는데 이를 연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제1당이 제2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단순 과반수가 아니라 압도적인 다수를 형성하는 것을 대연정이라 하고, 제1당이 제3당이나 제4당과 연립해 과반수를 약간 넘는 다수를 형성하는 것을 소연정이라고 한다.
***연정은 대통령제와 부합되는가?**
내각제에서는 과반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없을 경우에 필연적으로 연정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대통령제에서는 그렇지 않다. 과거 우리나라도 여소야대의 정치상황을 겪은 예가 적지 않으며,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여소야대인 예가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양당제 국가인 미국에서 연정을 하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게 되겠는가? 애초에 양당제 국가에서는 연정이 성립되기 어렵다. 정당이 두 개인 상황에서 그 두 정당이 연합할 경우에는 모든 권력이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력분립에 반하고, 법치주의에 반하며, 나아가 국가권력의 민주적 정당성과 관련해서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양당제 국가가 아니라고 해서 연정이 쉽게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의원내각제의 경우와 달리 국민이 의회와 대통령을 각기 별개의 선거에 의해 선출하며, 이를 통해 의회와 정부가 각기 독립된 정당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의회와 정부는 서로를 견제하는 가운데 각기 입법과 집행의 독자적 활동에 대한 책임을 '국민에 대해서' 지며, 의회와 정부가 서로에 대해 직접 책임지지는 않는 것이다.
의원내각제와는 달리 정부의 의회해산권이나 의회의 정부에 대한 불신임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내각제의 경우와 달리 연정의 필요성 자체가 그렇게 절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여소야대의 정치상황은 연정을 필요로 하는가?**
물론 대통령제 하에서, 그리고 양당제가 아닌 다당제의 정치상황 하에서, 여러 정당이 일정한 정책에 관하여 공조체제를 갖추는 것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여당을 포함한 정당간의 정책공조뿐만 아니라 야당들 상호간의 정책공조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여소야대의 정치상황이기 때문에 반드시 연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대통령이 연정을 전제로 야당에 대해 내각제 수준의 권한이양을 시사한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를 낳게 될 수 있다. 내각제의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의회에서 간선하며, 대통령에게 실권이 없다. 내각제에 있어서 대통령은 형식적인 국가원수일 뿐이고 실권이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에 관한 모든 권한을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내각제가 아니라 프랑스식 이원정부제를 염두에 두고 권한이양을 이야기했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외교·통일·국방에 관한 사항을 담당하고 국내정치에 관한 것은 (연정의 요구에 따라 임명하는) 총리가 담당하는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소야대이기 때문에 연정을 통해 의회 내에 다수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은 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고 국정을 수행해야만 한다는 선입견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오히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을 의회가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각종의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으며, 이는 여소야대의 정치상황에서 더 잘 기능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연정은 국민의 의사와 부합되는가?**
연정 문제와 관련해 빠뜨릴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는 국민의 의사다. 지난해의 국회의원선거에서 여당에게 과반 의석을 준 것도, 그리고 지난 4월의 재·보선에서 여당에게 참패를 안기며 여소야대의 정치상황을 만든 것도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이다. 그러한 국민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정치상황을 변경하려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연정을 통해 의회 내에서 다수를 확보하게 될 경우에는 정부가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서 의회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또는 통제를 회피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편의성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정부와 국회는 결국 국민이 원하는 바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며 그 결과는 차기 선거에서 국민이 판단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DJP연합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내각제 국가인 독일에서도 대연정의 경우 후유증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난해 국민 다수의 의사를 무시하고 국회 내의 압도적 다수를 기초로 탄핵소추를 통과시켰던 정당들이 그 뒤의 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맞았는지를 생각해 보자.
민주주의는 가장 기본적으로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비록 국가정책에 관한 모든 사항을 - 특히 각 분야의 전문적 지식과 정보를 필요로 하는 경우 - 비전문가인 국민이 올바르게 평가하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기본적인 정치적 결정은 존중되어야 하며, 특히 대표자의 선발에 관한 국민의 결정은 최우선적으로 존중되어야 할 것인데, 연정은 이러한 측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연정 또는 내각제 개헌에 앞서 국민의사에 충실해야**
대통령과 여당이 연정을 제안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른바 "내각제 수준의 권한 이양"을 거론했던 것은 그만큼 정치적 상황이 어렵고, 국회의 협조가 절실하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주장이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 진지한 의도였음을 확인시키기 위해 내각제 개헌논의까지 거론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은 곤란하다. 또한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 또한 국민의 선거에 의해 구성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민은 대통령과 국회를 각기 선거를 통해 구성하면서 어느 한쪽도 독선적으로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상호견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권력분립의 기본적인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국회의 견제를 회피하려 하는 것은 헌법의 기본적 요청의 하나인 권력분립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될 것이다. 또한 여야의 연정이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국민의 의사를 왜곡하는 것이 될 경우, 야합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며, 정당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가져오고, 지지계층의 이탈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더구나 연정 고려의 진실성을 담보하기 위해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를 더 크게 만들 뿐이다. 만일 국민이 내각제를 원하고, 현실적으로도 내각제의 성공조건이 갖추어진 상황이라면 내각제 개헌도 진지하게 검토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전제 없이 권력의 분점을 위해 내각제로 개헌한다는 것에 과연 국민들이 동의할 것인가?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상대방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이다. 국회가 대통령을 비판해도 국민이 대통령을 지지할 경우에는 그 지위는 튼튼하며 안정적인 국정수행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지난해의 탄핵사건이 이를 입증한 것이 아닌가?
더구나 현재 여당이 비록 과반의석을 채우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회 내에서 확실한 제1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회의 견제를 피하고 정책집행의 편의성만 의식해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면, 그것은 비새는 지붕을 막기 위해서 대들보를 뽑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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