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후보가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정치학을 전공한 참모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중요한 문제를 혼자서 결정해 버린 겁니다. 제가 얼마 전 '안철수는 정말 외줄타기 곡예사일까?'(<프레시안>과 <미디어오늘> 9월 28일, ☞ 바로 가기)라는 글에서 경고한 바 있습니다. 지나치게 수평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조직에서는 오히려 최고권력자 1인에게로 권력(영향력)이 집중될 수 있다고. 이번 사태는 그와 같은 경고가 결코 기우(杞憂)가 아니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 안 후보는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안 후보는 자주 '국민의 뜻'을 강조하는데, 국민의 뜻이 옳은 경우가 많지만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국민의 뜻이 백퍼센트 옳다면 전문가들이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정책결정을 여론조사에 의존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또 국민의 뜻이 백퍼센트 옳다면 설득과정, 조정과정, 그리고 정치과정도 필요 없습니다. 모든 결정을 여론조사가 손쉽게 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물주는 세상을 그렇게 단순하게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3. 국민의 뜻이 백퍼센트 옳다면 2007년에 MB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뜻도 옳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 사회과학 교과서들을 보면 '지식인의 무능'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지식인들이 자신의 전문분야에 지나치게 매몰되다 보면, 비전문가들보다 더 황당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런 지식인들의 무능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비전문가들을 전문가들의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전문가들이 무능에 빠질 수 있다 하여, 비전문가가 전문가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즉 집단지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 하여 전문가들이 항상 집단지성보다 더 무능하다고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는 국회의원 수 줄이기 방안을 제시해 논란을 일으켰다. 안 후보가 29일 새벽 경기 성남 태평동 인력시장 인근 한 국수집에서 '철수가 간다 2탄'으로 건설노동자들과 간담회 중 현장의 현안을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
4.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다수 정치학자들은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많은 편이 아니라는 것과,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의견일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 후보가 생뚱맞게 국회의원 대규모 감축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 최소한 그가 측근이라는 박선숙 전 의원이나 김성식 전 의원과 사전에 상의만 했더라도 저런 황당한 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안 후보가 정치학에 대해 전혀 식견이 없는 주변 사람들과 술자리에서나 하는 농담을 정책의제화하려 했다는 것은 정말 아쉬운 대목입니다.
5. 대다수 정치학자들은 비례대표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역구 대표와 비례 대표 수 비율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요?
⇨ 정치학자들은 5대 5가 이상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치·경제·행정·문화 모든 영역에서 수도권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에, 비수도권을 대변할 사람 수가 선진국에 비해서는 많아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지역구 대표와 비례 대표 수 비율은 2대 1, 혹은 3대 2 정도가 적당할 것입니다.
6. 안 후보 주장대로 지역구 국회의원 수를 대폭 줄인다면 시도별로 국회의원 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추정이 가능한가요?
⇨ 그것을 추정해 보는 것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10월 25일 선거구별 평균 인구 수 기준에 관한 위헌여부를 판단하면서 선거구별 인구편차 상하 33.3퍼센트(%, 최대:최소 인구수의 편차가 3:1)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19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도 선거구 인구 상·하한선을 30만 명·10만 명 내외로 설정하고 선거구를 획정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연구자들도 3대 1 기준에 따라 선거구 인구 상·하한선을 상향시키면 전체 지역구 국회의원 감축에 따른 시도별 국회의원 수 변화를 비교적 정확하게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7. 추정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 1차적으로 선거구 인구 상·하한선을 현재의 30만 명·10만 명 내외에서 45만 명·15만명 내외로 상향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전체 지역구 국회의원 수는 현재의 246명에서 60명이 줄어들어 186명이 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감소율은 24.4%입니다. 인구는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토대로 했습니다.
8. 시도별로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 감소율이 30퍼센트가 넘은 지역은 16개 시도 중 6개로, 서울(31.3%), 부산(38.9%), 광주(37.5%), 강원(33.3%), 전북(36.4%), 경북(33.3%)이 이에 포함되었습니다. 반면 대전과 제주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제주 서귀포시는 인구가 13만 명으로 15만 명에 못 미치나, 지역적 특수성이 워낙 강해서 선거구를 존속시켰습니다. 다른 비수도권의 몇몇 지역도 이와 같은 원칙을 적용했습니다.
ⓒ홍헌호 |
9. 서울, 부산, 광주지역의 감소율이 큰 것은 어떤 요인 때문인가요?
⇨ 대도시의 경우 지역구가 2~3개인 자치구들이 많은데, 이들 자치구들의 인구가 45만 명에 미치지 못한 경우 지역구를 1개로 통합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선거구를 획정하고 있습니다.
10. 영호남 지역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 호남지역의 감소율은 33.3%로 전국 평균 24.4%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국적으로 지역구 국회의원이 4명 중 1명이 줄어 들 때, 호남지역에서는 3명 중 1명이 줄어든 겁니다. 반면 영남지역의 감소율은 25.4%로 전국 평균과 유사했습니다.
11. 수도권과 비수도권지역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 수도권의 감소율은 23.2%, 비수도권은 25.4%로 비수도권이 약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2. 안 후보는 지역구 국회의원 수를 100명 정도 줄이자고 했는데, 실현될 경우 시도별로 국회의원 수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 지역구 국회의원 수를 100명 정도 줄이려면 선거구 인구 상·하한선을 현재의 30만 명·10만 명 내외에서 60만 명·20만명 내외로 상향해야 합니다. 그 결과는 전체 지역구 국회의원 수가 현재의 246명에서 93명 줄어들어 153명이 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감소율은 37.8%입니다.
ⓒ홍헌호 |
13. 시도별로 감소율이 큰 지역은 어디인가요?
⇨ 감소율이 40%가 넘은 지역은 16개 시도 중 7개로, 서울(43.8%), 부산(44.4%), 대구(41.7%), 인천(41.7%), 광주(50.0%), 강원(44.4%), 충남(45.5%), 전북(45.5%)이 이에 포함되었습니다.
14. 영호남 지역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 호남지역의 감소율은 43.3%로 전국 평균 37.8%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영남지역의 감소율은 37.3%로 전국 평균과 유사했습니다.
15.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도 지역구 대표와 비례대표 비율을 2대 1 정도로 바꾸겠다고 공약하고 있습니다.
⇨ 야권 단일화를 둘러싸고 문 후보와 안 후보가 경쟁하는 과정에서, 안 후보가 공격적으로 정치개혁을 내놓으니까 문 후보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2대1론을 제시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역구 대표와 비례대표 비율을 2대 1로 바꿀 경우 지역구 의원 수는 60명 정도 줄어들 가능성이 많고, 그럴 경우 영남지역 국회의원이 4명 중 1명이 줄어 들 때, 호남지역에서는 3명 중 1명이 줄어들게 되므로 두 후보 모두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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