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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한 그녀와 된장 바른 그녀, 우리의 욕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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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한 그녀와 된장 바른 그녀, 우리의 욕망은…

[모 피디의 그게 모!] 드라마와 패션잡지를 까지 마라

패션 잡지는 최신 욕망의 집합체다. 지난 계절의 유행이 지루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한 말투와 함께 내 놓는 시크하고 힙한 옷들, 그리고 그 옷이 내포하는 쿨한 라이프 스타일(꼭 이렇게 써야 한다. 비꼬는 게 아니라, 이렇게 써야만 전달되는 '시크'하고 '힙'한 느낌이 생겨버렸다! 비록 '쿨'하다는 말은 못 견디게 지루해졌지만). 그리고 모델들은 마치 천상의 존재들처럼 전시된다. 아, 어떻게 하면 저렇게 깔끔하고 정갈하고 초월적인 모습으로 세상을 거닐 듯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저 옷을 사 입으면 될까? 라는 질문에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야 말게끔 만드는 패션 잡지들.

배우는 그 모델들 중에서도 꽤 뜨거운 자리를 차지한다. 가장 최근에 대중적 호응을 얻은 작품에서 주인공 내지는 주요 조연을 맡은 배우라면 여지 없다. 표정에서 나오는 표현력과 필모그래피에서 오는 다층적 캐릭터는 배우들만의 전유물 아닌가. 그렇게 배우는 늘 최신 욕망을 투사시키는 존재가 된다. 화룡점정, 여기에 짧은 인터뷰가 더해진다. 잘은 모르겠지만, 성실하게, 하지만 내 마음대로,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이런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역시나 시크하고 힙한 인터뷰들. 아, 천상의 존재들이여.

드라마는 그런 천상의 존재를 가장 빨리, 많이 배출시키는 창구 중의 하나다. 영화보다 훨씬 순환도 빠르고 수도 많다. 그런데 이들이 천상의 존재가 되기 위해 드라마에서 하는 일이란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성공적으로 누군가의 며느리 되기, 사위 되기, 아내 되기, 남편 되기, 애인 되기. 보편적인 대중의 호응을 늘 계산하고 기획되는 드라마에서의 세계관은 보통 '시크'하거나 '힙'하지 않다.

업계 용어로, '된장을 바른다'는 말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상처받은 영혼을 가진 젊은이가 따뜻한 애인을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가족과 화해하기 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 울음을 터뜨리고 위로받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을 느끼고, 결혼으로 대표되는 사랑의 완성을 고민하고, 다음 세대의 어린이와 청년들을 위해 희생하고…. 여기에 한국적 가부장제의 정서를 얼마나 싣느냐, 주인공을 얼마나 울려서 연민과 공감을 자아낼 것이냐, 얼만큼 안전하게 화해시키는가, 인물들을 서로 부둥켜 안게 한 후 기존의 세계에 편입시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마나 안심하게 할 것인가 등을 고민하는 것. 이것이 '된장 바르기'다. 그러면 많은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좋아하니까. 그래서 대개의 드라마에서 배우들은 아예 된장을 뒤집어 쓰고 있다.

그런데 패션 잡지에서 배우가 가장 먼저 씻어내야 할 것이 바로 이 된장 냄새다. 지상의 지겨운 인간관계와 성공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살고 싶은 삶을 그저 초연히 사는 모습으로 보여야 한다. 지상의 삶을 표현한 대가로 얻은 천상의 이미지. 그들이 패션모델로 잡지에 전시되는 순간, 잠시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양립이 가능할까. 연속극에서 결혼을 하네 못하네 울고불고 난리 치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간 걸까. 아니, 그 사람이 맞긴 맞는데, 나는 패션잡지에서의 배우와 드라마에서의 배우를 같은 이유로 좋아하는 것인가.

▲패션잡지 <엘르>에 실린 배우 김남주의 화보. 여기에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똑 소리나는' 차윤희, <내조의 여왕>의 억척스러운 천지애의 모습이 없다. 패션잡지에서의 김남주는 관객에게 소유되기 위한 드라마에서의 김남주와 다르다. 이 다른 두 명의 김남주는 모두 우리 안의 욕망을 상징한다. ⓒ뉴시스


배우를 향한 욕망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타인을 향한 욕망과 자신을 향한 욕망이다. 그 사람과 관계를 맺고픈, 즉 '가지고픈' 욕망, 즉 타인을 향한 욕망이 그 하나다. 그리고 그 사람을 동경하는, '되고픈' 욕망, 즉 자신을 향한 욕망이 다른 하나다. 드라마와 패션잡지에서 배우는 그 두 가지 욕망 사이에 있다. 드라마에서 실장님을 하건 재벌 자녀를 하건 최악의 살인마를 하건,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전시해야 하는 배우는 대중의 공감을 먼저 얻어야 한다. 배우가 무슨 옷을 입고 나오건, 캐릭터라는 옷에 앞설 수 없다. 그렇게 배우는 캐릭터의 탈을 쓰고 관객의 공감대 안으로 포섭, 혹은 소유된다.

반면 보통 사람이 일상에선 절대 입지 못할 옷을 입고 무게를 잡고 있는 패션잡지에서의 배우는 동경할 만한 모습이 우선이다. 내가 그렇게 되고 싶지만 될 수는 없는 상태. 되고픈 마음. 이렇듯 배우는 방향이 다른 대중의 두 가지 욕망 앞에서 입맛에 맞춰 전시된다. 대중의 욕망이 혼재되어 있으니, 배우가 천상의 존재가 되기에 앞서 지상의 흙탕물을 몸에 끼얹는 역설도 이해할만 하다. 배우의 인기는 소유에 대한 욕구의 소산이기도, 존재에 대한 욕구의 소산이기도 한 것이다.

드라마와 패션잡지에 등장하는 배우의 양상을 분석함으로써 이런 구분이 드러나는 것은 어쩌면 패션의 본질이기도 하다. 패션에의 욕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어떤 옷을 '소유'함으로써 그 옷을 입어 어떤 특정 '존재'가 되고픈 욕망이 아닌가. 흔히 드라마 보기와 패션잡지 보기는 킬링 타임의 대표 주자들로 널리 폄하되어 왔다. 하지만 사람들이 굳이 '킬링 타임'이라는 굴욕적인 별칭까지 붙여가며 이 둘을 경계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빠져나오기가 힘들어서 그렇다. 그만큼 우리가 무심히 넘기고 살던 욕망을 살살 간지른다.

그리고 양자에 걸쳐있는 배우들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가만히 살펴 보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 마음 속 욕망의 지도를 펼쳐서 관찰해볼 기회를 얻게 된다. 왜 우리는 그렇게들 넋놓고 시간을 보내왔던가. 우리 마음을 어떻게 쓰다듬어 줬어야 했던 걸까. 그러니 드라마 중독자, 패션 잡지 중독자들을 타박하기 전에, 자기 욕망의 지도를 먼저 찬찬히 들여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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