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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학교의 최하위 계급, 온갖 궂은일 도맡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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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학교의 최하위 계급, 온갖 궂은일 도맡지만…"

[비정규직이 본 학교·①] "우리에게 노조는 희망"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학교 안에서 벗어나 교육감 직접고용·호봉제 실시·정규직 법제화 등을 요구하며 노동조합으로 급속히 뭉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조직화를 바탕으로 오는 11월 초 전면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현장의 노동자, 법률 전문가 등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왜 노동조합을 만들 수밖에 없고 파업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지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기고자>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약 15만 명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급식을 책임지는 영양사·조리사·조리원, 도서관의 체계적인 운영을 담당하는 사서, 학교 곳곳에서 교육실무를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교무·행정·과학·전산실무원, 장애학생의 교육을 지원하는 특수교육실무원, 저소득층 및 맞벌이 가정의 학생들을 위한 돌봄교사, 학교폭력예방과 정서교육을 담당하는 전문상담사, 명절도 없이 학교를 지키는 당직기사 등이 모두 비정규직이다. 단 하나도 필요하지 않은 직종이 없지만, 공무원이 아니고 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이른바 '최하위 계급'에 속한다. 이들이 겪는 설움과 차별은 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무리한 업무지시와 차심부름, 과일 깎아 나르기, 00 보조 00 여사님이라는 호칭. 말로는 교육가족이지만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평등하지 않다. 2년 이상 근무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정한 '기간제법'은 오히려 2년 미만의 계약직들을 해고하는 칼날이 되었다. 일방적으로 계약만료를 통보받고,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 인간이 되어버린 이들은 마음 깊이 상처를 입었다. '보편적 복지'라는 이름으로 무상급식이 시행되고, 무상교육, 무상보육까지 그 내용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를 담당하고 있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0년 넘게 일해도 손에 쥐는 것이 100만원 안팎인 얇은 월급봉투에 한숨 쉬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노동자에게는 오히려 보편적 복지의 사각지대만 늘어가고 있다.

조리실무원 A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해요. 오늘은 메뉴가 좀 어려웠는데, 아이들이 좋아해서 뿌듯하지만, 정작 우리는 밥 먹을 시간도 없다니까요. 근데도 받는 월급은 이 정도이니 한숨만 나오죠.

교무실무원 B :교장선생님이 교무실에 와서 캐비넷을 열어보시더니 이게 뭐냐고, 도대체가 왜 교무실무원은 이런 데 정리도 못하고 있냐고, 하면서 실무원 역할이란 게 바로 이거다, 빨리 한 시간 안으로 싹 정리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네 알겠습니다. 대신 시간을 주세요. 여긴 선생님들 자리고 자료가 있는 중요한 곳이라, 수업 끝나면 선생님들과 상의해서 정리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교장선생님이 노발대발하면서 감히 교장에게 항의하고 대드냐고 교감선생이 어떻게 교육시켰길래 이런 식의 행동을 하는 거냐고 교감에게 화를 내면서 교장실로 불러가고…. 앞으로 한번만 더 이런 식의 행동하면 인사위원회 회부하여 안 좋은 일 있을 거니 알아서 잘 하라고요. 전 스트레스 받아서 방학 전에 정신과 치료도 받았었어요.

특수교육실무원 C :교직원 전체 교육을 한다고 부르더니 우리 실무원들은 275일 계약인데 275일 다 채우지도 않고 무슨 놈의 방학을 챙기냐고. 월급 깎아야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275일이라는 근무일수 자체가 주휴나 유급휴일 다 포함하는 거잖아요. 근데 그런 거 다 무시하고 월급 반납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너무 기분이 나빴어요. 자존심 상하고.

영양사 D :아이들한테 맛있는 빵 구워주고 싶어서 방학 때 연수를 가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교장선생님이 허락을 안 해주시겠다는 거예요. 출장비 든다고. 그게 2만 원이었어요. 2만 원이 아까워서 연수를 못 받게 하다니요. 어떤 학교는 네가 교사도 아닌데 무슨 연수냐고, 그렇게 얘기하는 학교도 있어요.

근로기준법 따지면 일 못한다는 이야기가 학교에서 공공연히 오고간다. 8년 동안 초과근무수당을 한 번도 지급하지 않은 학교,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계약해주지 않겠다고 연초부터 협박하는 학교, 심지어 왜 노동조합을 끌어들였냐며 사죄문을 쓰게 하는 학교 등 문제 사례도 다양하다. 공공기관에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그 중에서도 절반가량이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이다. 그/녀들의 현실이 이러하니 전체 노동자들의 삶이 어떠할지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 학교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급식 노동자들. ⓒ연합뉴스

"교육과 노동의 기본은 평등이다. 학생들에게는 원칙을 비정규직에게는 희망을!"

전회련본부(전국회계직연합회 학교비정규직본부) 카페에 조합원들이 직접 만들어 올린 슬로건이다.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은 그/녀들의 문제가 비정상적인 교육구조, 빈곤을 양산하는 사회구조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알리고 있다. 차별과 부당함에 맞서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이제는 그 노동조합을 인정받고 지켜내기 위해 싸움을 하고 있다.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고자 했을 때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전체 조직대상자의 20%가 넘는 3만 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뭘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조합원의 열기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2년간 교육감이 사용자라고, 호봉을 인정하라고, 무기계약을 회피하지 말라고 외치며 도교육청, 교과부, 국회 할 것 없이 찾아가 목이 터져라 외치고 투쟁했다. 앉아만 있어도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아스팔트 위에서도, 탈수하기 직전의 뜨거운 도심에서도 외치고 또 외쳤다.

그 결과 수당 몇 개가 신설되고, 호칭이 개선되고, 교장들이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현장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단체교섭안을 만들고 교과부와 교육감에게 교섭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다. 갈 길이 멀다. 노동조합은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 '선생님'이고 '교육주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한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위한 의지이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약속이다.

9월 17일, 신설된 수당이 처음으로 지급되는 날, 급식실이 유난히 소란스럽다.

"오늘 월급날이잖아요! 명절휴가비 포함해서 120만 원 넘게 들어왔어요!"
"뿌듯해요! 일할 맛 나네."


월급명세서를 보고 또 보는 조합원들,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이다. 다시 청소를 시작하러 조리실 안으로 들어가는 조합원들의 뒷모습이 당당하다. 이렇게 노동조합은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추석 명절 중 교과부는 학교비정규직을 100%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고, 연봉체계를 개선하겠다는 보도 자료를 시급히 발표했다. 국정감사를 앞둔 미봉책이었다. 정부는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그것은 기간제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것을 정부 빼고 다 안다. 진보교육감이 있는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10개의 교육청은 아직까지도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교섭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도 임금 등 노동조건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지난 상반기에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마치고 교과부와 교육청이 호봉제, 정규직을 위한 계획을 내놓지 않으면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20년 가까이 학교 담장 안에 갇혀 있었던 목소리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끝까지 파업은 바라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불편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라는 마음으로 모든 조합원들이 정부의 대책을 주시하고 있다. 이제 공은 넘어갔다. 대선을 앞둔 2012년 격동의 하반기, 너도 나도 비정규직 없는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힘이다. 그 힘을 현장에서부터 키워가고 있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녀들의 함성으로 비정규직 철폐,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이 확대되기를 기대해본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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