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여전히 여성성이 대중문화에서 소비되는 방식이, 심지어 여성에게도 타자화되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뮤지션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기 이전에, 일종의 패셔니스타나 '가치 있는 배경의 하나'로서만 머무른다. 이는 남성 뮤지션이나 밴드가 대체로 (80년대 헤비메탈 밴드나 댄스팝 스타 숭배의 방식이었던) 영웅주의적 서사로서, 카리스마적이고 심지어 신화화돼 팬이나 미디어에 의해 다뤄지곤 하는 상황과 큰 차이를 보인다.
90년대 대중음악의 폭발기에 다분히 남성 중심 서사에 대한 반영웅적인 영웅이던 리즈 페어(Liz Phair) 대신 80년대의 이미지로서 마돈나(Madonna)가 국내에 받아들여지거나, 상대적으로 확실히 '여성적'이었던 엘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이 떠받들어지지 못하고 취향의 하나로서 흘러간 상황은 이를 대표한다.
이제 데뷔 17년이 된 샨 마샬(Charlyn Marie Marshall), 곧 캣 파워(Cat Power)도 마찬가지다. 태생적으로 (이제는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마타도어(Matador)라는 인디레이블에 소속된 뮤지션이란 한계를 인정해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그녀가 국내에서 인지된 경우는 한두 곡의 싱글을 통해 운치 있는 배경음악을 부르는 뮤지션으로서 흐릿하게 각인되거나, 보다 적극적으로는 명품 브랜드 샤넬을 대표하는 셀러브리티나 왕가위의 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의 음악을 부른 뮤지션이자, 그 영화에 잠깐 출연한 배우로 인식된 정도가 전부다.
▲캣 파워 [Sun]. ⓒ강앤뮤직 |
이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스핀>은 여태껏 대체로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써 온 그녀의 신작에 대해 "정치적 앨범"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2012년 미국에서 '네가 원하는 대로 살 권리'(를 말하는 이 앨범의 의미)보다 더 정치적인 게 있느냐"고 반문했다.
일단 사운드적으론,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음반이라 말하기 곤란할 정도로 적극적인 전자음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심지어 <Ruin>(루인)의 비트는 댄서블하고, 첫 비디오클립이 공개된 <Cherokee>(체로키)는 (체로키족의 특수한 매장 풍습과 반대되는) "나를 하늘을 향해 묻어 달라"는 코러스 부분에서 주류 댄스음악이나 힙합에서 나옴직한 박진감 있는 비트마저 사용했다. 실제 캣 파워는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로 신보를 작업하려는 시도를 했고, 레이블이 이에 반대하자 아예 스스로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나아가 대부분의 악기를 스스로 연주하기도 했다.
앨범의 사운드는 대체로 초반 세 곡의 댄서블한 비트를 지나 보다 정적인 중반을 견디고, 후반 네 곡에서 보다 대곡 지향적인 흐름으로 넘어가는데, 이 흐름에 캣 파워 특유의 (장필순을 떠올리게 만드는) 건조한 목소리가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이 덕분에 어떤 곡이나 낯선 느낌과 쓸쓸한 기운을 갖게 만든다.
대개의 포크 송이 그렇듯, 그녀의 신보에 대한 해석은 미국 현지에서도 다양하게 이뤄진다. <스핀>은 기존의 가사와 달리 보다 정치적이고 외부를 향한 가사쓰기가 이뤄졌다고 평했으나 다른 매체나 현지 블로거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앨범의 대표곡이라 할 만한 <Manhattan>(맨하탄)이 대표적이다. 자유의 여신상을 여성에, 맨(man)하탄을 남성에 빗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곡을 두고 <스핀>은 "옛 스타일의 자유에 대한 노스텔지아를 통해 사람들을 꾀는 성공한 남성(곧 아메리칸 드림) 뒤에 숨겨진 (억압받는) 여성에 대한 노래"라고 평했으나, 현지에서는 다른 해석도 많다. 상대적으로 명상적인 중간 지점을 지나는 순간 시작되는 이 곡은 밝지도, 우울하지도 않고 따스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어떤 감성의 중간 지점을 절묘하게 타고 있는 곡이다. 11분에 달하는, 이기 팝(Iggy Pop)이 코러스로 참여한 <Nothing But Time>(너싱 벗 타임)은 십대의 딸을 위해 캣 파워가 쓴 곡으로, 각 매체가 베를린 시절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Heroes](히어로즈)와 비틀스(the Beatles)의 <Hey Jude>(헤이 주드) 등을 거론하게 만드는 곡이다. 보다 희망적이고, 보다 엠비언스가 짙으며, 보다 커다란 소리의 골격을 지녔다.
[Sun]은 전통적인 포크의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면서도, 기묘하게 어떤 '포크적인 것'의 자장 안에 머무르는 앨범이다. 또한 소박한 일상에의 감상에 그치지 않고 (한 때 알콜 중독에 빠졌던) 역경을 지닌 여성이 세상을 마주보고 써내려간 힘 있는 서사시다. 무엇보다, 캣 파워 특유의 목소리가 지닌 힘이 워낙 빼어난 덕분에, 언제 어디서라도 정말 듣기 좋은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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