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경제민주화'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경제민주화'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

[이태경의 고공비행] 토지 문제 해결 없는 경제민주화는 반쪽짜리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키워드가 된 것 같다. 심지어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조차 구호에 그친다는 비판을 듣고 있긴 하지만 '경제민주화'를 표방하고 있다. 근래 전개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논의는 크게 재벌개혁, 금융의 성격과 규제 ,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찬반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재벌과 금융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이는 당연하다 할 것이다. 다만 '경제민주화' 논의에서 토지문제가 배제되고 있는 점은 매우 아쉽다. '경제민주화'가 지향하는 것은 공정하고 정의롭고 효율적이며 지속가능한 국민경제의 재구성일텐데 토지문제가 온존하는 한 그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만악의 근원, 토지문제

토지문제, 더 정확히 말해 토지가치의 사유화가 낳는 문제들은 대략 아래와 같다.

첫째, 빈부격차 심화의 주범이다. 남상호(2007)에 따르면 1999년에는 상위 1%계층의 자산 점유율이 9.7%였는데 2006년에는 16.7%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하였고, 범위를 좀 더 넓혀 상위 10%계층의 자산 점유율이 1999년에는 46.2%였는데 2006년에는 54.3%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구 순자산의 불평등도를 구성요소별로 분해해 본 결과 부동산 자산의 불평등 기여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2006년의 경우 순자산중 부동산이 약 93%, 금융자산이 약 12%의 불평등도를 높인"것으로 드러났다. 즉 부동산, 더 정확히 말해서 토지소유의 양극화가 전체 양극화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둘째, 토지문제는 정부의 재정할당 및 운용을 왜곡시킨다. 아래 〈표 1〉은 주요국가의 기능별 재정지출 현황 가운데 사회개발비와 경제개발비를 비교한 것인데 주요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대한민국이 사회개발비에 비해서 경제개발비가 유일하게 높게 나타난다. 대표적 토건국가인 일본 정도만 경제개발비가 사회개발비의 75%수준에 달할 뿐이고 다른 주요 국가들은 정부 재정 지출 가운데 사회개발비의 비중이 경제개발비의 비중을 압도한다.
<표 1> 주요국가의 기능별 재정 지출 비교


자료 : 기획예산처(2006). 「예산개요참고자료」; (日) 自治省(2004),「地方財政白書」; IMF(2004), Government Finance Statistics Year book, 이재원(2007)재인용, 임채원(2007) 재재인용

통상 후발국가나 후후발국가 단계일 때는 아무래도 국가가 경제개발을 주도하기 마련이므로 통상 경제개발비의 비중이 사회개발비 보다는 높은 경향을 보이지만, 선진국 단계에 진입하면 국가가 경제개발과 관련된 역할은 민간에 넘기고 사회개발에 주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독 대한민국만 이런 흐름과는 동떨어진 경향을 보이는 주된 이유는 '토건국가화(土建國家化)' 때문이다. '토건국가화'의 배후에는 토지불로소득의 사유화가 도사리고 있다.

실증적 사례를 살펴보자. 2007년도 정부 총지출 규모는 예산과 기금을 합쳐서 237조 1000억원이다. 여기서 직접적 건설 부문 예산은 18조 2000억원(7.7%)이고, 공공부문 건설투자는 무려 52조 3000억원(22.1%)에 달한다. 정부재정에서 토건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30%에 이르는 셈이다. 이렇게 막대한 예산을 써서 전국 곳곳에서 불필요한 도로 · 공항 · 댐 · 신도시 건설, 간척사업 등이 이루어진다.(홍성태 2007) 정부 재정이 토건 부문에 과도하게 투입됨에 따라 정작 재정투입이 절실히 요구되는 복지 · 교육 등의 사회개발비 지출은 어렵게 된다.

셋째, 토지문제-토지가치의 사유화-는 산업구조의 선진화를 막는 장애물 기능을 한다. 토지불로소득의 사유화는 산업구조를 건설업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토건형 구조로 만드는데, 토건형 산업구조는 세계적 흐름인 지식기반 · 기술기반경제구조에 역행하는 후진형 산업구조다. 아래의 〈표 2〉를 보면 선진국 가운데 건설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한민국 보다 높은 나라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표 2〉OECD 국가별 GDP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1980~2000) (단위 : %)



GDP 대비 투자 비중을 봐도 건설업의 비중은 지나치게 높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국내 총생산에서 건설투자 비중이 23.4%이지만, 선진 8개국의 비중은 평균 13%수준에 머물며, 특히 주택 투자와 토목 투자는 우리나라에 비해 각각 3분의 2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적도기니, 투르크메니스탄, 부탄, 레소토, 에리트레아…이름조차 생소한 이들 나라는 1996~2000년 사이 건설투자 비중이 높은 20개국 중 상위 1~5위 국가들이다. 한국은 이들 나라 틈에 끼어 세계에서 건설투자 비중이 가장 높은 14위다(손낙구 2008).

재벌을 필두로 한 기업들도 설비 투자나 기술개발, 조직 및 경영기법 혁신 보다는 토지를 사들여 이윤을 추구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토지는 없어지지 않고 투자나 기술개발 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손낙구의 연구는 이를 잘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토지 가격이 국민소득 대비 세계최고 수준이고 중단 없이 상승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재벌 및 대기업들은 기술개발 및 설비투자는 등한히 하고 토지 투기에 열중했다. 잘 알려졌다시피 재벌들은 3차 부동산 투기 파동이 한창이던 1989년 당시 장부 가격으로 자기자본 18조원의 절반이 넘는 10조원어치의 부동산을 보유하며 생산 활동보다 땅 투기에 열을 올려 국민적인 공분을 산 적이 있다. 토지공개념위원회의 연구에 따르면 1974년에 똑같은 금액을 토지와 자본에 투자해 1987년에 이르렀을 때 토지 투자이득이 자본 투자이득 보다 6배 이상 컸다고 한다.(손낙구 2008)

이처럼 토지 투기로 톡톡히 재미를 본 재벌들의 토지 사재기는 토지공개념 3법의 도입과 외환위기로 말미암아 주춤하는 듯 했지만 외환위기가 진정되고 토지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하자 이내 재개된다. 각 기업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말 현재 시가총액 상위 30개 상장사가 보유한 부동산은 72조 693억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6조 4,287억원이 증가했다.(손낙구 2008)

한국은행이 2001년 말 현재 한국과 미국, 일본 기업의 부동산 보유 실태를 조사한 데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 보유 비중은 총자산 대비 12.5%로 미국(2.1%), 일본(9.9%) 등에 비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1980년(4.9%)에 비해 2.6배나 커졌다. 건물의 비중도 12.8%로 1980년(8.7%)에 비해 크게 증가했으나, 설비투자와 직결되는 기계장치의 비중은 1980년(17.9%)보다 낮은 15%내외를 유지하고 있어 생산과 거리가 먼 부동산 자산을 늘리는데 힘쓰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은행 2003b, 손낙구 2008)

부동산 자산을 늘리는데 힘쓰다 보니 총자산 중 유형자산의 비중이 2001년 말 현재 45.2%로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24.9%), 일본(30.7%) 등 주요 선진국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기업의 총자산 회전율은 미국, 일본과 비슷한 반면 설비투자의 효율성을 평가할 수 있는 유형자산회전율(매출액/유형자산)은 2001년 중 2.18회로 미국(3.67회), 일본(3.25회) 등의 약 3분의 2수준에 불과했다. 이는 우리나라 제조업체가 동일 규모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미국 · 일본 기업에 비해 각각 1.7배와 1.5배의 유형자산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다.(손낙구 2008)

이와 같이 토건형 산업구조는 대한민국 산업구조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했고 선진형 지식기반경제로 산업구조가 도약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한 토지가치 사유화에 기인한 토건형 산업구조는 토지를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의 정상적인 퇴출을 억지하고, 시장에 신규로 진입하려는 기업들의 진출을 가로막는 악영향을 경제에 미친다.

넷째, 토지가치의 사유화는 부정부패를 양산한다. 대한민국의 2008년 부패지수는 40위로 상당히 높은 편인데 부패의 절반 이상은 토건업이 차지하고 있고, 부패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공무원의 60% 이상이 건설, 토건 관련 공무원이다. 각종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공무원에 의해 토지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에 그들은 집중 로비의 대상이 되고, 이를 둘러싸고 부패가 끊임없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섯째, 토지가치의 사유화는 주기적인 불황의 주된 원인이다. 토지가치의 사유화는 토지 가격의 폭등 및 그로 인한 거품생성과 붕괴의 과정을 거쳐 경제위기로 귀결된다. 현재진행형인 미국발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은 '토지 투기와 그로 인한 부동산 가격 앙등'이다.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한 부시와 그린스펀 등에 의해 부동산 가격은 한 없이 상승했고, 이를 기반으로 주택저당증권(MBS), 주택담보부증권(CDO), 신용디폴트스왑(CDS), 복합 CDO 등의 파생금융상품이 만들어졌는데,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자 금융시스템 전체 더 나아가 경제전체가 파멸적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유렵발 재정위기도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토지가치의 사유화가 도사리고 있다. 즉 과잉유동성이 토지불로소득을 노리고 부동산으로 흘러가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고 거품이 붕괴하자 은행 등을 비롯한 금융권 전체가 부실화했으며, 이를 막고자 재정이 투입되면서 유럽 각국의 재정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여섯째, 토지문제는 노동과 자본 간의 갈등을 첨예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토지불로소득의 발생과 이의 사유화가 토지가격의 상승을 초래하고 이는 주거비-집값과 전·월세가격-의 상승을 견인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당연히 사용자들에게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고 사용자들이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노동쟁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서민들의 간절한 요구는 토지문제의 해결

위에서 살핀 것처럼 토지문제-토지가치의 사유화-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며, 정부의 재정할당 및 운용을 왜곡시키고, 기업의 투자를 저해해 고용이 창출되는 것을 방해하며, 부정부패를 양산하고, 주기적인 불황의 원인이 되며, 경기진폭을 크게 만들고, 노사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등 만악의 근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토지문제는 경제 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부면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토지문제를 해결 하지 않고는 경제민주화가 추구하는 공정하고 정의롭고 효율적이며 지속가능한 국민경제의 재구성이 매우 어렵다.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관찰하면 토지문제의 해결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알 수 있다. 서민들은 높은 주거비에 신음하고 (심지어 결혼을 방해하는 결정적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신혼집 마련의 어려움이다), 800만명에 이르는 자영업자들은 터무니 없이 높은 임대료 때문에 나락으로 몰리고 있으며, 수많은 실업자들이 창업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고, 대다수 시민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복지를 토건에 빼앗기고 있다. 또한 토지가치사유화는 붐 앤 버스트(Boom And Burst)를 불러와 서민들에게 대규모 실업과 소득 감소라는 고통을 안기며, 노동자와 자본가를 원수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이처럼 중대하기 그지 없는 토지문제가 경제민주화 논의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정치권과 학계는 토지문제를 경제민주화의 주요한 의제 가운데 하나로 삼아야 한다. 토지문제를 소홀히 취급하는 것은 한국사회 및 서민들이 직면한 고통에 대한 이해 부족의 결과이거나 의도적인 외면에 다름아니다.
▲ ⓒ프레시안(손문상)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