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출범해 새로 교섭권을 확보한 온건 성향의 한진중공업 제2노조(기업별 노조)가 사측과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징계위원회는 노사동수로 구성한다'는 조항을 삭제했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지난해 파업을 벌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금속노조 죽이기'라며 반발했다.
한진중공업노조는 26일 2009-2012년 임단협 합의안을 통해 '징계위원회 노사동수' 조항을 삭제하고 '노조 임원 3명이 참고인으로 참석하여 변론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등 회사방침에 비협조적인 노동자에 대한 징계권을 회사가 넘겨받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지난해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던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한진중공업은 금속노조와의 협상을 4년 동안 미루더니 기업별 노조가 들어서자 한 달 만에 단체협약을 전면 후퇴시키고 어용합의를 기획했다"고 반발했다.
유장현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교육선전국장은 "지금까지는 노사 반반이어서 징계자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해고자나 휴직자 복직이나 노동조건 악화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대량 징계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명백한 노조 죽이기"라고 말했다.
"1000만원 대출 미끼로 노조 탄압하고, 생활지원금으로 포장"
한진중공업노조는 또한 '무파업선언'에 동참하고 사측과 생활안정지원금 1200만 원 지급 및 기본급 15% 인상에 합의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지회는 "회사가 노사합의를 통해 생활안정지원금 1200만 원을 지원했다고 거짓 홍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생활지원금이 이미 올해 상반기 지급한 대출금 1000만 원에 대한 채무를 없애주는 수준에 불과하고, 실제로 지급하는 금액은 200만 원이라는 것이다.
지회는 더 나아가 "회사가 제2노조를 앞세워 금속노조의 교섭권을 빼앗기 위해 생활지원금 1000만 원을 미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출범한 한진중공업노조가 "회사가 생활지원금 1000만 원을 준다. 금속노조를 탈퇴하라"는 문자를 발송하며 수년간 생활고에 시달리던 노동자를 회유했다는 것이다.
제2노조인 한진중공업노조는 설립 1주일 만에 과반수 조합원을 확보하면서 현재 전체 조합원 701명 중 571명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1000만 원을 직원에게 대출형태로 지급했는데 이번에는 대출형태가 아니고 지급 형태로 바꿔서 20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할 예정"이라고 인정했다. 대출을 지원금으로 속였다는 지적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지급 당시 '생활안정지원금 대출'임을 명확히 했다"고 해명했다.
"경영정상화, 휴직자·해고자 복귀 방안 구체화해야"
마지막으로 한진중공업노조는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9개월째 현장에 돌아가지 못한 휴직자 500여 명에 대해서는 별다른 복귀 시점을 마련하지 않고, "조기 현업복귀에 노력하며, 신규 수주를 위해 노력한다"고만 합의했다.
이에 지회는 "가장 중요한 회사정상화와 휴직자 복귀 문제에 대해 '노력한다'는 추상적인 언어만으로 도배하고 있다"며 "9개월째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휴직상태에 있는 500여 명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감에 휩싸여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9년부터 한진중공업은 △징계위원회 노사동수 조항 삭제 △휴일 축소 △산재보상 및 의료비 지원 축소 △연장근무 40시간 수당 삭제 등 노조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사항을 통해 지회와의 교섭을 4년째 지연하며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이후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정리해고자 94명의 복직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리해고자와 휴직자는 9개월이 지난 아직도 현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지회에 158억 원 이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한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6일 지난해 청문회 약속 미이행 등과 관련해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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