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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를 소환한 연애편지, <응답하라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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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를 소환한 연애편지, <응답하라 1997>

[모 피디의 그게 모!] <응답하라 1997>을 설명하는 다섯 가지 키워드

<응답하라 1997>이 케이블 방송의 한계를 깨고 마지막회 시청률 6.22% 기록을 세우며 18일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는 30대가 '바로 어제처럼' 기억하던 1990년대를 복고로 소환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드라마는, 기존 공중파 드라마에서 기대하기 힘든 과감한 시도로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이 드라마에 열광하던 모 피디와 모 작가가 성공 비결 다섯 가지를 키워드로 뽑아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편집자>

모 피디:
일단 박수부터 보내고 시작합시다. <응답하라 1997. 이하 응칠>(이우정 극본, 신원호 연출, TVN)은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성공한 좋은 작품입니다. 짝짝짝!

모 작가: 이거 왠지 지금부터 흠잡기 위해 미리 포석을 까는 기분인데요?(웃음)

Key word 1: 공감

모 피디: 무슨 말씀을. 전 정말 옛 추억 새록새록 떠올리며 푹 즐기면서 봤는 걸요. 고교 시절의 춤추고 놀던 때부터 마지막 회의 알콩달콩 연애 시절까지, 정말 밟히지 않는 마음 속 추억이 없더군요. 공감이 많이 갔어요.

모 작가: 그게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인 것 같아요. 공감. 많이들 '맞아맞아'를 외치며 빠져들었으니까요. 90년대 후반에 대한 깨알같은 고증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하지만 놀라운 건, 이 드라마가 타깃이 되는 마케팅 대상을 넘어서는 공감대를 끌어냈다는 점이에요. 주인공이 80년생 설정이니까 넓게 잡아 75년생에서 85년생을 공감 세대, '응칠 세대'로 잡아볼 수 있을 텐데, 이 드라마는 그 세대의 위아래를 아우르는 인기를 끌었잖아요.

Key word 2: 음악 드라마

모 피디: 그건 이 드라마의 내용과 형식이 기존과 달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드라마는 시대극의 일종입니다. 그 시대가 단지 그리 멀지 않은 90년대일 뿐이죠. 그런데 다른 시대극이 과거에 대한 향수에 주요 감상포인트를 맞추고 있는 대신, <응칠>은 음악 드라마라는 장르를 새롭게 내놓았어요. 내용은 복고풍으로, 형식은 새롭게. 사실 내용도 TV에선 처음 다룬 90년대에 대한 복고이니 그 역시 새로웠죠. 향수에만 기대가는 전략을 썼다면 이렇게 폭발적일 수 없었을 겁니다.

모 작가: 음악 드라마라는 평은 너무 포괄적이네요. <응칠>이 뮤지컬 드라마의 계보를 잇지는 않잖아요. <시카고>나 <물랑루즈>같은 뮤지컬 영화, 혹은 <Glee>같은 뮤지컬 드라마와는 다르니까요. 오히려 강형철 감독의 <써니>가 비슷하지 않았나요? 주요 감정적 포인트에 그 시절 유행했던 팝송을 꽂아 넣는 방식이요.

모 피디: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써니>보다는 훨씬 적극적이에요. 뮤지컬 <맘마미아>를 생각해보죠. <맘마미아>는 ABBA의 노래들을 스토리로 이어붙여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입니다. 아바의 명곡들이 이야기에 따라 차례로 불리는데, 가사의 내용과 이야기의 맥락이 들어맞으면서 단순히 노래만으로 느낄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뛰어넘었어요. <응칠> 역시 90년대 가요들을 위한 주크박스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연결지점 없이 기억 속에 잠재되어 있던 노래들을 가사의 의미에 맞게 드라마 맥락에 바로바로 끼워넣는 거지요.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이 첫 키스 장면에,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가 주인공들이 헤어졌다 재회한 후에, 서지원의 <I Miss You>가 사별한 연인을 닮아 마음이 설레는 장면에서 나오는 식이죠. '이야기'라는 맥락은 노래가 주는 자장을 증폭시킵니다.

모 작가: 여타의 다른 드라마 역시 즉각적으로 음악을 사용하는 건 비슷하지 않나요? 포인트마다 주인공의 감정에 맞게 격렬하게, 혹은 슬프게 음악을 사용하잖아요. 가사도 그에 맞춰서 쓰기도 하고요.

모 피디: 그건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기 때문에 시청자의 기억 속에 저장된 감정까지 자극할 수는 없죠. 하지만 <응칠> 은 달라요. 그 노래들이 유행하던 시절 시청자가 가졌던 정서까지 순식간에 환기해 냅니다. 이 노래들을 모르는 세대라 할지라도 게임의 법칙 정도는 느끼죠. 과거의 유행가들을 바탕으로 이야기에 맞추는 '선곡 놀이', 혹은 곡에 맞추어 이야기를 배열하는 '이야기 놀이' 게임이라는 것을요. <맘마미아>가 ABBA 노래들의 가사가 이야기와 어떻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나를 보는 게 하나의 재미잖아요? 이런 창작 규칙이 깔려있으면 심지어 원곡을 몰랐던 사람에게도 '게임의 흥'이 전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라디오 음악 방송을 떠올려볼까요? 이미 잘 아는 노래라 할 지라도, DJ가 읽어주는 사연과 선곡의 맥락 아래, 예측하지 않은 시점에 방송된다면 그 감동 혹은 재미는 남다릅니다. 우리가 MP3 플레이어에 보관된 음악만 듣지 않고 굳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 이유는, 그 프로그램이 환기하는 흐름과 정서가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죠. 어떤 노래들이 어떤 시점에 어떻게 배열되어 나올까 하는 기대. 다른 시기 다른 동기에서 창작된 노래들이 하나의 맥락 안에서 융화되는 즐거움. 그런 기대감과 재미를 <응칠>이 제대로 긁어준 것이죠.

모 작가: 그런 의미에서 '음악 드라마'라는 것이군요. 하긴 지상파에선 이런 방식의 드라마가 없었죠. 과거 <테마게임>이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생극장' 등에서 약간 비슷한 느낌이 있었나 싶기도 해요. 아, 정말 이 프로그램들도 참 90년대적이네요.

모 피디: 말씀 잘하셨어요. '드라마' 장르라고 정색하고 생각해 보면 처음이지만 사실 이야기를 '놀이'로 접근하는 방식은 예능 프로그램이 늘 쓰고 있었어요. 이미 있는 노래들을 절묘하게 선곡함으로써 감정을 환기하는 방식도 그렇고요. 인물과 갈등에 깊게 몰입해 보기를 요구하는 것이 드라마의 전략이라면, <응칠>은 예능의 전략이 기본이에요. 놀이를 즐기는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 90년대 음악 드라마라는 예능적 놀이터에 드라마적 몰입과 긴장을 양념해줬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이 놀이는 기대 이상의 사랑과 공감을 얻으면서 미처 예상치 못한 축제가 되어버린 거죠.
▲<응답하라 1997>은 '음악'을 통해 90년대를 경험한 이가 이 드라마를 자신의 것으로 추억하게 했다. ⓒ뉴시스

Key word 3: 예능적 접근법

모 작가: 신원호 감독은 KBS <남자의 자격>을 연출한 분이고 이우정 작가는 <1박 2일>의 구성작가셨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모 피디: 드라마 피디와 작가들을 절망하게 하는 예능의 역습이죠. (웃음) 저는 개인적으로 뚜껑을 열기 전까지 이 작품이 시트콤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막연하게 세트 녹화를 기본으로 하는 지상파 시트콤의 일종이겠거니 했는데, 이런 장르의 드라마가 나올지 몰랐어요.

모 작가: 회당 에피소드로 끌어간다는 점에서 시트콤은 맞지요. 대본 구성에서 작법이 상당히 다르다는 걸 느껴요. 일단 내레이션이 너무 많습니다. 드라마 감독님들이라면 집어던지셨을걸요? (웃음) 그런데 이게 또 이 포맷에는 튀지 않고 잘 묻어나요. 이야기의 전체 얼개도 그래요. 드라마라면 결말을 향해 치밀하게 기승전결과 복선이 조직되어 나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응칠>은 여기엔 별로 관심이 없어요. 복선이나 기승전결은 있되 그 모두 이야기 전체를 조직하기보다는 회별로 묘사하고자 하는 정서를 살리는 데에 쓰이고 있어요. 접근 방향이 완전히 달라요.

모 피디: 연출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배우를 두 부류로 나누어 봅시다. 은지원은 '조커'처럼 쓰인 배역이라 빼고 얘기해보죠. 성동일(시원 부), 이일화(시원 모), 송종호(윤태웅), 이시언(방성제), 신소율(모유정) 등은 정극 연기자들입니다. 반면 서인국(윤윤제), 정은지(성시원), 호야(준희) 등은 연기 경험이 전무하거나 거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극의 핵심 갈등과 공감, 정서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세 명에게 집중되어 있어요. 드라마라면 주인공에 연기자 우선, 분량이 적을수록 카메오 성 출연을 고민할 텐데요.

이게 가능했던 것은 이 드라마에는 '인물'보다 '관계'가 먼저 찍혔기 때문입니다. 너무 가까워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은 소꿉친구 윤제와 시원, 한 명은 우정이지만 한 명은 사랑인 윤제와 준희, 서로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 시원과 준희. 이들은 능숙한 연기자로서 각자의 배역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신으로서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에 의해 표현이 됩니다. 스스로 모든 걸 표현할 필요가 없고 상대방에 의해 성격이 규정될 수 있도록 연출되고 있는 거죠.

여기에 예능적 연출방식의 장점이 드러납니다. 드라마는 대본과 캐릭터에 숙련된 연기자가 자신을 맞춰나가는 방향입니다. 반면 버라이어티 같은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일단 전체 미션과 판이 주어지고, 그 안에서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캐릭터가 점차 수립되어 나갑니다. 드라마가 연역적이라면 예능은 귀납적인 것이지요. 서인국, 정은지, 호야 등은 그냥 자기 자신으로서 서로 대화하는 것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별로 대단할 것 없는 키스신이 깜짝 놀랄 정도로 설레는 것은 시청자가 어느 정도는 허구가 아닌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 키스신이 나오는 것으로 느끼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죠.

모 작가: 깜짝 놀랄 정도로 설레셨군요. 실례지만 정은지 양과는 몇 살 차….

모 피디: (무시) 하지만 이 셋은 잘 뜯어보면 서로 대화하는 씬 이외의 장면에서는 연기적으로 어색한 부분이 종종 눈에 띄어요. 이때 정극 배우들이 힘을 발휘합니다. 이들의 어색함을 경험있는 연기자들이 감싸줘서 '지금 이곳이 허구의 세계'라는 게 티나지 않도록 받쳐주는 것이죠. 예능적 접근법을 드라마에서 잘 살릴 수 있는 조합이에요. 극의 갈등을 안정적으로 받치고 있는 태웅, 화려한 개인기로 개그를 치는 시원 부모와 방성제, 친구로서 그때 그때 상황을 잘 받아주는 모유정 등은 모두 정극 연기자들입니다. 그들이 있음으로써 첫사랑을 이루거나(윤제와 시원) 이루지 못하거나(준희)에 대한 핵심 정서를 살릴 수 있는 것이죠.

모 작가: 저희가 이 접근법을 열심히 익혀서, <응칠>처럼 기존 지상파 문법과는 다른 대본을 냈다고 쳐봅시다. 그럼 과연 지상파에서 편성될 수 있을까요?

Key word 4: 지상파와 케이블

모 피디: 어려운 질문입니다. 되물어 보겠습니다. 이 작품이 미니시리즈로 월화 혹은 수목 저녁 10시에 편성되었다고 합시다. 동시간대 1위를 할 수 있을까요?

모 작가: 음…. 확신하기 힘드네요. 아무래도 지상파의 주 시청층은 40대에서 60대가 큰 비중인데, <응칠>은 어찌됐든 30대 후반 이하로 주 시청층을 잡아야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1위는 무리일 수 있겠죠.

모 피디: 모든 것은 결과론이긴 합니다만, 시청률이 8-9% 정도 나왔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시청률도 현재 <응칠>이 케이블에서 올린 시청률보다는 훨씬 높은 수치지요. 그렇다면 기사는 반대로 나갔을 겁니다. '괴작', '마니아 드라마', '한 자릿수 시청률'…. 그리고 지금 저는 아마 성공의 원인이 아닌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고 있는 대담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현재 케이블에서 새로움은 대중에 의해 곧바로 받아들여지지만, 지상파에서는 현재의 편성시간대마다 기대되는 관습적인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갑자기 너무 크게 배반하면 시청자들의 거부감이 앞설 수 있지요.

모 작가: 그렇다면 결론이 너무 위험한 것 아닌가요? 케이블은 새로운 드라마의 토양이다, 지상파는 늘 해왔던 관습적인 드라마만 하다가 늙어갈 것이다?

모 피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 작품의 성공이 그 시스템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공성하는 케이블의 입장에서는 공격적으로 좋은 결과가 있던 연출과 작가를 데려가서 그들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라고 해볼 수 있지요. 하지만 이게 늘,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지요. 결국은 시스템을 정비해서 안정적인 생산 체계를 수립해야 하니까요. 지상파는 수성하는 입장이라 변화에 아무래도 더 소극적입니다. 이런 소극성을 자극할 수 있는 창구를 뚫어야겠지요.

모 작가: 이 역시 90년대 이야기지만, 과거엔 청춘 주간극이 큰 유행이었잖아요? <우리들의 천국>이나, <내일은 사랑>이나.

모 피디: 예, <응칠> 역시 지상파에서 편성된다면 과거의 청춘 주간극 포맷이 가장 적절할 겁니다. 다만 시간대가 달라지겠죠.

모 작가: 현재 지상파 방송 편성에서 그런 새로운 장르가 나올 만한 창구가 있을까요?

모 피디: 단막극, 혹은 주간극, 연작 등이 있을 수 있겠죠. 지난 주 KBS <드라마스페셜>에서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드라마가 방송되더군요. 매우 훌륭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관습을 깨면서 가지 않으면 결국은 질식할 수밖에 없지요. 케이블과 지상파가 장군 멍군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영향 아래 새로운 작품들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응답하라 1997>은 무엇에 대한 응답이었을까? ⓒ뉴시스

Key word 5: 응답

모 작가: <응칠>의 제작진은 아다치 미츠루의 팬인 것 같아요. <터치>, <H2> 등의 오마쥬라고 느껴질만큼의 관계나 장면이 많아요. 소꿉친구 사이가 연인으로 발전할까 말까를 고민한다거나, 절친한 라이벌 혹은 형제가 한 여자를 좋아한다거나, 친족관계의 주요 조연의 죽음이 트라우마를 남긴다거나…. 더욱이 델리 스파이스의 <고백>은 <H2>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노래잖아요. 드라마는 아이돌 빠순이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드라마의 이야기 자체는 아다치 미츠루에게 보내는 후배 이야기꾼의 연애편지 같기도 해요.

모 피디: 우리의 90년대를 소환해서 자신의 우상들에게,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연애편지를 보낸 것일까요? 사실 저는 <응칠>의 이야기가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좀 갸우뚱했습니다. 왜 굳이 90년대를 소환해야 했을까. 이들에게 90년대는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마지막회까지 다 본 지금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놀이터이자 축제였구나. 연애편지를 보낸 것일 뿐이구나. 논리적, 극적으로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의미를 찾아 헤매는 건 드라마 피디의 고질병이지요. 이 작품은 굳이 90년대를 소환해야하는 필연적 이유를 갖고 있진 않아요. 다만 가장 축제를 벌이고 싶은 곳에 판을 벌인 것일 뿐이지요. 그리고 그 단순 담백한 태도가 시청자에겐 그만큼의 매력이었을 테고요.

모 작가: 좋은 놀이였고 즐거운 축제였어요.

모 피디: 시대극으로서 90년대가 응답해야할 무언가는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진지한 응답은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다른 이야기꾼이 들려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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