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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 칸이 위대한 지도자가 된 비결은 바로…

[프레시안 books] 잭 웨더포드의 <칭기즈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

"딱 '팩션'을 읽는 느낌인데…."

책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표지를 들췄다면, 이렇게 생각했을 게다.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섞어 지은 소설, '팩션' 말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이 책이 워낙 재미있기 때문이다. 시시한 소설보다는 재미가 낫다. 800년 전, 유럽과 아시아를 제패했던 몽골 제국의 역사가 꿈틀대는 현장에 서 있는 기분이다. 칭기즈 칸과 그 후손의 삶이 눈앞에 그려진다.

'팩션'을 떠올린 다른 이유는, 이른바 '정통 역사학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흔히 접하는 역사책에선 잘 다뤄지지 않았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정통 역사학자'들의 평가가 궁금해지는 것은 그래서다.

이 책, <칭기즈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펴냄)의 첫 문장부터 그렇다. 흥미진진한 소설의 도입부를 떠올리게 한다.

"13세기 후반의 어느 날,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어떤 검열자가 <몽골 비사> 중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부분을 무지막지하게 삭제해버렸다."

▲ <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잭 웨더포드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펴냄). ⓒ책과함께
삭제된 부분에 남아 있던 단 하나의 문장. "우리의 여자 후손들을 칭송하기로 하자." 저자 잭 웨더포드는 여기서 출발한다. 그리고 풍부한 자료에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해서 삭제된 부분을 복원해 낸다. '정통 역사학자'가 아닌 인류학자로서의 장점이 여기서 발휘된다.

잘려나간 조각이 복원된 역사에선 몽골 제국의 번영을 이끈 또 다른 주인공이 등장한다. 바로 칭기즈 칸 주변의 여성들이다. 칭기즈 칸은 비범한 지도자였지만, 그의 아들들은 평범했다. 음주에만 비범했을 뿐이다. 그러나 몽골 제국은 칭기즈 칸이 죽은 뒤에도 오랫동안 번영을 유지했다. 비결은 딸과 며느리 등 여성을 중용한 칭기즈 칸의 용인술이다. 칭기즈 칸의 아들들과 달리, 딸들은 리더십이 있었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녔으며 진취적이었다.

딸과 며느리들은 몽골 제국 경영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인구가 100만에 불과하던 몽골족은 남의 땅을 점령하는데 그쳤을 게다. 막강한 기마군단의 힘으로 점령한 땅을 제국으로 키운 것은 상당 부분 딸과 며느리들의 공로였다.

예컨대 칭기즈 칸의 첫째 딸 알라카이 베키는 고비 사막 남쪽 옹구드 지역을 지배했다. 실크로드의 전략적 요충지인데, 지도자가 이런 지정학적 이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저 별 쓸모없는 땅일 뿐이다. 하지만 알라카이 베키는 비범했다. 이곳은 고비 사막을 지나는 몽골 군대에 식량과 말을 공급하는 병참 기지 역할을 했고, 금 왕조의 공격을 막는 방패 구실을 했다. 알라카이 베키가 이곳의 전략적 가치를 꿰뚫어 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덟 명으로 추정되는 칭기즈 칸의 딸들은 이름과 생몰 연도조차 불분명하다. 무능하지만 옹졸했던 오빠, 남동생, 그리고 올케들이 역사에서 그녀들의 이름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칭기즈 칸이 사망한 뒤 집권한 우구데이 칸은 자신의 병사들을 동원해 오이라트 지역 소녀 4000명을 집단 성폭행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오이라트 지역을 지배하던 누이 치체겐이 사망하자 그 땅을 빼앗기 위한 선전포고였다. 이후 몽골 전역에서 피바람이 불었다. 칭기즈 칸의 딸들의 이름은 이렇게 역사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아들들이 다스리는 몽골 제국은 오랜 혼란에 빠졌다.

여기서 궁금증. 핏줄의 우연이었건 걸까. 왜 하필 칭기즈 칸의 자질 가운데 비범한 면모는 딸에게만 유전됐을까. 그럴 리는 없다. 아들들이 뛰어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로 나뉘고, 딸들 역시 그렇게 나뉘는 게 정상이다. 딸은 대부분 뛰어나고 아들은 모두 평범하다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게 옳다.

이런 궁금증에 대해 저자가 딱 부러지는 설명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궁금증이 자연스레 풀린다. 칭기즈 칸은 여성의 가능성을 믿었다. 거친 환경에서 자란 야생의 인간이었던 그는 애초부터 핏줄이나 성별 따위를 하찮게 여겼다. 그는 납치된 여성의 아들이었고, 그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은 부인이 납치돼 있는 동안 태어났다. 칭기즈 칸의 아들이 아니라는 구설에 올랐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자는 칭기즈 칸의 여성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다양한 일화를 소개한다. 칭기즈 칸의 모친인 후엘룬이 암살 위기에 처했을 때, 구출 과정에서 공을 세운 것은 여성이었다. 이후, 논공행상 과정에서 남성 경비병들이 자신의 공을 주장했다. 그러나 칭기즈 칸은 여성의 손을 들어줬다. 칭기즈 칸은 젊은 시절 초원에서의 극한 체험을 통해 여성, 그리고 여성성이 지닌 힘을 자연스레 깨달았다. 이후 평생에 걸쳐 여성을 우대했다. 딸들이 결혼할 때도 신랑과 신부가 평등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딸이 국가 경영에 참가해야 한다는 점을 결혼 조건으로 내걸었다. 실제로 칭기즈 칸의 딸들은 직접 활을 잡고 전투에 나섰으며, 재판관이 돼 범죄자를 처벌했다. 심지어 몽골 제국의 공주 가운데는 씨름꾼까지 있었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주인공은 칭기즈 칸의 고손녀 쿠툴룬 공주다. 그녀는 남자들과 씨름 시합을 벌여 판판이 이기곤 했다.

칭기즈 칸의 딸들이 뛰어났던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그녀들에게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시대 다른 지역 여성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다. 중국이나 아랍에서라면 여성이, 그것도 귀한 신분인 공주가 남성과 뒤엉켜 씨름을 하거나 재판을 주재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다른 지역에서라면 누릴 수 없었던 기회를 얻은 여성들이 열정적으로 능력을 계발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칭기즈 칸이 위대하다면, 그건 그가 유능한 정복자였기 때문은 아닐 게다. 그는 여성의 잠재력을 알아본 선각자였다. 마침, 한국에서도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날이 코 앞에 다가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뛰어난 잠재력이 있지만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이 없을까. 그렇지는 않을 게다. 그들을 찾아내 기회를 주는 것. 다음 대통령이 뛰어난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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