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팬들을 설레게 할 대규모 음악 페스티벌은 이제 글로벌개더링 코리아(10월 5, 6일),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10월 12, 13, 14일),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10월 20, 21일)이 열리는 10월에나 찾아볼 수 있다.
올 여름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새로운 경쟁자가 자리 잡으면서 예년보다 더 많은 이야깃거리와 숙제를 남겼다. 한국 대중음악 공연 시장의 한계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자본이 주도하는 덩치경쟁에만 몰두할 경우, 빠른 시일 내에 한국 대중음악 공연 시장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리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을 찾은 관객들이 7월 27일 라디오헤드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이날 3만5000여 명의 관객이 이곳을 찾았다. 국내 록 페스티벌 사상 하루 인원으론 사상 최대 인파다. 이런 인원을 3개 페스티벌이 모두 불러모을 수 있을 가능성은 낮다. ⓒCJ E&M제공 |
덩치 경쟁이 갈 길일까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크게 3가지 형태로 나뉜다. 해외 라인업과 연계하거나 아예 해외 페스티벌을 라이선스하는 형태(지산밸리, 슈퍼!소닉, 글로벌개더링), 지자체의 도움을 받는 형태(펜타포트), 자체 모델(그랜드 민트)이 그것이다.
대형화는 해외 페스티벌과 라인업을 공유하는 지산밸리가 주도했다. 이는 CJ E&M이라는 대자본이 있었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올해는 일본에서 열리는 섬머소닉과 라인업을 공유하는 슈퍼!소닉이 끼어들어 덩치경쟁 체제를 갖췄다. 첫해에는 주최 측 주장 2만여 명에 불과한 관객을 모으는데 그쳤으나, 헤드라이너를 공유하는 내년부터 슈퍼!소닉은 지산밸리와 본격적으로 덩치경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지산밸리와 펜타포트라는 양강 체제가 3강 체제로 재편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싸움이 과연 공연산업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당장 페스티벌을 찾는 국내 관객 수가 비슷한 시기에 연달아 열리는 3개 페스티벌을 다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많지 않다. 지산밸리가 올해 연인원 10만 명을 넘겼다고 강조하고 펜타포트가 7만여 명, 슈퍼!소닉이 2만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고 하지만, 이 수가 허수라는 건 공연 관계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 한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 공연은 눈대중으로 얼핏 보아도 케이지 안 펜스 부근에만 관객이 모여있는 수준이었다. 2000여 명의 관객을 모은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의 내한공연 당시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한 공연시장 관계자는 "연인원 수는 백퍼센트 과장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페스티벌 대형화가 불가능하진 않다 하더라도, 당장은 3개의 덩치 큰 페스티벌을 국내 공연시장이 소화하기란 어렵단 얘기다.
실제 한 페스티벌 부스에 참여하지 않은 한 업체 관계자는 "부스 입점을 고려했으나 기대 홍보 효과에 비해 주최 측이 요구하는 입점료가 지나치게 비싸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페스티벌은 목표 부스 수를 채우지 못했다.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이 성공을 거두면서, 페스티벌 부스 입점료는 2년 전에 비해 두 배 넘게 오른 상태다.
한 마디로, 페스티벌 간 덩치경쟁이 관객 수 부풀리기를 낳고 있고 그에 따라 관계업체들이 부담해야 할 요금 수준이 현실과 맞지 않게 높아지는 부작용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이틀째인 지난 11일 헤드라이너였던 스노 패트롤의 무대. 펜타포트는 중대 기로에 섰다. ⓒ예스컴 제공 |
왜 덩치경쟁만 할까
당장은 내년에도 지산밸리와 슈퍼!소닉의 덩치경쟁은 이어질 전망이다. 반면 펜타포트는 이제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지산밸리는 앞으로도 스타급 헤드라이너를 데려오는데 승부를 걸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열린다는 시기적 이점에 후지 록 페스티벌과의 연계, 대기업 자본의 마케팅 능력까지 모든 걸 갖췄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올해 라인업 경쟁으로 다른 페스티벌에 완승을 거둔 성공의 기억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CJ E&M 측은 "올해 라디오헤드(Radiohead), 스톤 로지스(Stone Roses)가 참여함으로써 내년 라인업이 한층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슈퍼!소닉도 쉽게 덩치경쟁을 포기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이라는 지리적 접근성에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실내 체육관에서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이점을 매개로, 내년부터 본격 덩치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주최한 PMC네트웍스는 <난타>를 성공시킨 기획사답게 내년에는 퍼포먼스 공연 등을 추가하고 라인업을 더 보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펜타포트는 더 이상 덩치경쟁에 몰두하긴 곤란하게 됐다. 야외 페스티벌은 지산밸리에, 지리적 접근성은 슈퍼!소닉에 빼앗긴 상태다. 당장 올해 관객 몰이에 실패했다. 인천시의 지원은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내후년까지다.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한 공연기획 관계자는 "펜타포트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며 "덩치를 더 슬림화하고 페스티벌 성격을 재정의해야 한다. 주최일수를 줄이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장 올해부터 인천도시공사는 공연 예산을 줄인 상태다.
▲슈퍼!소닉 헤드라이너였던 스매싱 펌킨스의 무대. 슈퍼!소닉은 이틀 간 불과 2만여 명(주최측 추산)을 불러모으는데 그쳤다. 헤드라이너의 국내 인지도가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작정 덩치경쟁만 추구하는 건 답이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PMC네트웍스 제공 |
더 작은 페스티벌이 필요해
음악 페스티벌의 난립은 부산국제영화제 성공 이후 각 지자체에 영화제가 난립하던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지방 공연 혹은 행사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의 성공모델이 나타난 후, 제대로 된 시장 조사도 없이 이를 모방하기 바쁜 행사가 우후죽순으로 열린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수익을 낸 음악 페스티벌은 그랜드 민트, 올해의 지산밸리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일단 대자본부터 투입하고자 하는 욕망이 공연 관계자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본을 끌어모으기 바쁘고, 스타 헤드라이너 섭외에만 목을 매며, 대신 관객을 위한 행사 준비에는 소홀해지게 된다. 당장 지산밸리는 입점 기업의 과도한 홍보, 깃발 지참까지 막는 주최 측의 과도한 관객 행동 구속으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펜타포트에서는 홍보 행사에서 나오는 소음으로 인해 공연 관람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도 나왔었다. 축제에 비용과 수익 계산이라는 자본 논리만 남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이라도 국내 페스티벌이 출발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때라는 의견이 나온다. 라인업 섭외에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20, 30대 여성층을 타깃으로 해 큰 성공을 거둔 그랜드 민트, 독립음악인들의 축제였던 뉴타운 컬처 파티 등의 모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모든 페스티벌이 덩치경쟁에만 몰두할 경우, 일부를 제외하면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며 "지금 한국에는 더 작은 페스티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작가는 "하루 15만 명을 동원하는 글래스톤베리도 1000명의 관객으로 시작했고, 섬머소닉도 도쿄의 작은 공원에서 시작해 덩치를 키워왔다"며 "페스티벌이 자연스럽게 성장하면서 그 안에서 스토리텔링을 구축하고 고유의 관객 문화를 축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지금의 한국 페스티벌에선 "이런 페스티벌 특유의 문화를 찾기 어렵다"며 "대기업 자본과 연계하지 않은, 지자체를 끼지 않은 건강한 페스티벌이 성장해야 한다. 현 상태로는 앞으로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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